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저산소 상태 방치한 과실 명백”… 병원 등 6억4천만 원 배상 판결
옥시토신 투여 등은 책임 없음… 핵심은 심박 이상 감시·소통 실패
“설명 부족 아닌 조치 지연이 직접 원인”… 법원, 의료진 책임 30% 제한
분만 과정에서 발생한 신생아 뇌손상에 대해 법원이 의료진의 주의 의무 소홀을 인정하고 병원 측에 공동 책임을 물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15부는 최근, 산모 C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L병원과 소속 의료진에게 총 6억 4239만여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해당 사건은 2018년 12월, C씨가 임신 39주차에 질식분만으로 출산한 아기 A군이 출생 직후부터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을 진단받으면서 비롯됐다.
A군은 탯줄이 목에 감긴 채 태변 착색과 청색증, 무호흡 등의 상태로 태어났으며, 아프가 점수는 1분 2점, 5분 3점, 10분 4점에 불과했다. 제대혈 검사에서도 심한 산증이 나타났고, 뇌초음파와 MRI 등을 통해 광범위한 뇌손상이 확인됐다. 이후 A군은 경직성 사지마비형 뇌성마비로 진단돼 지속적인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산모 측은 의료진이 분만 과정에서 옥시토신 투여, 무통주사 사용, 태아감시, 응급조치 등 전반에 걸쳐 과실이 있었고, 충분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24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병원 측은 모든 처치는 당시 기준에 맞게 이뤄졌고, 뇌손상은 유전적 또는 선천적 요인이 배제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이 가운데 옥시토신과 무통주사 사용에 대해서는 의료 기준을 벗어난 점이 없고, 뇌손상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과실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분만 직전 1시간가량 반복적으로 나타난 심박 이상 소견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았고, 필요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은 명백한 과실로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오후 2시 30분부터 A군에게 위굴형 감소, 변이도 소실 등 심각한 저산소 신호가 반복됐으며, 특히 오후 3시 9분경에는 산소 공급이 끊겼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다. 재판부는 “이 시점에서 자궁 내 소생술이나 즉각 분만 조치가 이뤄졌어야 했다”고 지적하며, 결국 자연분만을 강행한 선택이 분만 시기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의료진 간 의사소통 부재도 지적됐다. 당시 전공의는 전문의에게 태아 상태를 보고하지 않았고, 전문의는 환자 상태를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 간호기록에도 오후 2시 이후 중요한 심박 변화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었으며, 병원 측이 주장한 중앙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한 감시 가능성 역시 2018년 당시 기술 수준에서는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미국의 학계 기준을 인용해, 저산소 손상과 뇌성마비 사이의 인과관계 판단 요소 네 가지를 모두 충족한다고 설명했다. 직접적인 다른 원인이 없는 한, 분만 중 저산소 상태와 뇌손상 사이에 인과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다만 태아 심박 해석의 모호성과 의료행위 특수성 등을 감안해, 전체 책임 중 병원과 의료진의 책임을 30%로 제한했다. 이에 따라 병원은 사용자 책임을, 담당 의료진은 공동불법행위자로서 공동 책임을 지게 됐다.
법원은 A군에게 약 6억 239만 원의 재산상 손해와 4천만 원의 위자료를 인정했고, A군의 부모에게도 각각 5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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