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에 파산’ 美 SVB 사태, 국내 은행은?

- 국내 은행, 고위험 상품투자 비중 높지 않고 연체율 등 건정성도 양호
- 1억원 미만 예금계좌가 대부분... 뱅크런 가능성 낮아

미국의 밴처캐피탈과 IT 스타트업 전문 은행으로 한 때 예금 보유량이 260조 원을 넘기도 했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가 파산하면서 국내 은행에도 미칠 영향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출처 :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SVB 파산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가파른 금리 인상에서 비롯된 만큼 국내 은행들도 이와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다만 SVB와 자산 운용 형태가 다르고 국내 은행들이 전반적으로 건정성이 양호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파장이 크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업계에서는 지배적이다.

13일 금융권 및 외신에 따르면 SVB 파산은 고금리 충격에 따른 재무구조의 악화가 고객들의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로 이어지면서 발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막대한 유동성이 IT 기업들에 몰리면서 SVB의 총 예금은 2021년에만 무려 86% 급증했고, 금액으로 환산하면 예금 보유량이 약 2000억 원(약 260조 원)에 이르기도 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지난해 미 연준이 잇따라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밟으면서 금리가 급등했고, 이에 돈줄이 막힌 기술기업들의 예금 인출이 늘었다는 점이다.

SVB는 그동안 늘어난 예금을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에 투자했는데, 갑자기 늘어난 고객의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보유 자산을 매각하면서 큰 손실을 입었다. 그동안의 금리 인상으로 채권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SVB가 큰 손실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는 다시 IT, 스타트업 등의 대규모 예금 인출을 불렀고(뱅크런), 결국 미 금융당국은 SVB 폐쇄를 결정했다.

금융계에서는 일단 이번 사태는 자금 조달과 투자가 편중된 미국 일부 은행만의 문제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은행의 경우 SVB와 달리 팬데믹 기간 늘어난 유동성을 유가증권 등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기 보다는 주로 대출에 활용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수신(예금·작년 12월말 잔액 2,243조 5,000억 원)은 지난해 107조 4,000억 원 늘었다. 같은 기간 은행을 포함한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8조 7,000억 원 감소했지만, 은행 기업대출(작년 12월 말 잔액 1,170조 3,000억원)은 104조 6,000억 원 불었다.

늘어난 수신 금액을 고스란히 대출에 활용한 셈이다. 국내 은행들이 예대마진(대출금리-예금금리 격차)을 통해 사상 최대 수익을 올렸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전통적인 이자 장사에 치중한 점이 금리 상승기 투자 리스크를 줄인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국내 은행들도 금리 상승에 따른 증시 부진, 채권가격 하락 등으로 투자 손실을 피할 수 없었지만 유가증권 투자 비중이 크지 않다 보니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실제 주요 은행들은 지난해 유가증권 관련 이익이 줄기는 했지만 손실을 본 곳은 없었다.

KB국민은행의 2021년 말 기준 자금운용 현황을 보면 가계·기업 등에 돈을 빌려준 대출채권이 75.0%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유가증권 등 금융자산 비중은 17.7%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출 확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 은행들의 건전성은 양호하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0.25%에 불과하다. 절대적 수준 자체가 아직은 매우 낮은 셈이다.

다만 지속된 금리 인상에다 최근 경기가 빠르게 식고 있어 향후 이자 부담 등을 버티지 못하는 기업이 늘어나면 은행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불씨가 될 수 있다. 실제 4대 시중은행(KB국민·하나·우리·NH농협, 신한은행 제외)의 기업 신규 연체율 평균은 지난해 1월 0.05%에서 올해 1월 0.10%로 상승했다.

국내에서 SVB 파산을 불러온 뱅크런 가능성도 크지 않다. SVB의 경우 주 고객이 기업이다 보니 예금자보호한도(25만달러)를 넘는 고액 예금이 많았고, 이에 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자 다시 예금주들이 예금을 인출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반면 국내 예금자보호법상 보호 한도는 5천만 원이지만, 기업보다는 가계, 고액보다는 소액 예금의 비중이 절대적이어서 뱅크런이 발생할 확률 자체가 낮다. 실제 지난해 1분기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저축성예금 계좌 238만 6,440개 중 99.5%인 237만 4,540개 계좌가 상대적으로 소액인 1억 원 이하로 집계됐다. 이에 시중은행의 경우 영업정지나 파산 등으로 원리금을 지급하지 못할 위험은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내 중소은행들의 잇따른 유동성 불안 사태는 자금조달과 투자가 편중된 일부 은행만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SVB는 국내 은행의 사업모델과 판이하기 때문에 국내 은행의 유동성 위기로 번질 우려는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은행 역시 이날 이승헌 부총재 주재로 연 '시장 상황 점검 회의'에서 SVB 사태가 금융권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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