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 의사에 경증‧중증 분류까지 해라? 벼랑 끝으로 몰리는 응급실

- 대동맥박리를 경증 ‘급성위염’으로 오인한 응급의학과 전공의에 징역형 선고
- 전문의들 시작‧개원 고민에 전공의 지원율 바닥칠까 우려도 ‘제2의 이대목동사건’
- 응급실 현장 “어떤 환자가 찾아올지 걱정,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언제 어디서 어떤 질환의 환자가 실려올지 모르는 급박한 응급실에서 과거력에 대한 정보도 없이 몇가지 증상만을 호소하는 환자를 제일 처음 만나게되는 환자는 바로 응급의학과 의사이다. 이들의 의학적, 사법적 책임에 대한 의료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대구시에서 17세 청소년이 추락사고를 당해 응급실로 실려온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환자를 제일 먼저 진찰한 대구 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극단선택으로 추정되는 해당 환자를 정신병동이 있는 병원으로 전원한 것에 대해 경찰조사를 받았다.

아직 수사 결과가 발표되지는 않았으나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정확한 정보 없이 다양한 환자들과 함께 섞여 들어온 중증응급환자를 정확하게 분류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개인 의사들에게까지 묻고 있는 사법당국의 행태에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 최근 대법원이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에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해 환자를 혼수상태에 빠지게 했다는 이유로 당시 응급의학과 1년차 전공의였던 의사에 징역 2년에 집행유예를 선고해 의료계가 충격에 빠졌다.

이번에는 조사 수준이 아닌 ‘징역형’이라는 형사 처벌이 내려지면서 그간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우려에 그쳐 고민만 하던 일이 현실로 일어나자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실질적으로 응급실을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당장 2024년도 전공의 모집에서도 이러한 기피 현상이 반영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응급의학과 분위기는 암담한 상황이다.



◆ 그럼에도 정부는 ‘무조건 수용’, 악결과 시 책임은 의료진 개인이?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해당 사건이 응급의학과 의사들에게 보다 더 크게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는 이유는 최근 정부가 ‘응급실 뺑뺑이’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의료기관에 환자 수용거부를 금지하고, 중증응급환자는 수용을 강제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사건이 발생했던 대구시는 지자제 차원에서 ‘책임형 응급의료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초응급 중증 환자일 경우 구급상황관리센터가 병원 수용가능여부 확인 없이 곧바로 이송병원을 임의로 선정하고, 즉시 이송해 해당 응급의료기관은 해당 환자를 반드시 수용하도록 강제했다.

대구시를 따라 정부도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응급의료 제48조의2 ‘정당한 사유없이 환자 수용 거부 불가’ 조항의 후속 조치인 ‘응급의료 시행규칙 개정령안’을 통해 구체적으로 ‘정당한 사유’ 기준을 정해 의료기관의 수용 거부를 막으려 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당일 근무중인 응급실 책임 의사가 해당 ‘정당한 사유’에 따라 환자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응급의료를 거부할 경우 징역 3년 이하, 벌금 3000만 원 이하의 중형을 받을 수 있다. 이에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너무 과한 처사라며 반대하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경증과 중증환자가 섞여 매일 전쟁통과 다름 없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갑자기 중증응급환자를 강제 수용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을 때 한정된 자원을 가진 응급실은 경증환자를 대신해 중증응급환자를 먼저 진료하게 된다”며 “하지만 병실도 부족하고, 의료인력도 부족한 상황 속에서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당시 경증이라고 분류된 환자를 귀가조치하게 된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중증 응급환자는 빠른 처치로 목숨을 건질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어 “하지만 먼저 응급실에 찾았다가 경증으로 분류되어 귀가조치 됐거나 의료 처치가 뒤로 밀렸던 환자들 중 사망하는 등의 악결과가 초래되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느냐”며 “현재 사법당국의 기조로 봐서는 의료진 개인에게 물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 응급의학과에 형사책임 묻는 현실... 응급실 이탈, 전공의 지원 기피 ‘제2의 이대목동사건’

중증인 대동맥박리를 경증인 급성 위염으로 오진했던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대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이라는 형사 처벌을 받은 사건으로 결국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불안은 현실이 되어 찾아왔다.

해당 선고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의사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는 응급실을 떠나겠다는 의사들과 수련을 포기하겠다는 응급의학과 의사, 전공의들이 이어지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B씨는 “사법부의 이번 판결을 믿을수가 없다. 응급실 뺑뺑이가 문제라며 의료기관에 환자를 강제 수용한다더니 이번 판결은 응급실 운영이 아예 불가능해 질 것”이라며 “모든 흉통 환자에게 CT검사를 실시하라는 판결이다. 그래놓고 심평원은 또 진료비를 삭감할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어떤 환자가 나를 찾아올지 걱정된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이미 주변 대학병원 동료 전문의들은 응급실을 떠나 개원을 고려하고 있고, 응급의학과를 지망하거나 이미 수련을 하고 있던 후배들은 이미 포기하고 다른과로의 전과를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는 해당 판결이 내려진 직후 성명서를 통해 “응급진단과 최종진단은 다를 수도 있는 것으로 응급실에서 완전 무결한 최종진단을 하지 못했다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응급의학과 자체가 존재의 의미가 없다. 우리 2500명 응급의학 전문의와 460명의 전공의들은 모두가 범죄자일 수 밖에 없다”고 분노했다.

응급의학과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응급의료전달체계 논의, 응급실 수용거부금지 논의에서 법적 책임에 대한 문제해결 없이는 더 이상의 논의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논의체 위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응급의학회 류현호 공보이사도 “참으로 암담하다”며 “이번 판결로 응급의학과 기피 현상으로 인력이 빠져나갈 것이고,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 적체와 과밀화 문제가 더 악화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입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회는 환자 중증도 분류가 어려운 질환들이 있음에도 응급의학 의사의 판단에 대해 면책을 주지 않으면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특히 학회는 2024년도 응급의학과 전공의 모집을 주시하고 있다.

과거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기소를 당해 재판을 받은 것만으로도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이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이번 사건은 아예 의사가 ’징역형‘으로 형사처벌 유죄를 받아 그 파장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류 이사는 “소청과는 이대목동병원 의사들이 무죄였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전공의 지원율이 확 떨어졌다. 젊은 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현상이 더 심화되는 상황에서 2024년도 전공의 지원이 당장 코앞으로 다가와 걱정이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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