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료원 10곳 중 7곳 의사부족... 70대 의사 채용하기도

- 공공기관 평균 결원율 18%... 성남의료원 34% 최고
- 의사 없어 환자 수십명 돌려보내고 수술실 두달 넘게 닫기도
- 교수 승진 가산점 및 전공의 공급 등 고려해야

특정과를 중심으로 ‘의사부족’ 현상이 의료계 전반에 심각하게 나타나는 가운데 공공의료기관의 경우 더욱 상황이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의료기관임에도 10곳 중 7곳은 의사가 부족해 정상적인 진료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에 고스란히 환자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 부산의료원 응급실 전경 ㅣ 출처 : 연합뉴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의 서정숙 의원에게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으로 공공의료기관인 지방의료원 35곳 중 24곳(69%)은 의사 정원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평균 결원율은 18%로 정상적인 병원 운영을 위한 의사 5명이라고 가정할 때 1명은 없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성남시의료원의 경우 결원율이 무려 34%를 넘기도 했다.

공공의료기관들은 이런 의료공백을 최소화 하기 위해 정년을 훌쩍 넘긴 고령의 의사들까지도 채용하는 자구책까지 쓰고 있다. 일부에서는 의사가 없어 병원을 찾은 환자를 고스란히 되돌려보내기도 하고 수술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현장에서는 고령 의사의 경험이나 연륜에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보다도 젊은 의사의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진료 역량의 약화가 더 크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공공의료기관의 의사 부족은 고스란히 진료 차질과 환자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인천의료원의 경우 지난해 신장내과 의사가 퇴직한 뒤로 새로운 의사를 채용하지 못해 현재까지 인공신장실 운영을 중단한 상태이다. 중단 전 일주일에 2~3차례씩 방문해 신장 투석을 받던 환자 80여 명은 병원 측으로부터 “다른 병원으로 가서 투석을 받아달라”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현재는 심장질환 등을 담당해 진료하는 순환기내과 의사도 공석이어서 인근 가천대 길병원으로부터 순환기내과 의사 한 명을 일주일에 한 번씩 파견받아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를 구하지 못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두 달동안 수술실 자체를 문 닫았다. 응급실을 찾았던 급성 충수돌기염(맹장) 환자도 인근 병원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임승관 안성병원장은 “의사 한 명이 그만 뒀을 때 후임자가 바로 구해진 경우는 최근 3~4년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간 병원들에 비해 공공의료기관들이 더욱 심각한 구인난에 처해있는 이유는 보수가 상대적으로 더 적기 때문이다. 또, 자녀 교육 등의 가정 이유로 인해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다 보니 지방 공공의료기관에서는 의사 한 명이 2~3명의 업무량을 독박쓰는 경우가 많아 더욱 구인난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공공의료기관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전담 병원으로 지정되며 의사들의 대거 이탈이 시작됐다. 코로나19와 관련 없는 환자들이 대폭 줄었어들면서 이 환자들을 진료하던 의사들이 ‘경력 공백’을 우려해 다른 병원으로 이직한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잦아들어가면서 의사 부족을 겪고 있는 공공의료기관들 사이에서는 경쟁적으로 인력확보를 시도해야 하는 입장에 몰렸고, 이는 의사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으로 이어졌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인천의료원장)은 “인력난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도 않는데 연봉 인상 요구는 점점 더 커지고만 있다”며 “이런 식으로 의사를 구하다보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가 거의 종식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공공의료기관들은 순차적으로 전담병원에서 해제되고 있지만 떠난 일반 환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시립 병원인 서울 서남 병원의 노창석 진료부장(호흡기내과 전문의)은 “환자 입장에서는 병원을 바꾸기 위해서 진료내역이나 서류 등을 새로 준비해 가야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며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코로나19 이전으로 도통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의료 현장에서는 의사 구인난이 지금보다도 갈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노 부장은 “의사 수는 정해져 있는데 읜퇴하는 의사는 계속해서 나온다”며 “특히 의사들이 기피하는 과에서는 구인난이 가속화될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더이상 개별 의료기관이 알아서 의료진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을 뛰어 넘었다”며 “정부의 정책적인 결정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내놓고 있는 해결책들은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의료현장에서는 의사가 없어서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포인트인데,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은 응급의료센터 확충, 중증 어린이환자 진료 인프라 확대 등 의사수를 오히려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정책들이다.

한 의료원 근무자는 “의대 정원 확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지금처럼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할 때에는 의사 공급을 늘려야 그 다음 해결책도 모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공의료기관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도 필요하다. 의사들이 연봉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형 민간병원이 아닌 공공의료기관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하고 싶은 의사들도 분명 있는데 지금은 ‘일할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다”며 “국립대병원 교수 승진을 심사할 때 논문 및 연구 점수를 평가하듯 지방의료원 근무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법이 있다”고 제안했다.

만성적 인력난에 시달리는 지방의료원에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공급을 늘리자는 제안도 나온다. 지방의료원에는 전공의가 없는 병원이 많은데, 이는 전문의 업무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지방의료원 35곳 중 전공의 수련병원으로 지정된 곳은 20곳뿐이다. 정 원장은 “대학병원과 연계해서 인턴 일부를 지방의료원에서 수련받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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