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제자리 응급실 뺑뺑이... 과연 의료진 책임이 맞을까

- 당·정협의회서 의료인 책임론 등장 “안이한 대처”... 의료계 크게 우려
- 정부, 응급실 최종치료 역량에만 매몰된 정책 고집... “현장 의견 아예 수용 안해”
- 소청과 폐업 선언 응급실까지 여파 “과밀화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

대구에서 10대 여성이 추락사고를 겪은 뒤 응급실로 가지 못한 채 이 병원, 저 병원을 헤매다 사망한 사건에 대해 정치권에선 의료진 책임론이 힘을 얻으면서 의료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응급실에 최종치료 의무까지 부여하는 정책 기조가 근본적인 문제라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최근 대구 10대 여성이 사망한 사고에 관해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와 정치권 등에서는 의료진의 대처에 문제가 있었다며 의료진 책임론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5일 국민의힘은 정부와 ‘소아·응급·비대면 진료 당·정협의회’를 진행하고, 이 자리에서 정부에 지난달 발표된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 중 응급실 포류 관련 대책을 신속하고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해당 대책의 내용은 ‘중증응급의료센터의 최종치료’, ‘중증응급분야 건강보험 수가 인상’, ‘야간 휴일 당직비 지원’, ‘적정 근로시간 보장 등 의료진 근무여건 개선’, ‘구급대 출동 및 응급실 진료 정보 실시간 공유 시스템 구축’, ‘수용 거부 방지하기를 위한 주기적 검사’ 등이 거론됐다.

또, 의료진의 안이한 대처로 발생한 인명사고라면 반드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책임론도 강조됐다. 이를 통해 소위 ‘응급실 뺑뺑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사고도 마찬가지로 엄격한 진상조사로 상응하는 조치를 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것에는 당정이 뜻을 같이했다.



◆ 10년 전 대구 장중첩 사고 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일선 현장에서는 의료진 책임으로 몰아세워지는 이런 상황이 낯설지가 않다. 지난 2010년 대구에서 4세 여아가 장중첩을 일으켜 응급실을 전전하다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후 의료진 2명이 형사 처벌을 받았고, 정부는 24시간 당직체계 등 개선 방안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해당 사건이 발생한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번 사고처럼 비슷한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고, 오히려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그 때처럼 의료진 책임을 운운하며 같은 대책만을 반복하고 있다.

실제 정당한 사유 없이 수용을 거부하는 것을 금지한 의료법 개정안은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되고 있고, 정부는 지난달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을 통해 응급환자에 대한 의료기관의 수용 책임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대책에 의료계가 꾸준히 반발하는 이유는 근본적을 ‘응급실이 왜 환자를 받지 못하냐’는 이유에 대한 고민은 없이 의료진 처벌만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복지부는 역시 이런 대책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걸 알고 있지만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이런 움직임(의료진 처벌 강화)을 보이는 것 같다”며 “이번 대구 사고로 인해 응급실이 환자를 거절하는 상황에 부담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무리하게 수용했다가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무작정 최종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받는다면 간단한 응급처치만을 하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할 수 밖에 없다”며 “하지만 이후 결과가 좋지 않았을 경우 처음 진료했던 병원에 책임을 물어 고소까지 당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그럼에도 정부는 “응급실이 최종치료해야” 고집... 응급실, 차라리 행정처분

때문에 현장에서는 이런 부담까지 떠 안아가면서 무작정 환자를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다. 무리하게 환자를 받아 법적 책음을 감당하기 보다는 차라리 환자를 거부해 행정처분을 받는 것이 낫다는 기조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이 같은 문제의 원인으로 정부가 응급실의 최종치료만을 강조하는 정책의 기조를 고집하는 것이라고 꼽았다. 응급실 본연의 역할은 사망 가능성이 높은 중환자일지러도 일단 수용해 최소한의 응급처치라도 하고, 그 이후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고 서명햤다. 그러나 정부는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응급실 최종치료 역량에만 매몰된 정책을 고집하고 있고, 때문에 현장에서의 ‘최종치료 불가’ 입장은 아예 수용하지 않는 형태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도착한 자리에서 최종치료까지 모두 하겠다는 것은 욕심에 불과하다. 현재 권역외상센터는 정말 답이 없는 수준으로 20개 중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곳은 3~4개 수준에 불과하다”라며 “외상센터라고해서 최종치료를 모두 제공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낮은 단계에서 1차 외상 처치를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늘리는 것이 해결책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 ‘소청과 폐업선언’ 여파까지 덮치는 응급실... “필수의료 붕괴되면 과밀화 더 극심할 것”

응급의학의사회는 필수의료 붕괴로 응급실 과밀화 문제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내과·외과 문제는 이미 붕괴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심각했고, 지난달 29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폐업 선언에 따른 풍선효과로 아예 동네의원을 거치지 않고 응급실로 직행하는 소아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다만 이후 좌담회가 이뤄지는 등 정부가 경각심을 가지고 소청과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상황은 긍정적으로 조명했다.

이와 관련 이 회장은 "필수의료과들이 가라앉으면서 대학병원 응급실은 코로나19 이전보다 환자가 더욱 많아졌다. 1차 처치를 받을 곳이 줄어드니 모두 응급실로 몰려드는 상황"이라며 "특히 소청과 폐업 선언 이후 소아 환자가 엄청나게 늘었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환자가 응급실 외엔 갈 곳이 없으니 과밀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다만 현장 반발이 너무 심하니 복지부가 좌담회를 열고 현장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등 문제 개선 의지를 보이는 상황은 긍정적"이라며 "지금은 연구를 할 때가 아니라 뭐라도 시행해 효과를 파악하고 즉각 개선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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