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기피 막기 위한 ‘의료사고특별법’, 제정 가능성은?

- 필수의료 기피 원인으로 의료사고 형사 책임 꼽혀
- 정부, 공감하고 적극적 해결 의지도 있지만 특례법 제정은 ‘글쎄’

지난 2017년 겨울, 서울의 한 대학병원의 신생아중환자실(NICU)에서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은 사이 환아 4명이 숨을 거뒀다. 이와 관련해 의료진 7명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법정에 서야 했고, 이 가운데 담당주치의를 포함한 3명은 구속됐다. 이들은 사건이 발생한지 5년이 지난 2022년이 돼서야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의사 4명과 간호사 3명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의 소화기과 교수도 2016년 6월 장폐색 환자에게 장정결제를 투여했다가 사망에 이르렀다는 이유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법정구속됐다. 해당 사건은 1,2심은 물론 대법원, 파기환송심까지 거치는 긴 법정싸움 끝에 올 4월이 되어서야 무죄로 끝을 맺었다.



이 두 사건은 최근 몇 년간 의료계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의료사고와 관련한 의사 구속 사건이다. 고의가 아닌 의료사고가 발생했고, 환자가 사망하는 결과를 이유로 의료진이 법적, 형사적 책임까지 져야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고, 이는 필수의료 기피 현상 가속화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 의료사고특례법, 의료계는 간절히 원한다

코로나19가 3년여만에 엔데믹 국면에 접어들자 정부와 의료계는 그간 미뤄온 의사인력 ‘확충’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의료계는 단순히 의료인력을 늘리는 것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설명하며 정부와 국회에 다양한 제안을 하며 근본적인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의료사고특례법 제정’이다. 필수의료 기피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의료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 부담’에 대한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야 한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실제로, 가뜩이나 다른 진료과목에 비해 적은 보상과 열악한 처우에도 돌아오는 것은 의료사고 발생 시 물어야할 법적 책임에 좌절하는 필수의료 의사들이 많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몇 해전부터 지속적으로 의료계가 요구해온 법안이기도 하지만 최근 필수의료 붕괴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쏠리면서 의료계도 ‘필수의료사고처리특례법’으로 법위를 좁혀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대한의사협회가 지난해 12월에 있었던 국회 토론회에서 처음 공개했다.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의사협회가 주관한 해당 토론회에서 전성훈 의협 법제이사는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안)’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법안이 적용될 필수의료에 해당하는 범위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하는 중증·희귀·난치질환자에 대한 진료·처방·투약 혹은 외과적 수술 ▼위험도 높은 수술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처방·투약 또는 외과적 수술 ▼분만 과정에서 산모 및 신생아에 대한 의료행위 ▼기타 보건복지부령으로 지정하는 필수의료행위로 제한했다.

또, 필수의료를 제공받은 환자가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는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필수의료 종사자에 대한 공소권을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다만 ▼추진적 승낙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환자의 승낙없이 이뤄진 필수의료 행위 ▼의학적 판단에 의하지 않은 필수의료 행위 ▼진료기록의 변조·위조 또는 중대한 사실을 은닉한 경우 ▼무면허 의료 행위(교사 및 방조 포함) 등은 특례가 적용되지 않은 예외 조항으로 남겨두었다.

◆복지부는 공감, 그러나 특례법 제정은 ‘굳이?’

의료계의 이런 입장에 복지부는 역시 고의가 아닌 의료사고에서 의료인의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는 법안을 찾겠다고 공감의 뜻을 밝혔다. 지난 9일에 있었던 제10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도 의사인력 재배치와 확충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면서 의료사고에 대한 법률 제정 등 법적 부담 경감 방안을 마련하기로 약속했다. 이후 16일 열린 제11차 협의체에서도 필수의료 분야 의료사고 부담 경감을 위해 법·제도·보상 등 전반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 보상 재원을 전액 국가가 부담하는 내용의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도 복지부는 적극 환영의 뜻을 공개적으로 내비쳤다.



다만 정부와 복지부는 필수의료를 포함해 모든 의료사고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특례법 제정에 대해서는 다소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입장이다. 의료사고 때문에 발생한 분쟁을 다루는 의료분쟁조정법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도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무과실 의료사고에 관한 형사처벌 면제법 제정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의료분쟁조정법에서 의료분쟁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조정 중재를 보다 활성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특례법 제정에는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필수의료 지원에서 의료사고 부담 완화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의료계와 계속 소통을 하면서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겠다”며 “형사 처벌 특례 도입은 피해자 권리를 축소한다는 우려도 있고, 해외 주요국에 입법 사례가 많지 않아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미라 의료기관정책과장 역시 최근 전문기자협의회와 만난 자리에서 특례법 제정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박 과장은 "이미 의료분쟁조정법에 반의사불벌 등의 특례가 있다. 조정 절차 안에서 합의가 성립했을 때 피해자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라며 "의료분쟁 조정 및 중재 제도를 활성화해 의료기관과 환자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의료사고를 둘러싼 전반적인 시스템 개선을 위해 사회적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료사고 부담으로 인한 필수의료 기피 현상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필수의료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해서 여러가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라며 "의료분쟁 조정제도 안에서 양쪽이 모두 합의를 하면서 가져갈 수 있는 것들은 가져가는 것으로 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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