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격진료에 대한 합리적 수가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의료인들이 외면하고, 이로 인해 결국엔 원격의료 산업화도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
- 대면 진료에 비해 본인 확인이 어려운 이유로 부정수급문제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비도 필요를 강조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정부가 환자-의사 간 원격(비대면) 의료 허용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그동안 시범사업으로만 그쳤던 원격의료가 정식법안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의료단체는 원격 의료에 대한 법적 뒷받침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며, 허용에 앞서 전제조건으로 ‘적정수가’를 반드시 보장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도 반드시 의료계와 논의해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2년 바이오코리아의 관련 세션에 참가한 허수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약사, 검사 출신)는 ‘원격의료 관련 법적 쟁점 및 입법 동향’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이 같은 의견을 표명했다.
◆ 급속도로 성장중인 해외 각국의 원격의료 시장
우리나라는 의료법상 원칙적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가 금지되지만,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한시적으로 일부 허용되고 있다. 원격 의료는 대면 진료에 비해 환자의 충분한 정보를 얻기 힘들어서 진단과 처방의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의료계는 원격의료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20년 255억달러(약 32조5300억원) 규모였던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은 연평균 16.9% 성장해 오면서, 오는 2025년이면 556억달러(약 70조920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이 같은 성장성에 해외에선 이미 원격진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지정된 시설에 한해 국영·민영보험 등이 원격의료를 보장하고 있고, 영국 역시 국가보건의료제도를 통해 런던 등을 중심으로 원격의료를 시행 중이다. 중국의 경우 2016년부터 전국적으로 원격의료를 도입해 대형약국과의 연계를 통한 처방 등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엔 활용 영역을 더욱 넓혀가는 중이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발전 흐름 속에서 오랜 노력에도 개화하지 못했던 국내 원격진료 또한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지개를 켜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의료계도 달라진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비대면 진료가 불가피해지면서 원격진료 경험자가 많아졌고, 효율성·필요성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내세운 원격진료 시범사업 확대를 비롯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적극 육성 공약 등도 기대감을 키우는 요소다.
◆ 의료계, 의협 주도하에 선제적 대응
이에 그동안 원격의료에 부정적 입장을 유지해 온 의료계 역시 최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 전향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는 원격의료에 대한 주도권을 더 이상 뺏길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열린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원격진료에 대해 전면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다만 일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시행하되, 의료계 종주단체인 의협이 모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주도적으로 선도한다는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허 변호사는 “코로나 이후에도 원격의료 필요성에 대해서 국민들이 공감하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에는 의협의 입장도 원격의료가 시행된다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선회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 원격진료를 일부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황이며, 원격의료에 대해 기존에 반대 입장이었던 의사협회와 약사회에서도 변화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 약학계, 아직은 강한 반대
다만 의협이 원격진료를 일부 수용하려는 전향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달리 약사회는 전면적으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약사회는 의약 분업 이후 병원 인근 약국들에서 처방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비대면 의약품 배송은 현재 운영 중인 약국 네트워크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비대면 의약품 조제로 인한 오남용 문제와 책임소재에 대한 명확한 기준, 의약품 배송 관련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어 약사회는 현재 앱을 통한 의약품 배송의 경우 직접 방문 수령할 약국을 지정하지 않으면, 업체에서 수령 약국을 자동 지정하도록 돼 있어 환자의 선택권 침해 우려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허 변호사는 “의사는 수가를 보장하면 기존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지지 않는 반면, 약사는 비대면 약 배송에 따른 법령 위반 문제와 초·재진과 같은 개념이 없는 등의 이유로 기존의 약업 체계가 무너질 것 같아서 반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적정 수가 보장이 핵심
이날 허 변호사가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적정 수가 보장이다. 그는 “원격진료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원격진료에 대한 합리적 수가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의료인들이 외면할 것이고, 이로 인해 결국엔 원격의료 산업화도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외에도 “원격 진료 방법의 특성상 의료과오에 대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각 이해관계자의 귀책요건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고, (비대면 진료 특성상 녹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의료사고에 따른 소송 시 녹화 영상에 대해 동의 없이 증거능력제한 등의 문제를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의료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개인정보 보호수단을 구축할 필요가 있고, 대면 진료에 비해 본인 확인이 어려운 이유로 부정수급문제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비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원격진료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달라진 만큼 당사자인 의료계가 참여해 관련 규정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종엽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원은 “그동안 특정지역이나 특정계층만 이용했던 원격진료를 코로나19 이후 일반인들도 경험하게 되면서 원격진료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는데 특히 건강정보 모니터링과 수집, 내원 전 상담 등에 활용 의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또 “의료인들도 정보 수집과, 디지털 헬스케어, 약물오남용, 중복처방 금지 등에 활용하겠다고 답변한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원은 “원격진료에도 근거중심의학 개념이 적용돼야 환자에게 알맞은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수집해 적합한 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특히 “의료인들이 적극 참여해 제대로 된 관련 규정을 만들면 국민들에게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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