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책연구원, 응급실 과밀화 원인 분석 보고서 발표
야간 시간대 경증환자 응급실 방문 집중…대체 진료체계 부재 지적
‘지역사회 야간·휴일 케어 클리닉’ 등 차등화된 의료체계 제안
우리나라 응급실의 고질적인 과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외래 진료가 종료되는 야간·휴일 시간대에 경증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대체 의료기관을 적극적으로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2일 의료정책연구원은 대한응급의학의사회의 ‘응급의료기관 방문 환자의 중증도에 따른 응급실 과밀현상 해결을 위한 정책 제언’ 보고서를 발표하고, 응급실 과밀화의 주된 원인과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유행 직후인 2021년부터 2022년까지 2년 동안 지역응급의료센터 이상 기관을 방문한 987만 명의 방대한 환자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 기간 동안 2021년에는 약 481만 명, 2022년에는 506만 명이 응급실을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남성은 손상·중독 등 질병 외 사유로 응급실을 찾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은 질병 자체로 내원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중증도가 낮은 경증환자 비율은 남녀를 막론하고 전체 내원 환자의 상당수를 차지했다.
특히 문제로 지적된 것은 경증환자의 상급 응급의료기관 집중 현상이었다. 보고서는 이러한 쏠림 현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야간·휴일에 문을 여는 대체 의료기관의 부재를 꼽았다.
경증환자라도 증상 악화 우려로 어쩔 수 없이 대학병원 등 대형병원의 응급실을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정된 중증 응급의료 자원이 경증환자에게까지 분산되며 응급실 전체의 과밀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외래 진료가 종료되는 오후 6시 이후 야간 시간대에 경증환자의 응급실 방문이 집중되는 양상이 뚜렷했다. 2년간 전체 경증환자의 약 59.3%가 야간에 응급의료기관을 찾았으며, 주요 내원 증상으로는 복통, 발열, 두통, 근골격계 통증, 기력저하, 경미한 외상이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1차 의료기관에서도 충분히 관리 가능한 질환임에도 적절한 대안이 없어 응급실로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지역사회 야간·휴일 응급 케어 클리닉’ 확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외래 진료가 종료된 시간대에도 경증환자가 안심하고 방문할 수 있는 별도의 진료체계를 마련하면 상급 응급실의 과밀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기존 ‘달빛어린이병원’ 사례처럼 단순 수가 보상만으로는 장기 운영이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정부가 인건비와 운영비를 직접 지원하는 파격적인 재정 지원책이 뒷받침돼야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또 중증환자와 경증환자가 동일한 상급 응급실로 몰리는 현상으로 인해 중증 응급질환 환자의 골든타임 확보가 위협받고 있음을 경고했다. 이에 따라 국민들에게 경증 질환은 1차 의료기관이나 야간·휴일 클리닉으로, 심근경색·뇌졸중 등 중증질환은 119 이송을 통한 상급 응급실로 유도하는 체계적인 홍보와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119 구급대의 병원 전 단계 환자 분류·이송 시스템도 지역 내 의료기관의 실시간 진료역량과 연계해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단순히 거리가 가깝거나 인지도가 높은 병원이 아닌, 그 시점에서 가장 적절한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최일국 기획이사는 “응급실 과밀은 환자의 단순 선택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안정적인 의료 인프라를 제공하지 못한 구조적 결과”라며 “이번 연구를 통해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정책 설계가 이뤄져야 응급의료체계 본연의 역할이 회복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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