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에 가려진 ‘본인확인 의무화법’, 개원가 덮친다

- 내년부터 의료기관이 환자 신분증 검사 통해 본인확인... 현장 혼란 예상
- 정부·의협 수정안 마련했지만 간호법 비대위 결성되며 무산... 대통령 거부권 가능성도 희박

내원환자 본인확인 의무화법인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현장에서 많은 혼란이 예상되고 있지만 간호법에 가려져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의료기관에 환자 본인 및 국민건강보험건 자격확인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이다.



간호법·의료인 면허취소법(의료법 개정안)에 모든 의료계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국민건강보험법도 개원가 등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되지만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간호법과 의료인 면허취소법이 통과됐을 때 여파가 큰 것은 맞지만, 가장 먼저 의료계에 피부로 느껴지는 영향을 끼칠 법안은 두 법안이 아닌 국민건강보험법이라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 통과 확정 시 당장 현장에 적용되는 본인 확인 업무

국회를 통과한 건보법의 내용을 상세하게 살펴보면 환자 본인 및 건강보험 자격확인은 시행 시 당장 현장에 바로 추가되는 업무이다. 더욱, 이 개정안을 위반할 경우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및 징수금이 부과되는 만큼, 의료기관이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해당 개정안이 지난달 통과된 만큼 1년의 현장 숙려기간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내년 상반기에는 전면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기존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업무였던 건강보험 수급자 자격관리와 부정수급 방지가 의료기관의 책임이 됐다. 현재도 대형병원과 상급종합병원 중 일부가 환자의 신분증을 검사하고 있지만 이를 영세한 개원가에도 전가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의료현장에서는 많은 혼란이 야기될 것으로 보인다. 갑자기 접수 절차에서 본인 확인 절차가 추가되면서 이를 인지하지 못한 환자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신분증을 미지참했음에도 진료를 요구하는 환자와 이를 확인해야만 진료를 할 수 있다는 의료기관과의 갈등은 물론 영세 개원가에서 질환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치료보다 먼저 본인확인을 요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 근무자들에게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본인·건강보험 자격 여부를 확인해 기입하는 것도 추가적인 노동이 필요로 할 것이고, 추가된 업무로 인해 진료 대기시간도 길어져 환자들의 불만이 커질수도 있다. 더군다나, 본인확인 절차 과정에서 착오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면 실수로 미성년자에게 술이나 담배를 판매한 편의점처럼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는 부담도 생긴다.

▲ 출처 : 의협신문

◆ 간호법 가려 대응여력 없는 의료계

의료 현장의 혼란이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도 해당 법안이 통과된 것은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할 대한의사협회가 대응 여력이 없는 상황에 처한 탓이다. 게다가 다른 의사단체들 역시 의료인 면허취소법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포함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에까지 행사를 요구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서 복지부와 의료계는 2월경 건보법 개정안과 관련해 ‘요양기관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의 본인 여부 및 그 자격을 확인하기 곤란한 경우에는 건강보험증 및 신분증 확인을 예외로 한다’는 규정을 포함하는 수정안을 마련한 바 있다.

이 수정안을 통해 본인 확인 범위를 축소하면서도, 의료기관의 본인 미확인자에 대한 진료 거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내용을 확보한 것이다. 환자가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았다고 해도, 돌려보내는 것은 진료 거부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점을 명확하게 명시했다는 것이다.

의협은 수정안을 바탕으로 여·야를 구분하지 않고 정치권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간호법·의료인 면허취소법과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국회에 직회부되며 수정안 협의가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법안은 본회의를 통과해 대통령 재가만을 앞두고 있지만, 윤 대통령이 건보법 개정안에도 거부권 행사를 할 가능성은 사실상 0%에 가깝다. 해당 개정안의 목적은 건강보험 가입자 자격 의무를 강화해 타인 명의 대여·도용 등 악용 사례를 방지하고,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제고한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성이 타당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코로나19를 거치며 건강보험의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보전하기 위한 법안인 건보법 개정안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특히 그동안 정부가 보여준 응급실 붕괴 등 의료 현한 해결을 위한 의료 정책의 기조가 현장에 규제를 가해 해결하는 방법이었던 만큼 해당 법안을 거부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는 분석이다.

◆ 의협은 뭐하냐는 책임론에 “의료계를 갈라놓으려는 이간질”



일각에서는 의협 비상대책위원회의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의협 집행부가 국민건강보험법 수정안을 복지부와 마련했음에도 이후 출범한 비대위가 전면 거부하고 나서면서 최악의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의협 비대위 결성 당시 박명하 위원장은 “수정안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발언하며 전면 거부 의사를 시사한 것에 따른 주장에 따른 비판이다.

다만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과 관련해 의협 비대위만을 탓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애당초 의협 비대위의 출범 목표는 간호법·의료인면허취소법에 국한한 투쟁체였기 때문이다.

이에 의료계 내부에서는 제기되는 비대위 책임론을 주고 의협과 13개 단체 보건복지의료연대 내부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이간질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결국 건보법 개정안은 의료계 내홍만을 야기한 채로 별다른 걸림돌 없이 시행될 것으로 보여 일선 현장의 이중고가 예상되고 있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