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수술 직후 의사 폭행당했지만 단순폭행만 인정
응급상담은 법 적용 대상 아냐… 의료현장 공백 우려
의료계 “강한 처벌보다 보호 체계 정비가 우선”
응급 상황에서 환자를 수술한 의사가 보호자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이 결국 단순폭행으로 분류돼 벌금형으로 마무리됐다. 법원은 검찰의 약식기소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응급의료법은 이번 사건에 적용되지 않았다. 의료계는 “법이 보호해야 할 현장조차 외면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확인된 판결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은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소속 의사 A씨를 폭행한 보호자 B씨에 대해 지난 6월 20일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앞서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형사 공판 없이 단순폭행 혐의로 약식기소를 한 바 있다.
폭행은 지난 1월 발생했다. A씨는 배우자에게 흉기에 부상당한 환자의 응급수술을 마친 뒤, 보호자에게 환자 상태를 설명하던 중 욕설과 함께 주먹으로 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당시 병원 퇴거 조치 후에도 경찰의 경고를 무시하고 병원에 다시 찾아왔으며, 결국 의료진을 무방비 상태에서 가격했다.
A씨는 사건 직후 “응급의료법 위반이며 선처 의사는 없다”는 입장을 경찰에 명확히 밝혔으나,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해당 법은 적용되지 않았다. 경찰은 “환자 상담은 응급의료법상 보호 대상인 처치나 구조, 이송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놓았고, 검찰도 이를 수용했다.
의료계가 이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응급의료법의 실효성 문제 때문이다. 해당 법은 응급환자 진료 중인 의료인에 대한 폭력에 대해 최대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법 적용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진료 중 폭력의 경중을 구분하기 어렵고, 처벌 수위가 높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이 응급의료법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 현장에서는 경미한 폭력이 다수인데, 경찰은 처벌 수위 때문에 단순폭행으로만 처리하려는 사례가 많다”며 “결국 법률만 강화해서는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폭력 상황이 벌어져도 의사는 바로 다음 환자를 진료해야 한다. 그 부담은 결국 의료진 개인에게 고스란히 남는다”며 “병원장이나 보건소장 등 지역 책임기관이 나서 피해 대응을 분담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계는 단순한 처벌 강화보다 현장 중심의 보호 체계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피해 당사자인 A씨는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고, 법원과 검찰에도 진정서를 제출했다. 아주대병원 교수회 등은 약 2500여 명의 탄원서를 함께 제출하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응급의료법 개정 움직임도 시작됐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은 응급상담 행위를 폭행 금지 대상에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다. 실제 응급의료 현장에서 상담 과정이 진료의 연장선이라는 점을 반영한 조치다.
하지만 법 개정과 별개로, 수사기관의 해석과 현장 적용 간 격차가 존재하는 한 유사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여전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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