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에게 온 16만 원,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 입금된 정체불명의 16만 원... 며칠 뒤 계좌 지급 정지에 통장 묶인다
- ‘지급 정지’ 조항 악용해 수백만원 요구... “지급정지 풀어줄테니 300만 원 달라”

지난해 12월 27일 연말 저녁을 즐기던 A씨의 카카오뱅크 계좌로 16만 3,061원이 입금됐다. 1분 뒤에는 1원이 추가입금 됐다. 두건 모두 입금자 명에 ‘전화주세요’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모르는 계좌번호에서 온 송금에 당황해하던 찰나에 A씨의 휴대폰으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입금자의 전화였다.



이후 상황은 더 황당했다. 입금자는 “제 카카오뱅크 계좌로 16만 원이 빠져나갔던데 이게 뭔가요? 저는 자동이체 한 적도 없는데”라며 오히려 자초지종을 물었다. A씨는 상황을 입금계좌 주인에게 설명한 뒤 경찰서를 방문했으나 경찰은 “별일 없을 것”이라며 A씨를 돌려보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일 뒤인 지난 6일 A씨의 모든 계좌가 지급정지됐다. 사유는 ‘전기통신금융사기에 의해 사기이용계좌가 됐다’는 안내문자로만 전달됐다. A씨는 “제 명의가 도용당한 건지, 16만 원을 입금한 계좌의 주인이 도용당해서 저까지 엮이게 된건지 모르겠다”며 “당장 이번 달 대출금도 다 납부해야 하는데 정말 미치겠다”고 토로했다.

국민 인식 개선 등으로 대포 통장을 구하기 어려워진 탓에 보이스 피싱 수법이 점점 더 기상천외하게 진화하고 있다. A씨가 당한 수법의 경우 본인들이 해킹한 1차 피해자 계좌로 불특정 다수에게 소액을 송금해 2차 피해자의 전 계좌의 지급정지를 유발한 뒤 이를 빌미로 2차 피해자에 돈을 뜯어내는 방식이다. 금융회사들이 보이스 피싱에 연루된 계좌를 지급 정지할 때 명의인의 모든 계좌를 정지하는 관행을 이용한 수법이다.

19일 금융소비자연맹은 이 같은 보이스피싱 사기가 최근 성행하고 있다고 소비자주의보를 발령하며 경고했다.

우선 사기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1차 피해자의 금융정보를 탈취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문자나 메일, 소셜미디어(SNS) 등으로 악성 코드를 보내 이를 클릭한 이들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등을 알아낸다. 이 상태가 되면 보이스피싱 조직은 1차 피해자의 계좌에서 자유롭게 송금할 수 있다.

조직은 이후 인터넷을 통해 2차 피해자를 찾는다. 개인사업자인 탓이 계좌번호가 인터넷에 노출되어 있는 이들이 주된 타겟이다. 대부분 개인사업자들은 대출이 있는 만큼 추후 통장이 지급정지되었을 때 협박이 용이하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1차 피해자 계좌로 2차 피해자 계좌에 5만~20만원가량의 소액을 입금한다. 이후 즉시 1차 피해자인 척 금융기관에 ‘나도 모르는 새 송금이 됐다’며 지급정지를 신청한다. 지급정지를 요청받은 금융기관은 사기이용 계좌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하면 계좌를 정지한다. 현행법상 피해금을 송금한 계좌를 관리하는 금융기관에도 이를 알려야 해 이를 안내받은 금융기관도 통상적으로 지급정지를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1·2차 피해자의 모든 계좌가 지급정지가 되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모든 계좌가 지급정지돼 난감해 하고 있을 2차 피해자에게 연락해 “지급정지를 풀어줄테니 200만원을 달라”는 식으로 이들을 협박한다.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소장은 “돈을 보내더라도 보이스피싱 조직이 계좌 정지를 풀어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금융소비자연맹 강형구 사무처장은 “2차 피해자에게 최대 300만원까지 요구한 사례도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수법의 보이스 피싱이 생했을 때 가장 빠르게 해결하는 방법은 금융기관 중재 하에 송금인(1차 피해자)과 수령인(2차 피해자)가 합의하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소액이 입금되면 금융기관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한 뒤 담당자를 연결받고, 범죄 연루 정황이 없는 걸 입증하면 된다. 이 경우 비교적 빠른 시일 내 계좌 정지를 풀 수 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이 같은 사기는 ‘지급정지’를 명문화한 현행법을 악용한 것이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4년 개정된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엔 보이스피싱 조직이 범죄수익금을 빠르게 인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지급정지 조항이 포함됐다. 이후 지급정지 제도가 활발히 활용돼 범죄수익금 인출이 어려워지자 이를 악용해 또 다른 사기를 벌이는 것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지급정지 제도는 1차 피해자인 송금인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반면에 선의의 2차 피해자에게는 금융거래의 불편을 초래한다”며 “전 계좌 지급정지보다 신고된 액수만큼을 지급정지하고 (나머지에 대해선) 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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