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정연, 의료법 의사 의무 및 제재 조항 분석 결과 발표... 6개 조항 72개 세부내용
- 관련 통계·자료 미흡해 의사 과잉 규제 유발하기도
- “불균형·비효율적 규정 정비해 부조화 시스템 해소해야”
현행 의료법은 과잉된 의사규제로 인해 방어진료를 유발하며 의사 권리 보장과 국민 건강 보호보다도 제재 중심의 목적으로 인해 의료법 취지 자체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의료계에서 나왔다.
지난 10일 발간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의사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의사에 대한 과잉 규제를 해소하긴 방안을 나열하고 있다.
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현행 의료법은 총 6개의 조항과 72개의 세부내용을 통해 의사가 준수할 의무와 이에 대한 처벌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행정처분 4개 조항까지 포함하면 의료법 안의 의무 및 제재 규정이 100가지가 넘는 셈이다. 반면 의사 권리(보호) 관련 내용은 3개 조항과 6개의 세부내용에 그치고 있다.
제재 법안과 보호 법안의 불균형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인 체계 자체도 문제라고 지적된다. 의무 내용은 법과 시행령, 규칙이 산재해 정확한 내용을 쉽게 파악하기가 어렵고, 그에 상응하는 제재의 내용도 조항마다 별도로 기술하고 있는 탓에 법 해석과 분석이 쉽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 조항의 필요성이나 타당성을 입증할 통계 및 자료도 부족하다.
연구소는 이런 통계 및 자료의 부재가 의료인 과잉 규제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관련 통계와 자료 축적을 위한 사업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정확한 현황 파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부 사례들을 확대해석을 통해 의료인을 처벌하고 제재하는 것을 강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확보되면 이를 바탕으로 의무 위반 행위 각각의 정당성과 벌칙 수준을 재검토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하며 장기간 해당 사례가 없는 조항에 대해서는 삭제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정확한 현황과 통계가 없는 상황에서 극소수 의료인의 불법행위로 의료인 규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벌칙과 행정처분 확대 근거로 사용된다"며 "이 때문에 벌칙과 행정처분 사유를 삭제하거나 감경하자는 논의 대신 이를 추가하거나 강화하자는 논의가 주를 이루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마다 벌칙과 행정처분을 받는 의료인 수는 물론 그 사유와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해 현행 의료법상 벌칙과 행정처분 조항이 의료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는지 판단해야 한다"면서 "조항을 정비하기 전에 자료 축적이 필요하다. 이를 공유해 의료인의 경각심을 환기하고 환자와 의료인 간 신뢰도 이끌어내야 한다"고 했다.
연구소는 의료법 벌칙 조항을 수정해 의료법을 의료인이 지켜야할 의무에 대한 ‘안내서’ 역할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켜야할 의무와 이를 위반했을 때의 처벌과 처분을 같은 조항 안에 포함시켜 일반 사람들도 한 눈에 편하게 볼 수 있도록 가독성을 높이자는 취지이다.
연구소는 "누가 어떤 행위를 하면 어떤 처벌이나 행정처분을 받는지 친절히 안내해야 한다. 지금은 함께 묶을 만한 내용을 분리해 체계적인 해석이 어렵고 의료법을 준수해야 할 의료인은 물론 집행인과 연구자, 국민 전체의 가독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했다.
500만원 이하 벌금에 해당하는 경미한 위반 사유는 벌칙 대신 경고나 시정명령 등 행정처분으로 대체해 신속한 시정을 유도하자고 했다. 각 조항과 행위를 검토해 의무 위반을 처벌하는 벌칙과 이를 예방하는 목적인 행정처분 가운데 더 부합하는 쪽으로 정리하자는 것이다.
자격정지 규정 재정비도 필요하고 덧붙였다. '품위 손상 행위', '비도덕적 진료 행위'나 '그 밖에 이 법 또는 이 법에 따른 명령을 위반한 때'가 대상이다. 용어 자체가 추상적이고 의료법에 정확한 범위와 판단 기준도 명시돼 있지 않다. 연구소는 자격정지 같은 주요 처분을 자의적 개입이나 권한 남용 위험이 큰 위임입법 형식으로 다뤄선 안 된다고 했다.
연구소는 "행정처분만으로 그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굳이 벌칙을 적용해 의료인을 범법자로 만들 필요가 없다. 환자 안전과 관련 깊은 의무 위반 행위는 벌칙으로 규정하고 그 외는 행정처분 사유로 규정하되 단순 위반 행위는 경고나 시정명령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반드시 (처벌·처분이) 필요한 위반 행위를 선별하고 이에 대한 처벌·처분 수준을 설정한 뒤 의료법과 행정처분규칙에 체계적으로 규정하는 작업이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통해 벌칙과 행정처분의 부조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의료기관과 의료인 행정처분 권한 일원화도 과제로 꼽았다. 이를 위해 지자체장이 가진 의료기관 처분 권한을 복지부 장관에게 넘기고 지자체 권한은 의료기관 행정처분 요청 수준으로 제한할 것을 권했다.
연구소는 "(현행대로면)행정기관마다 유기적인 협조나 공유가 어렵고 서로 다른 처분을 내리거나 중복될 가능성이 있다. 복지부와 지자체의 전문성을 동일선상에 두기도 어렵다"면서 "의료업 정지와 개설 허가 취소 등은 의료인 직업수행의 자유와 맞닿은 중대한 권력행위다. 이런 권한이 분산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대한 행정처분 통일성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의료인 자격정지와 의료기관 업무정지 처분 발효시기도 통일하자면서 복지부가 시행하는 '처분 이행일자 연기요청' 외에도 1인 의료기관처럼 의사 자격정지가 사실상 업무정지와 동일한 경우 처분을 하나만 적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의료법 개정 속도를 행정처분규칙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난 2020년 이후 의료법에서 면허 대여, 무면허 의료행위, 공중보건의사 고용, 의료광고 금지 등 벌칙과 행정처분 조항이 신설 또는 개정됐지만 행정처분규칙 개정은 2019년 8월이 마지막이다.
모호한 행정처분 세부 기준을 고치고 행정처분 절차 규정도 신설해야 한다. 행정기관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의료기관과 의료인에게 방어권 행사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복지부 산하에 '의료인 등 행정처분심의위원회'를 설치하거나 행정처분 권한을 대한의사협회에 위임하는 방법도 있다. 법조계는 대한변호사협회가 변호사법에 근거해 회원 등록과 징계 등 행정처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의사에게 과도한 의무와 제재를 부과한 현행 의료법이 의사를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한 방어진료로 몰아가고 있다. 위험이 크고 노동 강도가 강한 필수의료 기피 요인이기도 하다. 이는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를 제공한다는 의료법 목적에 역행한다"면서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안전한 진료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의료법이 규정한 의사의 권리와 의무가 균형을 이루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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