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내리는 소아과, 절규에 가까운 마지막 호소

-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대국민작별인사’ 기자회견... “폐과 후 일반진료로 전환”
- 유일한 수입원 진료비 턱없이 낮고 정부 대책도 무의미
- 보건복지부, 긴급대책반 구성해 점검 후 대안 마련 예정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소아청소년과 폐과를 선언했다. 소아청소년 진료만으로는 병·의원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고, 이 같은 사실을 정부 등 관련 부처에 지속적으로 호소했으나 이렇다 할 대책이 없어 일반진료로 전환하겠다는 설명이다.



29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을 열어 의사회 차원에서 현 소아청소년과 의원들의 일반 진료 역량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내과·피부·미용·통증 등의 교육을 진행하는 트레이닝 센터를 의사회 차원에서 운영해 소청과 전문의들의 병·의원 과목 전환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의사회 커뮤니티 등을 통해 회원 여론조사를 한 결과 90%의 회원이 적극적·간접적으로 소청과 폐지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게다가 이미 수익성 문제로 인해 간판을 변경하거나 일반진료환자를 늘린 소청과 병·의원도 많다고 설명했다. 회원들의 뜻에 따라 의사회 차원에서 이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임 회장은 “코로나19 사태를 지나오며 소아진료만으로 병·의원을 운영하기는 어려워졌고, 이 때문에 일반진료로 전환한 회원들이 많이 늘어났다”며 “우리는 이전부터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몇 년 뒤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해왔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타의에 의해 폐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토로했다.



◆ 10년간 유일하게 진료비 감소한 소청과

소청과는 국내 의료수가 체계상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고 환자가 어린이여서 진찰 외에 추가로 할 수 있는 처치와 시술도 찾기 힘들다. 사실상 수익을 진료비로만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임 회장은 “소청과의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는 사실상 30년째 동결됐고 동남아 국가의 10분의 1이어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유일한 비급여 시술이던 소아 예방접종조차 대부분 국가필수예방접종(NIP)사업으로 포함돼 사라지는 추세는 소청과 병의원의 재정난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지난달 6일에도 질병청은 생후 2~6개월 영아가 접종받는 로타바이러스에 대한 백신도 국가필수예방접종에 새롭게 포함시킨 바 있다.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이 고가의 의료 장비나 미용시술을 통해 막대한 비급여 수익을 내고 있는 것과 달리 정작 어린이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소청과는 거의 유일한 비급여 수익이 백신인 탓에 수익 창출에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로타바이러스 접종의 경우 소청과는 기존 가격의 40%수준만 받으며 접종하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동네 소청과들이 낭떠러지로 몰리는 판국이다. 지난해 전 의료과목의 요양급여비용 총합은 18조 7,710억 원으로 이전 해보다 10.2% 증가했다. 그러나 이 중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연평균 진료비가 감소한 유일한 과목이 소청과이며, 진료비 규모를 수치화하더라도 5,134억 원(2021년)으로 전 과목 중 최하위이다.

임 회장은 “지금 상태로는 병원을 더 이상 운영할 수가 없다”면서 “지난 10년간 소청과 의사들의 수입은 25%가 줄었고 그나마 지탱해주던 예방접종은 100% 국가사업으로 저가에 편입됐고, 국가 예방접종 사업은 시행비를 14년째 동결하거나 100원 단위로 올렸다. 예방접종(수입)은 아예 없어졌다”고 토로했다.

지난 2021년 운영하던 소청과를 폐업한 후 현재 일반의로 근무하는 A씨는 “소청과 의사들이 경영난을 호소하게 되면 일각에서는 의사들이 돈벌이를 위해 아이들 목숨을 이용해 비싼 백신을 국가필수예방 접종으로 전환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여론을 호도한다”며 “어떤 의사가 더 많은 국민이 백신을 접종하는 것을 반대하겠느냐”고 호소했다.

이어 “국가필수예방접종 전환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라며 “적절한 보상이 동네 소아과가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십수년간 이어진 우려에도 정부 대책 실효성 ‘0’

단지 하루이틀만에 내려진 결정이 아니다. 소청과는 지난 2019년에도 폐과를 검토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을 정도로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표현해왔다. 이에 정부와 관련 부처들도 이들을 위한 대책 마련과 발표를 이어왔다.

그럼에도 문제는 해결되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되기만 했다. 정부가 내린 대책은 늘 보여주기 식에 지나지 않았으며 낮은 수가으로 인한 재정악화와 처우, 그로 인한 인력 부족이 원인임에도 서비스나 시설만 확충하는 식의 대안에 그쳤다. 특히 어린아이를 진료하는 만큼 민형사상의 면책권이나 이들을 위한 어떤 보호장치도 마련하지 않았다.

몇 천원짜리 진료를 하다가 자칫 실수라도 하게되면 수천 만원의 손해배상을 내야할수도 있는 과목이 바로 소청과다. 실제로 최근 소아 환자 귀 내시경 검사를 진행하며 귀지를 제거하는 도중 출혈이 발생했다며 담당 의사에게 2000만 원 대의 민사 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있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이미 운영하고 있던 달빛어린이병원을 2배 이상 늘리는 등 시설과 서비스 확충에 집중한 방안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34개 달빛어린이병원에서조차 소청과 전문의가 부족한 곳이 수두룩한 실상에 실효성은 0에 가까운 대책이었다.

단순히 소청과 전문의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없는 수준이다. 의사들은 바보가 아니기에, 그 누구도 처우도 좋지 않고, 보상도 적은 소청과에 지원하지 않는다. 단순 사명감만 가지고 종사하기엔 너무도 험난한 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상반기 전국 대학병원 38곳에서 소청과 레지던트(전공의)를 지원한 의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소청과 전문진료 대신 일반 진료로 전환

이에 소청과의사회는 의사회 차원에서 현 소아청소년과 의원들의 일반 진료 역량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내과·피부·미용·통증 등의 교육을 진행하는 트레이닝 센터를 의사회 차원에서 운영해 소청과 전문의들의 병·의원 과목 전환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임 회장은 “이미 요양병원이나 내과·통증클리닉, 피부·미용 등으로 전환한 회원이 많다. 소아 진료를 유지한다고 해도 급여 진료는 접고 심리상담과 발달지연을 하는 상황”이라며 “폐과를 선언한 것은 이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폐과할 수밖에 없다는 회원들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진료로 전환한 회원들에게 물어보면, 모두가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일해왔는 줄 몰랐다’고 말한다. 그동안 정신적·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지금의 삶에 매우 만족한다는 반응이다”라며 “그동안 진료를 하면서 뺨을 맞기도 하고, 아이 귀를 파주다 피가 났다는 이유로 소송에 걸리기도 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물론 소청과 의사를 하면서 아이들이 나이지고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보람차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우리가 아이들을 도저히 볼 수 없는 형편이기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노키즈 존에 해당하는 업무를 철저히 교육하는 트레이닝 센터를 운영하면 회원들이 다른 과목의 환자들을 보는 일에 종사하기까지 약 1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회원이 이에 동의하고 있고, 못해도 절반 정도는 직접 참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 보건복지부, 긴급대책반 구성해 대안 마련 나서

소청과의 폐과선언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보건복지부였다. 복지부는 긴급대책반을 구성해 관련 상황과 대책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임인택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국민들의 소아의료 이용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긴급대책반을 구성해 상황을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필수의료 지원대책과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 발표 이후 이행 상황을 매월 점검중에 있다”며 “앞으로도 분기별 이행 점검 결과를 설명하고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속도감있는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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