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소청과폐지, 남 얘기 아니다”... ‘분만실 폐쇄’ 언급

- 김재연 산부인과의사회장, 전공의 지원율 하락 우려에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 “인턴들 사이에서는 이미 기피과, 지원하면 돌아이, 미쳤냐는 소리 듣는다”
- “불가항력인 분만사고... 언제까지 의사책임으로 몰아세우나” 분만 인프라 개선 호소

최근, 법원이 분만 과정에서 영구 장애를 입게 된 산모에게 의료기관이 10억 원의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회와 의사들이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개원의들의 ‘소청과 폐과’처럼 분만실을 폐쇄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강도 높은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현 회장은 지난 2일 서울 소곡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49차 춘계학술대회’의 기자간담회에서 분만 기반 유지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 강화가 절실하다고 거듭 촉구했다.

산부인과의사회에 따르면 분만 과정에서 과다출혈 등으로 뇌손상 장애를 입게 된 A씨가 의료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항소심 끝에 의료기관이 10억 6,180만 원의 원금 배상금과 사고가 발생한 2016년 2월 이후의 이자를 계산하여 A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1심에서 법원은 ‘불가피한 의료사고’임을 인정하여 산모의 청구를 기각했으나 2심에서 의료기관 측의 과실이 인정되어 결과가 뒤집혔다. 이에 의료기관은 재판부가 인정한 배상금과 함께 이자까지 총 15억 원을 산모 측에 배상해야 한다.

김 회장은 이번 판결과 관련해 “법원 판결 이후 분만 현장에서는 당장 이 상태로 분만을 어떻게 해야 하냐, 우리도 소청과 폐과처럼 분만실 폐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이번 판결로 분만 현장이 받은 충격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분만 1건당 100만 원 정도 비용을 받을 수 있다면, 배상액 10억 원을 벌기 위해서 1,000건의 분만을 받아야 한다”며 “단일 사건 배상을 위해 10년을 쏟아 부어야 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분만실 인프라는 유지되기 어렵다”고 탄식했다.

이어 “이번 판결대로라면 의료적 판단을 의사가 아닌 법원에서 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이는 산부인과 의사들뿐만 아니라 중환자들 사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모든 진료가 위축되지는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법원 판결로 안 그래도 저조한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불가항력 분만사고 국가책임제’(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김 회장은 “10년 전 인천에서 발생한 분만사고로 형사 책임을 물었던 사건 이후 산부인과의 지원율이 50% 수준으로 급감했다”며 “대법원에서 무혐의 판결로 종결되긴 했지만 법원의 갈팡질팡 판결이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 하락으로 이어진 사건”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사실 이미 인턴들 사이에서는 산부인과를 지원하면 ‘미쳤냐’, ‘돌아이냐’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이미 기피과로 낙인 찍힌 것”이라며 “계속해서 이런 식의 판결이 나온다면 산부인과 뿐만 아니라 필수과를 지원하는 전공의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도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에 악영향을 끼칠까 우려스럽다”면서 “의료사고 피해 구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분만 현장의 의료진 이탈은 가속화 될 수 밖에 없다. 정부와 국회가 전향적인 자세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폐과 선언 여파가 산부인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고령산모의 증가로 인해 미숙아 출산이 많아지고 있는 현재 분위기에서 분만 병원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의사가 소청과전문의지만 이대로라면 응급상황 대처가 어려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산부인과와 소청과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로, 소청과가 없어지면 산부인과도 그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40세 이상 고령 임신으로 저체중 태아와 신생아 중환자실 입원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소청과 폐과 선언은 분만병원 미숙아들을 소청과 의사들의 적절한 응급조치를 통해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아 의료체계가 엉망이 될 때까지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이 거세다”면서 “개원가에서 소청과 의사들이 사라지면 분만 병원은 소청과 의사들을 구할 수 없게 되고 고위험 임산부들은 대부분 상급 병원으로 전원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 국가가 적절하게 아이들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과연 국가의 존립 이유가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면서 “소청과의사회의 폐업 선언에 적극 공감하며 정부의 신속한 해결책을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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