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연금 문제, 전 세계로 번지는 ‘연금개혁 전쟁’

- 전 세계적인 고령화·저출산으로 2000년대 이후 연금 개혁 가속화
- 연금개혁 후 국민 반발로 인해 정권 뒤바뀐 경우도
- 프랑스는 정년 연장 거부, 한국은 정년 연장이 최대 복지... 처한 상황마다 개혁 방향 달라

지난 6일 프랑스 파리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몽파르나스 지구의 레스토랑 ‘라로통드’에 불이 났다.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사이 격해진 연금 개혁 반대 시위대가 여기에 항의하다 마크롱 대통령의 단골 식당에 불을 지른 것이다. 소방대가 출동해 화재는 금방 진압됐으나 300여명이 넘는 시위대와 가게를 지키는 경찰이 충돌해 가게 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프랑스는 최근 연금 개혁으로 사회적 혼란에 빠져있다. 연금 개혁에 저항하고 있는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올해 1월 이후 이 날까지 11번의 시위를 벌였고, 몇몇 폭력 성향의 시위대를 경찰이 최루찬과 섬광탄을 동원해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 십명이 체포되고, 시위대·경찰 할 것 없이 다친 사람도 수십명에 이르렀다.

그에 앞서 3월 7일에는 파리를 비롯해 프랑스 전역 280여 곳에서 최대규모의 동시다발적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대중교통 노동자·트럭 운전사·원자력 발전소 기술자들 중 상당수는 파업에 들어갔고, 초등학교 고사도 거리로 나왔다. 교실 문이 닫히고 열차가 멈추고 발전소 가동이 일부 중단됐다. 청소 노동자도 시위에 동참하고 파업하면서 파리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쥐 떼가 거리를 활보하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연금 개혁에 ‘정치 생명’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정치적 인기를 잃는다고 하더라도 국익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며 연금 개혁을 강행하고 있다.


▲ 2월 프랑스서 열린 연금개혁 반대 집회 ㅣ 출처 : 로이터

◆ 전 세계로 번지는 ‘화약고’ 연금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실 이미 전 세계가 연금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1939년~1945년)이 끝난 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가 2010년 이후 고령층에 대규모 편입되면서 각 국의 연금 지급액이 급증하게 됐다. 선진국들은 기존의 저출산 문제와 함께 부양비 부담, 노동력 확보 등 고령화와 싸움을 이어가게 됐다. 돈 낼 사람은 적어지는데, 돈을 받을 사람은 늘어나고 있는 구조 때문이었다.

2010년대 그리스·포르투갈·이탈리아 등 몇몇 유럽국가들이 재정적으로 파탄에 가까운 위기를 맞게 된 배경에도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 특히 그리스의 경우 연금 지출이 국가 재정 적자의 5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재정 부담이 컸다. 결국 2010년 그리스는 어마어마한 재정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유럽연합(EU)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후 2018년 가까스로 구제 금융 체제에서 탈출했지만 그 과정에서 연금 수령자들의 수령액은 열 차례 이상 삭감됐다. 구제금융 전 월 700유로를 받던 연금 수령자는 수령액의 14%, 3500유로를 받던 연금 수령자는 44%가 깎였다. 연금 수령 연령도 기존 65세에서 67세로 높아졌고, 2010년 이후 지금까지 연금과 기타복지 급여가 최대 70%까지 삭감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연결되고 있다. 2012년 4월 생활고에 시달리던 70대 연금 생활자가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수도 아테네의 국회의사당 앞 산타그마 광장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있었다. 전직 약사였던 그의 유서를 보면 “품위있는 노후를 위해 지난 35년간 연금을 쏟아부었는데 정부가 생존에 대한 모든 희망을 무너뜨렸다”라며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구하는 비참한 상황이 되기 전 마지막 존엄을 위해 이 방법 밖에는 없다”고 적혀 있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광장 주변에 집결해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연금 개혁을 실시하다 국민의 반발에 정권 자체가 흔들린 경우도 많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로마도 프로디 전 이탈리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등이 연금 개혁을 시도하다 줄줄이 중도 낙마하거나 다음 선거에서 실권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연근 개혁 모범 사례로도 꼽히는 독일은 사회민주당 소속이었던 슈뢰더 총리가 2003년 ‘더 내고 덜 받자’는 취지의 연금 개혁을 노동 개혁과 동시에 추진해 ‘고실업·저성장’이라는 독일병을 치유하는 치료약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노동자 층의 민심을 잃어버리며 2005년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의 기독민주당에게 정권을 내줬다.

러시아의 푸틴 정부 역시 지난 2018년 6월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을 남성은 60세에서 65세로, 여성은 55세에서 63세로 단계적으로 늘려가는 연금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당시 러시아인의 90%가 이 법안을 반대하여, 같은해 7월 수도 모스크바 등 여러 주요 도시에서 ‘푸틴은 도둑놈’이라는 구호와 함께 연금법 개정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항상 80%가 웃도는 광적인 지지를 받던 푸틴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이 당시에는 50% 이하로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중남미의 작은 나라, 니카과라도 같은해 연금 보혐료를 올리고 수령액은 줄였다가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해 최소 27명이 숨지는 유혈사태까지 발생해 결국 개혁을 포기했다. 네덜란드 역시 2021년 연금 수령 나이를 67세로 올리려다 국민적 반발에 못 이겨 2024년으로 잠정 연기했다.

스페인의 연금 개혁도 시한폭탄과 같다. 스페인 정부는 그동안 EU 집행위원회에서 코로나19 회복기금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연금 개혁을 논의해 왔다. 65세인 현행 은퇴 연령은 그대로 유지하되 고소득자의 연금 기금 부담을 늘리고 노동자의 기여금 납부 기간을 25년에서 최대 29년으로 연장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연금 제도 개혁에 관한 노동계 지지를 무난하게 얻어 냈지만, 보수 야권과 재계는 이번 개혁안을 반대하고 있다. 개혁안이 고소득층과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제1 야당인 보수 성향의 국민당(PP)은 연말 총선에서 집권에 성공하면 연금을 다시 개혁하겠다고 공언했다.

◆ 연금개혁, 상황마다 각기 각색


▲ 출처 : 연합뉴스

다시 돌아와서, 프랑스의 연금개혁안의 방향은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연령을 기존 62세에서 매년 3개월씩 연장해 2030년에는 64세에 도달함과 동시에 연금 100%를 받기 위하여 기여하는 기간도 42년에서 43년까지로 늘리기로 기존에 약속한 시점인 2035년을 2027년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다만 최저 수령액을 월 1200유로로 상향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이에 반발해 시위를 펼치고 있는 이들은 “정치인들이 무거운 접시를 나르고, 대용량 쓰레기 봉투를 옮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며 “노년에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주장은 ‘돈’보다 ‘정년’에 맞춰져 있다. 현재 프랑스의 은퇴 연령(62세)은 주변 비슷한 경제 수준의 영국(66세), 이탈리아(67세) 등 인접한 EU 회원국보다 빠르다. 소득 대채율(연금액이 생애 평균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월 평균 소득의 62%에 달한다. 정년이 노동에서 벗어나 비교적 넉넉한 은퇴생활을 시작하는 ‘사회 계약’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 이유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정년’이 연장되어 고용이 계속되는 것을 최대의 복지라고 여긴다. 정년(60세)과 연금 수령(65세) 사이의 공백이 있는데다가, 연금만으로는 부족해 추가적인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21년 국민연금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특별한 질병이 없는 노년이 최소로 필요한 생활비는 개인 월 124만 3000원, 부부는 198만 7000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2021년 1월 기준으로 전체 연금 수령자(582만 1915명)의 월 평균 연금액은 57만 1945원에 불과하다. 최소 노후 생활비에 절반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 연금 수령액이 20만~40만 원인 사람은 약 40%(208만 명)나 됐다. 소득 대체율은 평균 31.2%에 머무르고 있다. 경제협력경제개발기구(OECD) 평균인 42.2%보다 11%가량이 낮다. 한국의 연금 개혁이 ‘더 내고 덜 받자’에 유독 민감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도 최악이다.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2021년 0.82명으로 2018년 0명대 출산율에 진입한 이후 줄곧 떨어지고 있다. 2022년에도 0.7명대를 기록하며 전망이 암울한 상황이다. 2020년 OECD 회원국의 평균 합계 출산율은 1.6명이고, 프랑스는 이보다 높은 1.8명이다. 이에 국내 많은 초등학교들이 문을 닫거나 학생수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고, 실제로 서울 노원구의 학 초등학교 입학생은 지난해 28명에서 17명으로 줄었다.

저출산뿐만 아니라 고령화도 가파르게 가속회 되고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2025년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영국(50년), 프랑스(39년), 미국(15년) 등 서구 국가들은 물론 고령화 추세가 가파른 것으로 유명한 일본(10년)보다도 빠른 속도이다.

스웨덴·독일·일본 등은 각자의 사정에 맞춰 연금 제도를 바꿨고 현재도 손질 중이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을 주요 국정 과제로 삼으면서 국회와 보건복지부에서 주요 이슈로 다시 다뤄지고 있다. 한국이 앞선 선진국들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되 한국 만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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