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정부가 100% 보상해야...무과실 의료사고 국가보장제 도입 필요성
-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가 전액을 부담하는 ’무과실 임산부 의료사고 국가 보장제‘ 도입이 필요
- 분만 감소로 분만실을 폐쇄하거나 폐업하는 산부인과 병의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분만 수가를 높이고 경영을 지원해야
저출생 기조와 맞물려 붕괴한 분만 인프라를 국가의 전면적인 지원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보장제도 등을 통해 안전한 임신·출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특히 일선 전문가들은 임신·출산 비용 지원과 차별 없는 임산부 건강권 보장을 통해 무너져가는 산부인과 분만체계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18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임산부와 여성 건강을 위한 22개 정책’을 제안했다. 항목은 임산부 건강(10가지), 여성 건강(10가지), 지속가능한 산부인과학 발전(2가지)으로 구성됐는데, 이번에 산부인과학회가 공개한 정책은 윤석열 당선자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전달됐다.
◆ ’무과실 임산부 의료사고 국가 보장제‘ 도입 필요
산부인과학회는 국가가 분만은 물론 임신 진단부터 출산 후 회복 기간까지 의료비를 지원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가 전액을 부담하는 ’무과실 임산부 의료사고 국가 보장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중신 산부인과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무과실 의료사고가 일어날 경우 의료인에 대한 보호장치가 없다“며 ”소송 시에도 의료인은 보호장치 없이 무방비로 노출돼, 전공의·전문의들 기피가 심각하다“고 제도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나쁜 결과가 나왔다면 누군가는 과실 책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의사는 신이 아니고, 원칙적인 진료를 해도 나쁜 결과는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같은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 학회에 따르면 일본과 대만의 경우 과실이 없는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가 100% 보상하고 있다.
일본은 보험금 형태로 뇌성마비 발생 시 건당 한화 약 3억6000만원을, 대만은 예측하지 못한 신생아 사망에 대해 한화 약 1100만원, 모성 사망에는 약 7100만원을 지급한다.
대만의 경우 3년간 무과실 보상제를 운영해본 결과 의료소송 빈도가 70% 줄고, 전공의 지원율도 향상됐다는 설명이다.
◆ 나날이 심해지는 분만 기피 현상
국내의 경우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분만 기피 현상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해 1월 학회가 산부인과 4년차 및 산과 전임의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설문 결과 응답자 중 79%가 ‘의료사고의 위험성’ 때문에 분만을 맡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지난 2019년 전국 산부인과 전문의·전공의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당시 응답한 전문의 중 분만을 담당하지 않는 경우는 무려 42.4%에 달했다.
분만을 그만두게 된 이유로는 역시 ‘의료사고에 대한 우려 및 분만 관련 정신적 스트레스’가 38%로 가장 높았다. 이어 ‘실제 의료사고가 발생해 이로 인한 소송 발생을 계기로’ 그만뒀다는 응답도 17%로 집계됐다. ‘병원 적자 등 경제적 원인’ 17%, ‘분만 의사로서 누적된 육체적 스트레스’ 16%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젊은 의사일수록 산부인과 기피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설문에 응답한 전공의 중 절반 이상인 57%가 ‘전문의 자격 취득 후 분만을 담당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에 박 이사장은 ”최근 저출산으로 국가적 재난 상황에 닥쳤다. 분만 인프라 붕괴뿐만 아니라 산부인과 존립 자체가 문제다. 새로운 정부는 임산부와 여성 건강을 위해 다양한 모성보호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의사는 신이 아니고 교과서적이고 원칙적으로 최선의 진료를 해도 나쁜 결과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잘못했다‘는 인식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의사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분만하겠다는 산부인과 의사가 점점 줄고 그만큼 안전한 환경에서 임신과 출산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전국적으로 분만 취약지 증가...분만 수가를 높이고 경영을 지원해야
분만 인프라 유지를 위해 시설과 인력 양성에도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내 분만의료기관은 지난 2007년 전국 1,027개소에서 2019년 531개소로 51.3% 감소했다. 분만취약지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0년 12월 기준 250개 시·군·구 가운데 산부인과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이 23곳에 달한다.
학회는 분만취약지 해소를 위해 100~300병상 종합병원 내 산부인과 개설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2000년까지는 해당 규모 종합병원에 내·외·산부인·소아청소년과 4개 진료과목이 필수로 있어야 했지만 2001년 보건복지부의 병원 활성화 대책에 따라 4개 중 3개 진료과목을 설치하는 것으로 완화됐다.
이에 2000년 이후 종합병원 가운데 분만병원은 가파르게 감소했다. 2007년 133개에서 2019년 83개로 줄었다. 매년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 규모도 지난 2004년 259명에서 2020년 124명으로 15년만에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즉 산부인과 전공의 57%가 전문의 수료 후 분만을 포기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인프라 붕괴는 자연스럽게 모성사망비 증가로 이어졌다. 출생아 10만명당 모성사망수는 지난 2017년 7.8명에서 2020년 11.8명으로 증가했다.
이에 박중신 이사장은 ”출산률이 떨어지다 보니 산부인과 의사가 줄고, 분만 인프라도 감소해 분만취약지가 늘었다“며 ”안전한 환경에서 임신과 출산을 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학회는 ”산부인과학을 전공하기를 기피하는 젊은의사와 고위험 임신을 주로 맡는 대학병원 전문의의 인건비를 높여야 한다“며 ”응급수술이 잦고 대기 또한 긴 산부인과 수술의 수가도 인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분만 감소로 분만실을 폐쇄하거나 폐업하는 산부인과 병의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분만 수가를 높이고 경영을 지원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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