국정원, 사상 첫 민주노총 압수수색... 北 연계 전국 지하조직 구성 의혹

- 국정원 “민주노총 전체 아닌 개인 대상 압수수색”
- 北 ‘제주간첩단’ 계기 국정원 내사 동향 유출... 전현직 간부 증거인멸 정황 포착도

국가정보원이 18일 서울 중구의 전국민주노총조합총연맹 본부를 압수수색하면서 제주와 창원에서 촉발된 간첩단 사건이 전국범위 사건으로 공식 확대되었다. 정부기관이 파업이나 집회가 아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노동계 본산인 민주노총을 압수수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출처 : 뉴스1

이번 수사로 공안정국 논란은 한층 더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오랜 내사를 통해 전국으로 퍼진 북한 공작원 주도의 지하조직 실태를 파악하고, 관련 정황증거를 확보해 강제수사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관건은 이를 당국이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민주노총은 “국보법을 앞세운 윤석열 정부의 이념·색깔 덧씌우기 공작, 이를 통한 공안 통치의 부활”이라고 반발했다.

국정원은 이번 압수수색에 대해 민주노총 전체가 아닌 특정 개인의 혐의라고 선을 그었다. 국정원 측은 “민노총 전체를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이 아니라 사무처 소속 현직 국장인 A씨가 증거를 은닉할 만한 장소를 대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국정원과 경찰은 A씨를 비롯해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3명과 시민단체 대표 1명의 자책, 차량, 근무지의 휴대폰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당국은 이날 압수수색을 진행한 민주노총 간부 출신 3명에 대해 베트남과 중국, 캄보디아 등지에서 각각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장원과 접촉한 혐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특히 A씨가 2016~2019년에 이르기까지 해외에서 주기적으로 북한 공작원과 교류하고 국정원의 내사 정보가 유출되자 관련 증거를 인멸하려고 시도한 정황까지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국은 A씨가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간부 B씨와 광주기아차 노조간부 C씨 등을 통해 지하조직 하부망을 조직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최근 거론된 경남 창원·진주의 ‘자주통일 민중전위’나 제주의 ‘ㅎㄱㅎ’와는 별도의 조직으로 북한 공작원에게 국내 동향 정보를 전달하고 반정부 활동을 벌여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만 당국은 이들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조직이 구성됐고 북측과 지령을 주고 받았다고 파악하고 있다.

앞서 당국은 지난해 11월과 12월 제주·경남·창원 등지에서 지하조직을 구축한 혐의로 진보인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불과 한달이 채 지나기 전에 서울까지 범위를 확대한 셈이다. 정보당국의 소식통에 따르면 “국정원의 수사 정보가 대외적으로 공개되면 혐의자들은 증거를 은닉하고 모습을 감춘다”며 “어렵게 구축한 간첩 정보망이 깨지기 전에 증거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방조직에 대한 수사가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서 언론에 노출되면서 서둘러 서울로 방향 바꿔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날 압수수색은 이전에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으며 언론 노출 등으로 인해 시기를 앞당겼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통상적으로 방첩당국의 수사는 정보수집→첩보검증→정보분석의 내사 과정을 거친 뒤 강제 수사를 통해 이를 입증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첨단 암호화 프로그램인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y)’를 사용하거나 특정 사이트 메일 혹은 상호 약정된 클라우드에 난수표(암호문)를 공유하는 ‘사이버드보크(Syber Dvoke)’ 방식을 이용하면서 증거를 확보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당국은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한 만큼 혐의를 일부 소명했다고 볼수 있고, 수사의 정당성이 확보되어 있다는 입장이다. 국정원 측에서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간의 내사 기간을 거쳐 강제수사에 나선 것”이라며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다.

압수수색 시점 또한 코로나19 이후 혐의자들과 북한 공작원 간의 직접적인 접촉이 줄어든 상황에서 국내 교류 움직임을 추적하다보니 늦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상단기 대선과 내년 총선을 고려하면 현 시점의 압수수색을 정치적으로만 판단하기에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번 압수수색이 노동계의 집중되어 있어 의도적으로 무리하게 수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내년에 경찰로 대공수사권을 넘겨야 하는 국정원의 언론플레이라는 지적도 있다.

당장 민주노총과 보건의료노조는 “노동 운동에 대한 공안의 탄압”이라며 “기획된 공안몰이에 결코 굴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등으로 구성된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성명을 통해 "국정원 개혁의 핵심인 대공수사권 이관을 되돌리려는 기획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국정원의 퇴행을 규탄하며 공안통치 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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