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의 필요성...수가 인상도 절실

- 만성적인 전공의 지원율 미달, 분만의료기관 감소 등 인프라 붕괴가 가속해 산모·신생아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
-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아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전∙현직 집행부는 비합리적인 의료제도가 분만 인프라를 붕괴시키고 있는데도 정부는 현실을 방치만 하고 있다 지적하며,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3일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추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를 열고 만성적인 전공의 지원율 미달, 분만의료기관 감소 등 인프라 붕괴가 가속해 산모·신생아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 코로나19 여파가 더해지면서 양성 산모들이 병상을 배정받지 못해 소위 ‘길거리 분만’을 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석 전임회장은 분만 의료기관의 어려움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우려하며, 지금 같은 추세론 5~10년 안에 산부인과 인프라 붕괴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간 의사회 차원에서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정부에 지속적으로 제안했지만 이렇다 할 조치는 없었다고 규탄했다.

김 회장은 "산부인과 의사의 현실이 이상해졌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만나면 '아직도 분만을 하느냐'고 묻고 분만의는 멋쩍어한다. 그러다 분만을 접으면 위로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축하받는다"며 "분만 진료는 물론 산부인과 자체도 계속 없어지는데 정부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차기 집행부는 임기 내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의료사고 발생 시, 종합공제에 가입돼 있다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이다. 선의의 목적으로 이뤄지는 의료행위에 형사적 책임을 면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는 의료분쟁조정법 46조에 따라 불가항력적 무과실 분만 사고에 대해서만 보상이 이뤄지고 있어 일선 산부인과 의사들은 실무 과정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 특히 전화를 늦게 받았다거나, 다른 병원에 보내는 것이 늦어졌다는 이유 등으로 소송에 휘말리는 의사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학회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 분만 의료기관이 보상금의 30%를 부담하는 규정을 폐지하고 100% 국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저출산 문제도 있지만 사실상 산부인과 지원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소송의 위험 때문이다. 지금 사회는 신생아와 모성 사망 수치를 '0'으로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분만 전 검사로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런데 산부인과 의사에게 무조건 책임을 묻고 법원은 동정표 때문에 처벌하고 있다.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산부인과는 분만이 응급일수도 아닐 수도 있는 애매한 상황”이라며 “산모가 수술에 들어가는 경우 10만명당 0.7명이 모성 사망하는데, 우리나라도 한해 20명 이상은 사망할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덧붙여 일본은 뇌성마비, 태아 사망 등 국가가 책임지고 있다”며 “그런 시스템을 도입해야 산부인과 몰락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속에 분만 인프라의 위기는 더욱 두드러졌다. 최근 불거진 '길거리 출산' 문제도 결국 분만 의료기관 부족이 빚은 사태라는 게 현장 목소리다. 정부는 확진 임산부 분만 시 300% 가산수가를 적용하기로 했지만 이조차 역부족이라고 했다.

김동석 회장은 "평상시 필수의료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니 코로나19라는 비상 상황에서 '길거리 출산'이라는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산모와 신생아를 위협에 빠트리는 게 지금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김 회장은 "한시적인 300% 인상이 아니라 지금보다 5~10배 인상된 정상 수가를 제시해야 한다. 코로나19 환자가 출산한 병원은 다른 임산부나 환자가 기피한다. 분만 의료기관이 선뜻 지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또 코로나19 양성 산모와 신생아를 분리해서 관리해야 하는데 시설과 인력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다른 임원들 또한 분만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전했다. 안산시에서 마지막으로 분만병원을 운영하던 박혜성 차기수석부회장 역시 지난해 분만을 포기했다.


박 차기수석부회장은 "2~3년 전부터 산부인과 의사들이 소송에 걸리기 시작했다. 만약 본인이 분만을 하다가 사고가 나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나 하는 걱정에 분만을 중단하게 됐다"며 "당직을 설 수 있는 의사도 줄어 현실적으로 분만병원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성윤 공보이사는 "인력이 없어 간호사들이 2교대로 근무하는 상황. 이 경우 인건비가 엄청나게 늘어나지만 어쩔 수 없다"며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간호사를 채용할 수 없는데 정부는 관련 채용 규정만 따지고 있다. 간호사 처우도 중요하지만 로컬 병원 어려움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선제 산과의사회는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도 분만 인프라 붕괴를 부추기고 있다고 강조하며, 그 해결책으로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김재유 신임회장은 "산부인과계에서 명성이 높은 전임회장님의 임기가 끝나 신임회장으로서 걱정이 앞선다. 산부인과 문제에 대한 개선 요구가 받아들여지도록 노력하겠다"는 소감을 밝히며 "본과에서 분만을 그만두면 우스갯소리로 축하한다는 말이 나온다. 전문의 입에서 빨리 분만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이 나오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김 신임회장은 "잘못이 있으면 배상하는 것이 맞지만 이처럼 사소한 문제로 소송에 걸리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며 "산부인과 지원율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보호책이 없기 때문. 해당 법은 분만 인프라 붕괴를 막기 위해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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