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구] 급증하는 '물뽕' 성범죄...원인 진단 및 올바른 해결 방안

- 물뽕은 체내에서 쉽게 배출되는 탓에 성범죄를 당했더라도 피해 입증이 쉽지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
- 전문가들은 약물 성범죄는 가차없이 특수강간 상해 형량이 내려져야 하며, 이에 관한 특례법을 신설해야 한다고 제안

‘버닝썬' 사건 이후 데이트 강간 등 성범죄에 악용되는 '물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많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에 대한 밀반입 건수는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1월 대표적인 물뽕의 한 종류로 알려진 감마하이드록시낙산(GHB·물뽕)의 원료 감마부티로락톤(GBL)을 1군 임시마약류로 지정하였지만, 이에 법조계는 마약류 처벌이 제조·유통에만 집중돼 성 착취에 대한 처벌은 불가하다고 지적하며 상대적으로 낮은 GHB의 처벌규정을 강화해야만 한다고 진단한다.



◆ 물뽕 성범죄의 심각성
이처럼 성범죄 대상 여성에게 악용되는 물뽕은 이른바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불린다. 무색무취한 성상으로 음료에 몇방울 타서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다소 취한 듯 하면서도 몸이 쳐지게 된다. 알콜류에 타서 마시면 그 효과가 급속히 나타나 의식을 잃을 수 있다. 최근들어 물뽕의 존재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해 성범죄 피해자들이 약물 검사를 요청하는 건수도 늘어나고는 있지만, 물뽕은 체내에서 쉽게 배출되는 탓에 성범죄를 당했더라도 피해 입증이 쉽지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최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관세청은 지난해 밀반입하려던 GHB 2만8,800g을 적발했다고 한다. 관세청이 본격 단속에 나선 이후 가장 많은 양으로, 2020년(469g)에 비해 61배 급증한 수치다. GHB를 포함한 신종마약 전체 밀반입 용량도 7배 늘어났다.


이 뿐만이 아니다. 신종마약 유통 증가 흐름과 맞물려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 피해 신고 건수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성범죄 피해자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약물 검사를 의뢰한 건수는 지난해 2,538건으로 2020년(1,622건)에 비해 56.5%(916건) 증가했다. △2017년 1,274건 △2018년 1,382건 △2019년 1,979건으로 증가하다가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감소했지만 다시 급증한 모양새다.


◆ 사후 추적이 어려운 물뽕
이처럼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지만, 대표적 약물인 물뽕(GHB)을 증거로 찾아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GHB는 무색무취한 액체로 음료나 주류에 혼입해도 인지가 어렵다”고 말한다. 10분 이내 약물효과가 나타나 3~4시간 지속하고 24시간 이내 체내에서 배출돼 사후 추적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GHB의 원료 GBL 또한 체내에서 같은 기능을 하는데, 두 물질 모두 체내에서 빠르게 분해되는 탓에 그간 검출이 불가능했다. 진술·CCTV 등 정황에 의존해 수사가 이뤄졌기에 입증이 어려웠고, 피해자가 정신을 잃고 수시간 동안 기억을 하지 못해 신고도 저조했다.

실제로 성범죄 피해자가 최근 5년간 국과수에 의뢰했던 8,795건의 약물 검사 가운데 GHB가 검출된 적은 단 한 건에 불과했다. 경찰측 관계자는 "피해자가 경찰을 찾기까지 평균 사흘 정도 걸리기 때문에 GHB 검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지난해 확인된 한 건도 피해자가 '기분이 이상하다'며 약물을 마신 뒤 곧바로 경찰을 찾아온 아주 이례적인 경우였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최근 밝혀진 성범죄에 사용된 다빈도 약물로는 수면제인 졸피뎀이 651건으로 가장 많았지만, 물뽕이 검출된 것은 1건에 불과했다. 그만큼 피해발생 후 입증의 골든타임이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 대응채 마련이 시급
그러나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 일본처럼 데이트 강간 약물을 별도 지정해 특별관리를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약물에 대한 규제가 마약류 관리 차원에 집중돼 있다 보니 약물을 이용한 데이트 강간과 같은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의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신현영 의원은 “매해 약물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증가하고 있고, 특히 물뽕은 인체에서 금방 분해돼 검출이 어려운 특성상 증거 부족 등으로 성범죄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제는 약물에 의한 성범죄 근절을 위한 면밀한 대응책이 시급한 상황으로, 한국도 데이트 강간약물을 엄격하게 규제, 처벌해 약물에 의한 성범죄 사건에 대한 특별관리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강도 높은 처벌이 필요
현형법상 약물 검사에서 GHB가 검출되지 않으면, 경찰은 '정황'에 의존해 수사해야 하기 때문에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 가해자를 잡더라도 GHB 남용 범죄는 최대 형량이 징역 5년에 그쳐 다른 마약류에 비해 처벌이 약한 편이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부랴부랴  GHB 원료인 GBL을 임시 마약류로 지정했지만, 3년 범위 안에서만 인정되고 있다. 임시마약류 지정제도는 마약류가 아닌 물질 중 마약류 대용으로 남용되는 물질에 대해 3년간 소지·매매 등을 금지하는 제도다. 그러나 GBL이 전자제품 제조 때 용제 및 공업용수지 원료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어 단속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신현영 의원은 "국민 안전을 위해 마약 성범죄를 기존 준강간에서 특수강간으로 변경하도록 성폭력 처벌법을 강화해야 한다"며 "GHB가 다른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큰 만큼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향으로 마약물 관리법을 개정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 해결방안은?
전문가들은 물뽕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네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제언한다.

첫째, 약물에 의한 성폭력 사전 예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물뽕은 특성상 체내 24시간 내 소모가 되기 때문에 피해 가능성에 대한 사전 인식이 있어야 대응도 가능하다. 미국의 경우 약물에 의한 성범죄 예방을 위한 지침과 홍보,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개가 열려있는 술이나 음료를 조심할 것, 클럽이나 바에서 자리를 잠시 비었을 때 남은 술잔을 버리도록 하는 등이다. 우리나라도 공식적인 가이드라인이나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흔하게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집중단속 및 예방조치가 필요하며 물뽕 등 문제의 약물을 소지하는 것만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홍보도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물뽕을 포함한 마약과 향정신성 의약품에 의한 성범죄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 범죄가 발생한 이후 대응이 빠르게 진행되도록 적극적 피해구제가 마련돼야 한다. 약물 성범죄 의심 시 피해자에 구체적 행동 절차 안내가 필요하다. 응급 검체 채취부터 조서를 쓰는 등 피해입증의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여성가족부와 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 담당 부처의 대응 방안도 매뉴얼화가 필요하다.


셋째, 약물 성폭력 피해 실태와 현황을 정기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대검찰청에서 발간하는 마약류 범죄백서는 마약류의 취급관리 및 유통에 대한 기술은 잘 돼있지만 약물 사용 성범죄에 대해선 별도 분석을 하지 않는다. 약물에 의한 성폭력 범죄 현황을 조사하고 통계를 구축해 즉각적 대응책이 마련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검출이 어려운 물뽕 등 마약류는 향정신성 의약품 분류 기준을 높여 엄격히 통제하고, 성범죄에 사용할 경우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성폭력처벌법상 기존 준강간에서 특수강간으로 취급하고, 처벌수위를 높이는 마약류관리법 개정도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약물을 이용한 데이트 강간 관련 처벌 규정 신설도 요구된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은 약물 사용에 가중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현장에서는 약물을 폭행으로 간주해 ‘강간죄’를 적용하거나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했다고 보아 ‘준강간죄’를 적용한다. 간혹 ‘특수강간’으로 판단하거나 신체의 생리적 기능이 훼손됐기에 ‘강간상해’로 판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GHB는 약물 투약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 피해자가 완전히 심신상실에 이르지 않을 것에 대비해 상황을 악의적으로 녹화하는 경우, 강간이 아니라 동의에 의한 성행위로 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약물 성범죄는 가차없이 특수강간 상해 형량이 내려져야 하며, 이에 관한 특례법을 신설해야 한다고 제안을 하고 있다.

◆ 궁극적으로는 물뽕 처벌기준을 상향 해야
현행법에 따르면 1군 임시마약류(GBL)를 소지·사용·운반·관리한 자는 최소 1년~30년 징역에 처한다. 반면 라목(GHB)에 해당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소지·관리한 자의 징역은 5년 이하다.

향정신성의약품의 분류기준은 의료·산업용 약품 유용성과 중독성 정도다. GHB는 전자제품 제조 시 용제·공업용수지 원료 등 산업적으로 쓰이고 있어 향정 라목으로 분류된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GHB가 GBL보다 법정형이 낮은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다른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약물’을 분류기준에 추가해야 하고, 악용 가능성을 반영해 GHB도 최소 ‘가’목으로 올려야 한다고 조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지난 4일 ‘물뽕과 마약에 의한 성폭력 해결방안’ 간담회에 참석한 김선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인력·장비·기술 부족으로 GHB가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고 했다. 그는 “GHB는 대사·배설이 빠른 것도 문제지만, 생체에 존재하는 내인성 물질”이라며 “12~24시간 이내 시료가 채취돼야 하는데 단기기억상실 등으로 신고가 지연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도 “상호 동의하에 유흥을 목적으로 사용되는 마약은 처벌이 어려울뿐더라,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경우에도 성폭력 범죄로는 처벌이 불가하다”며 “사후 검출이 어려운 물질들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단기적으로 범죄를 입증할 방법을 개발하고 수사관계자의 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즉각적인 신고가 이뤄질 수 있도록 GHB의 특성을 홍보해 경각심을 유도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한편, 약물이 문제가 된다고 해서 과도한 규제가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김선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GHB가 가목으로 분류될 경우 의료·산업용으로 사용될 수 없어 혼란을 야기한다. 약물 자체에 치우치기보다 행위를 가중처벌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김일수 식약처 마약정책과장도 “GHB 규제가 강화되면 당장 산업용 대체재를 찾아야 한다"며 "목적과 행위에 대한 처벌에 집중해야 한다. 오랜 검토를 거쳐 지정한 단계인 만큼, 한 단계라도 상향하기 위해선 명확한 시점과 국민적 합의가 필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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