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 올리면 의사 고용 아닌 고스란히 병원 수익으로 갈 것”

- 의대 정원 확대, 의사 단체 반대 속 공급 제한 해제, 공공의대설립, 공공의사 면허부여 등 다양한 주장 나와
- 수가 개선, 꼭 필요한 필수과 중심의 개선과 전문의 처우 개선위한 유도책도 마련돼야

붕괴 직전의 위기에 놓여있는 필수의료와 지방을 중심으로 수년전부터 이어져온 고질적인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늘 양끝에는 건강보험 의료수가 개선과 의대 정원 확대가 제시되고 있다.

시민단체와 보건의료행정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을 크게 늘려 의사 수를 확충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의사단체 등 의료 단체들은 “필수의료에 야박한 수가체계 개편 없이는 정원을 늘려봐야 새로 배출될 의사들도 결국 ‘돈 되는 로컬’로 향하게 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사실 둘 중 한 방법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적절한 수준’의 의사 수 증원과 동반한 ‘적재적소’의 수가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만 필수의료와 지방의료에 인력을 충원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 의대 정원확대, ‘얼마나’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

우선 현재 3,058명으로 고착화된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릴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 다양한 숫자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적정 규모가 얼마냐는 진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진 적이 없다. 증원 움직임이나 여론이 형성될 때마다 당사자 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증원을 결사 반대해 논의 자체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공개적으로 언급된 숫자를 살펴보면, 연간 300명 대부터 1,000명 이상까지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어 왔다. 박은철 연세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사단체와 정부간의 합의에 따라 줄인 ‘정원 351명’을 다시 늘려야 한다는 방안을 주장했고, 경실련 등 더 강경한 의대 증원파 측은 ‘연간 최소 1,000명’을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정부였던 문재인 정부는 “연간 400명씩 10년간 한시적으로 총 4000명을 더 뽑겠다”는 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떻게 늘릴 것인가’이다. 증원 목적은 인력이 실시간으로 이탈하고 있는 필수의료와 지방병원 의사를 충원하기 위함이다. 이에 의사단체가 지적하는 “지금 구조에서 의사 수를 늘려봤자 돈 안 되고 힘든 기피과는 어차피 안 갈 것”이라는 주장은 상당한 일리가 있다. 단순히 숫자만 늘리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물론 일각에서는 ‘의사 공급 제한’을 풀면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존재하기는 한다. 의사가 늘면 현재 인기가 폭발하고 있는 피부와 미용, 통증 같은 분야들이 레드오션이 되고, 결국에는 많은 의사들이 바이탈과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이런 예상도 ‘기대’일 뿐 효과를 확신하기는 어렵다. 현 제도 하에서는 의사의 진료과목이나 근무지를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예 의대생을 뽑을 때부터 과목이나 근무지를 정해서 모집하자’는 주장도 힘을 얻기도 했다. 실제 이런 방식을 활용한 것이 일본의 ‘지역 정원’ 제도이다. 지방의대 생활 6년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생활비와 학비를 지원 받고, 대신 의사면허를 취득하면 지역 내 기피과에서 9년 간 근무하도록 하는 것이다. 의무 근무를 거부하면 지원 받았던 금액의 150%를 반납해야 한다.



과거 문재인 정부가 제시했던 공공의대 신설과 ‘10년 의무복무 지역의사제’도 이와 비슷한 구상이다. 지역 필수 공공의료에 종사할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국가가 선발해 지원, 교육, 훈련을 하겠다는 것인데, 다만 이 ‘10년’안에 통상적으로 4~5년이 소요되는 수련기간, 3년에 이르는 군 복무 기간까지 포함되다보니 실질 의무복무 기간은 3년 남짓의 짧은 시간이라는 지적이 쏟아졌었다.

반 강제성이 있는 지역의사제 같은 ‘별도 트랙’보다, 차라리 지방 의대에서 해당 지역 출신의 인재를 많이 뽑아 자연스럽게 연고지에 정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부산·경남·울산 지역 의대는 지역 인재를 많이 뽑아 이들의 연고지 정착을 유도하고 있다.

의사단체인 의협 바른의료연구소는 공공의사 면허를 따로 도입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지역 배치를 할 수 있는 '의사 공무원'을 따로 양성하되, 공공병원에서만 일하게 하고 민간 영역을 침범하지 말자는 것이다. 정원은 별도 트랙에서 선발하고, 교육은 기존 의대에 위탁하는 방식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돈을 덜 받는‘ 공무원 의사가 민간 의사만큼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이탈 없이 중증·응급 분야의 고된 업무를 장기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분명히 존재한다.

◆ 수가는 정말 필요한 곳에 올려줘야 한다

의사들의 핵심 주장은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보상을 늘려서 의료 공백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건이 개선되면 바이탈과에 관심이 있는 사명감 있는 의사들이 포기하지 않고 대학 병원에 남을 것이며, 보상을 대폭 강화할 경우 지방에 남는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남는 의사들이 생길 것이라는 취지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재정에도 한계는 분명히 있는 만큼 너도나도 수가를 올려주기란 불가능하다. 대형 병원에서 중증·응급환자를 보는 필수의료 근무 의사를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비급여 항목이나 의료 이용량 등 조정할 부분은 조정해 국가 차원에서의 '의료 가계부‘를 전면 개편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가 내놓고 있는 필수의료 대책 중 하나는 ’공공정책수가‘이다. 여기에 관해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의대 정원 확대와 함게 공공정책수가를 대폭 강화해 늘어난 의사들이 필수의료로 이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올 1월 복지부 대책에 따르면 ▼지역 수가 도입 ▼야간·휴일 당직 보상 ▼고위험·고난도 수술 보상 강화가 지원 대상이다.



장의석 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없는 수가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몸에서 가장 큰 혈관인 대동맥이 찢어졌을 때 발생하는 대동맥 박리의 수술은 수가가 책정되어 있지 않아 대동맹 상행 수술 수가로 대신 청구한다”며 “결국 대동맥 박리가 연간 몇 건이 발생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인데, 근거 자룍 없으니 수가 책정 논의도 이뤄지지 않다가 최근에야 협의 중”이라고 지적했다.

가산수가에 관련해서도 일괄적으로 올릴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곳에 집중해서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방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A씨는 “필수과 의사 부족 문제는 동네 의원이 아니라 대형병원에서 중증 환자를 돌볼 의사가 없어 생기는 문제”라고 규정하며 “그동안 정부가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며 수가를 올릴 때는 개원의가 주로하는 맹장수술, 담낭잘제술의 수가는 많이 올리고 중증 위암이나 대장천공 수술 수가는 올리지 않는 일이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협상 파트너인 의협이 의대교수들보단 개원의가 주류인 단체이고,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교수는 인력난에 쉴 새 없이 바빠 해당 논의에 참여할 기회 자체가 적다보니 생기는 문제”라며 “복지부도 이를 모르지 않을텐데 개원가 목소리에 이리저리 휘둘린다”고 비판했다.

A 의사는 분만 수가를 예를 들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고위험 산모, 다태아 분만 등 중증 환자 수가를 서너 배 올려야 중증·분만을 할 의사가 늘어날텐데 그런 정교한 설계 없이 일괄로 올리니까 개원의들만 앉은 자리에서 3배(지역수가 100%+안정정책수가 100%)를 버는 셈”이라며 “당장 로컬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의 연봉을 1억, 2억 원씩 올려준다 하니 대학 교수들도 줄줄이 사표를 내고 있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그가 일하고 있는 병원도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신경외과·신경과 교수들이 올해 초 개원가나 2차 병원 등으로 줄줄이 이탈했고, 이런 기조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젊은 의사들의 의견은 어떠할까. 젊은 의사들은 필수의료 인력 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하고 있는 각종 부조리들을 지적했다.

한 전공의는 “3차 병원에서 의사가 부족한 것은 배출 전문의 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거기서 일할 대학교수 정원 자체가 부족한 것이다”라며 “소수의 교수와 전공의, 전임의의 '노예나 다름없는 노동'으로 대학병원이 굴러가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의 현실이고, 대학병원 측은 늘 적자이기에 추가 고용이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분원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을 보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의료 현안에서 항상 대립관계에 있는 현장 의사, 보건의료행정 전문가, 시민단체의 의견이 일맥 상통하게 일치하는 몇 안 되는 사안 중 하나가 바로 '대학병원의 더 많은 전문의 고용'이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도 “전문의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근로여건과 봉급 등 처우 문제 때문에 대학병원에 남아있는 전문의가 너무 적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한 소청과 전문의는 현장 전문의의 분위기를 설명하며 “정부가 수가 개선을 해도 병원장이 ’다 해먹고‘ 노동력만 갈아먹을까 걱정이다. 동기 중 사명감을 가지고 바이탈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런 낮은 보상과 높은 업무강도로 반만 바이탈로 향하고 반은 꿈을 접었다”고 말했다.

번아웃으로 이어지기 쉬운 외과의사들의 '퐁당퐁당' 격일 당직, 환자 입장에서 답답할 수 밖에 없는 '1분 진료' 등도 결국에는 그냥 단순 의사가 아닌 '그 병원 의사'가 많아져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젊은 의사들의 “전문의가 해야 할 일은 주 88시간 일을 시킬 수 있는 '노예' 전공의가 대신하고 있다”는 푸념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다만 고용주인 대형병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교수나 입원전담의 같은 전문의 1명을 채용할 돈이면 더 오랜시간 '굴릴 수 있는' 전공의 서너명을 데려올 수 있으니 수지 타산이 안 맞는다. 전문의 고용을 위한 정부의 '유인책'이 꼭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복지부도 지난 2월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 기준에서 입원전담 전문의 기준 및 중환자실 병상 확보율을 신설하고, 예비지표에 중증·응급, 소아응급 진료 기능을 확충할 수 있도록 추가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다. 대형병원들은 불만을 품겠지만, 당근과 채찍없이 수가만 올려주는 것은 의사들의 처우 개선 없이 대학병원 배만 불리는 '헛돈'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 의료가 붕괴되기 전, 제대로 뜯어 고쳐야 한다

전문가들은 정원, 수가 문제 말고도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한 과제는 수도 없이 산적해있다고 말했다. 둘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속이 가능한지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점은 '돈'이다. 인구 고령화로 의료수요 폭증이 예견된 상황에서 ▼건보료 인상과 정부 재정 투입으로 건보 '수입'을 늘리거나 ▼의료 이용량 억제와 병상규제, 지불제도 개편 작업 등으로 '지출'을 줄이는 방법, 어떤 방법이라도 현재의 제도를 해결하지 않으면 의료 붕괴는 조만간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현행 한국 의료 시스템에 '시한부 선고'를 내리기도 했다. 그는 ”지금의 한국 의료 시스템이 유지되는 것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당장 5년 후만 해도 건보 적립금이 고갈된다고 하는데, 그 때는 정말 비싼 비용을 치르고 뜯어고쳐야 할 것“이라며 ”그 값은 돈이 될수도 있고, 환자의 시간이 될수도 있다. 시스템이 망가진 사이에 수많은 환자가 죽고 악화되는 것이다. 지금 제대로 바꾸지 않으면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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