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서 고가인 ‘생존주사’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1년 3회 회차당 1억 원
- 일본, 모든 환자에 주사 지원 ‘환자부담금 10만 원’
- 日 환자 “국가가 일방적으로 치료 중단? 매우 위화감 느껴져”
근육이 점차 굳어가게 되는 희귀병인 척수성근위축증의 치료제 개발 소식은 별다른 방법 없이 죽음을 기다리던 많은 환자들과 그 가족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기적이 무너지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주사형태로 맞게 되는 치료제의 가격이 1억 원에 책정된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호흡조차 어려워지기 때문에 치료 주사를 맞지 못하면 근육이 굳다 못해 호흡 곤란와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된다. 환자들이 기댈 것은 건강보험 적용뿐이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1회에 1억 원이 아닌 600만 원에 맞을 수 있었다.
A씨도 건강보험에 기대를 가졌다. A씨의 딸인 서연(13)이 척수성근위축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탈락했다. 평가 기준이 서연이에겐 가혹했는데, 손가락을 겨우 꼼지락 거리는 수준인 아이에게 운동 평가를 하고 점수를 매겼다. 당연히 0점을 받았다.
A씨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어린 딸은 죽음 앞에 서있었고 치료제는 1억 원이었다. 건강보험은 탈락했을 때의 아버지의 심정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치료제가 중단된 서연이의 산소 포화도는 점점 떨어져 갔고, A씨는 1억 원을 어떻게든 마련해 주사를 맞히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1년에 3번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1회차를 서연이에게 맞춘 A씨에게 다음 주사를 맞출 돈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일본 교토에 거주하는 유다 유이씨 역시 서연이와 같은 질환을 앓고 있다. 3살 무렵부터 전동 휠체어에 의지했고 인공호흡기와 보조장치도 착용한다. 일상을 보내는 거의 모든 순간에 활동 지원이 절실하다. 이에 24시간 공적활동 지원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최한 포럼에서 공개된 인터뷰에 따르면 서연이가 1억 원을 내고 맞은 주사인 치료제 스핀라자를 유이씨도 2018년부터 맞고 있다. 그렇다면 유이씨는 고가의 치료제 가격을 어떻게 마련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유이씨가 치료제 가격으로 지불한 금액은 10만 원 정도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일본의 보험제도 덕분으로 척수성근위축증은 이미 2009년부터 ‘지정난병’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료비 상한액이 ▼생활보호자 0엔 ▼연소득 160만 엔(약 1450만 원) 미만일 경우 최대 5000엔(약 4만 5000원) ▼연소득 160~370만 엔(약 3400만 원)은 최대 1만 엔(약 9만 원) 으로 규정되어있다. 고소득자라고 할지라도 1년에 30만 원 이상의 의료비를 넘기진 않는다.
그 덕에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유이씨 역시 한 달에 의료비로 10만 원이 넘는 돈을 낸 적이 없다.
또한 일본은 한국처럼 주사를 맞기 위한 자격이나 심사를 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척수성근위축증과 같은 생명과 직결된 질환의 진단을 받는다면 누구나 주사를 받을 수 있다. 이 역시 고소득자라도 최대 30만 원을 넘기지 않는다.
유이씨는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한국의 환자들이 주사를 자유롭게 맞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 위화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주사를 맞기 위해선 3살 이전에 질환이 발병했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운동 평가를 거쳐 치료제의 효과를 입증해야 한다.
유이씨는 “애초에 국가가 말하는 치료효과가 무엇인가. 마음대로 다른 사람이나 국가가 효가 기준을 정해 일방적으로 치료를 중단하는 것에 매우 위화감을 느낀다”며 “치료효과라는 것은 눈에 잘 보이고 측정할 수 있는 것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경험상 ‘왠지 덜 피곤하다’고 느끼거나 어깨 뭉침이 괜찮아지고, 병 진행이 늦춰지거나 멈추는 것도 큰 효과이다”고 강조했다.
유이씨도 주사를 통해 삶을 꿈꾸며 대학원에 다니고, 연구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자신과 같은 환우들이 느낄 치료와 관련된 정치 부분을 공부하고 있다. 유이씨는 “만약 한국의 자기부담 기준을 일본에 적용한다면 극히 일부의 고소득자를 제외하고는 치료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일본 외의 다른 나라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척수성근위축증 청년 스핀라자 공동대응 TF’에 따르면 2020년 10월 기준 50개국에서 1만 1000명 이상의 환자들이 스핀라자를 처방받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국들도 척수성근위축증 진단을 받을 경우 연령 등과 상관 없이 급여 혜택을 받는다. 독일은 미용이나 성형 목적이 아니면 대부분의 경우에 급여가 적용되고, 프랑스도 치료제를 맞은 뒤 별도 효과를 증명할 필요 없이 의사 판단에 따라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탈리아는 희귀 의약품 급여를 지원하는 ‘5% FUND’ 기금이 있고 스핀라자에도 적용됐다.
우리나라에서 환자들이 스핀라자를 맞다가 심사에서 탈락하는 이유는 대부분 ‘운동 기능 위주 평가’ 때문이다. 급여 적용을 놓고 운동 능력은 ‘하이네’와 ‘해머스미스’란 2가지 척도로 평가하는데 하이네는 ‘머리 가누기’, ‘움켜쥐기’. ‘발차기’ 등을 평가하고 해머스미스는 ‘않기’, ‘구르기’, ‘점프하기’ 등을 평가한다. 움직임이 얼마나 향상됐는지를 평가해 점수를 유지했거나 올라야 계속해서 처방받을 수 있다.
이 기준은 매우 중대한 것을 간과하고 있는데, 바로 척수근위축증 ‘1형’ 환자들이다. 이들은 모든 근육의 힘이 빠진 채 호흡조차 기계의 도움 없이는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앞서 스핀라자 급여에서 탈락한 서연양도 1형 환자인데 운동 기능 평가에서 0점을 받았다. 1형 환자들에게는 운동 능력이 문제가 아닌 생존을 위한 치료제임에도 같은 잣대로 평가한다.
A씨는 “(서연이를 위한) 생명 연장을 시켜줄 필수적인 약”이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기대하는 약 효과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 중단하는 것은 사실상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는 운동 기준을 평가하는 내용마저 한우들이 미세하게 좋아지는 부분을 반영하지도 못하고 있다.
B씨의 아이도 척수성근위축증 1형을 앓고 있는데, 미국에서 임상 실험으로 26차례에 걸쳐 스핀라자를 맞았다. 6살까지는 지속적으로 좋아지다가 최근에는 주춤하고 있는데 아이가 크는 속도에 비해 치료제의 양은 일정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B씨는 “지금은 17점에 머물러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점수가 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B씨는 주사를 맞을 때마다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B씨는 “그동안 못하던 동작도 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운동 기구에서 일어날 때 팔을 짚어도 일어나지 못했는데, 이제는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엄청난 진전이지만 현행 운동능력 평가에는 이런 진전을 반영할 점수 항목이 없다. B씨는 “제일 큰 변화가 6살 이후로 물속에서 걷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점수에 반영되는 항목이 없다. 항목이 없거나 자세하지 않다”고 말했다.
치료 효과만을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구시대적 기준 탓에 효과를 보고도 치료제 급여 기준에서 탈락해 치료가 중단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4월 심평원에 “척수성근위축증 1형 환자와 관련된 치료제 급여 기준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민원인은 서연양의 아버지 A씨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심평원의 급여 평가 기준은 ‘요지부동’이다. 다만 스핀라자의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3세 이하에서 18세 이하로 확대되는 안건은 최근 약제급여위원회를 통과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에 보고까지 마쳤고, 국민건강보험공단 약가 협상 등이 남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환자 특성을 섬세하게 고려해 치료제 효과를 면밀하게 측정할 수 있게끔 기준이 변경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하이네’와 ‘해머스미스’ 두가지 평가 기준으로만 유지하거나 개선하지 않으면 치료제 기회에서 탈락하는 것이다.
이영목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 연구팀은, 올해 1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척수성근위축증 치료제 '뉴시너센'을 발병 초기부터 투여하면 큰 효과를 거둔단 걸 증명한 거였다. 뉴시너센 성분의 치료제가 스핀라자다. 그러면서 이 교수 연구팀은 이렇게 밝혔다. "환자의 운동 능력을 반영할 수 있는, 정확한 운동기능 평가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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