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사전심의 의무화… “시설 요건만으론 병원 못 낸다”
병상 과잉지역 신규 개설 사실상 금지… 필수 진료분야만 예외
복지부, 진료권별 수급 계획 도입… 의료 자원 편중 조정 본격화
앞으로 병원 개설이 지금보다 훨씬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정부가 병상 수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간 의료자원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신규 병원 설립 절차에 사전심의제를 도입하면서, 단순한 법적 요건만으로는 개설 허가를 받기 어렵게 됐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공포하고, 병원급 의료기관 신규 개설 시 '의료기관개설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의무화하는 제도를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앞으로는 각 시도별 위원회가 병상 수급 현황과 지역 여건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병원 설립의 타당성을 판단하게 된다.
그동안 병원 설립은 시설과 인력 등 법정 기준만 충족하면 비교적 용이하게 가능했지만, 이번 개정으로 절차는 훨씬 정교해지고 까다로워진다. 특히 정부가 정한 병상수급관리계획에서 ‘공급 제한’ 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신규 설립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이번 조치는 수도권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나타난 병상 편중 현상이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의료기관들이 한정된 지역에 몰리면서 과도한 경쟁을 초래하고, 그 외 지역 주민들은 의료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 정부는 이를 해소하고 지역 중심의 균형 있는 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새롭게 신설된 시도 의료기관개설위원회는 법적 기준만을 따지는 데 그치지 않고, 인구 구조, 의료 이용 행태, 기존 병상 활용도 등을 종합 분석해 해당 병원이 지역 내 꼭 필요한 존재인지 여부를 판단한다. 이는 사실상 병원 설립에 대한 규제 장치를 제도화한 것으로, 정부의 자원 조정 정책이 의료기관 개설 단계에서부터 반영되기 시작한 셈이다.
실제 복지부는 올 초 ‘병상수급관리계획’을 통해 전국을 총 70개 진료권으로 나누고, 이를 기준으로 병상 수요와 공급 수준을 분석했다. 이 분석을 바탕으로 지역을 ‘공급 제한’, ‘공급 조정’, ‘공급 가능’ 세 가지로 구분했으며, 이에 따라 신규 병상 신설 여부가 결정된다.
공급 제한 지역은 병상 수요 대비 공급이 과도한 곳으로, 일반병상 기준 63개 진료권이 해당된다. 이 지역들은 2027년 기준 수요 예측치나 2023년 기존 병상 수 중 하나를 기준으로 목표 병상 수를 설정해야 하며, 그 수치를 초과하는 병상 신설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요양병상도 별도 기준으로 관리되며, 공급 제한 지역은 38곳, 공급 가능 지역은 32곳으로 분류됐다. 반면 일반병상 기준 공급 가능 지역은 7개 진료권에 불과해, 전체적으로는 병상 신설이 어려운 방향으로 구조가 짜였다.
다만 필수의료 분야는 예외 적용이 가능하다. 중증외상, 중환자실, 응급의료, 분만, 소아진료, 심뇌혈관, 감염병 대응 병상 등은 공급 제한 지역이라 하더라도 병상 신설이 허용될 수 있다. 복지부는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영역에 한해선 지역 수급 상황과 무관하게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제도 시행을 통해 병상 중심의 무분별한 경쟁을 억제하고, 각 지역이 자체적으로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체계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둔다는 계획이다. 특히 대학병원 분원 설립이나 민간 병원 확장 등 기존 방식의 병상 확대는 앞으로 점점 더 높은 심의 장벽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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