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기소’ 소식에 응급의학과 현장 인력 이탈 현실화

- 대구파티마병원 최초 진찰 전공의 기소 유력 소식에 응급의학과 ‘충격’
- 응급의학회 류현호 공보이사 “응급의학 의사들 의학적 권한 인정 필요”

대구에서 10대 여아가 낙상사고로 인해 중상을 입었으나 이송될 병원을 찾지 못한 채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환자를 최초 진찰했던 대구파티마병원 전공의가 사건의 모든 책임을 지고 경찰에 기소될 가능성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응급의학계를 비롯한 의료계 전반이 떠들썩해지고 있다. 당장 현장을 떠나겠다는 의사부터 응급의학과 지원을 포기하겠다는 전공의들까지 이어지면서 그 파장이 더 커지고 있다.



29일 응급의학회는 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응급실 수용곤란 고지’ 시행 규칙이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진 응급의학과를 향후 더욱 옥죌 것이라고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간 응급의학회는 복지부의 정책 기조에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아껴오고 있었다. 자칫 학회의 발언이 내식구 챙기기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마련에도 불구하고 소위 ‘응급실 뺑뺑이’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고, 그 책임을 계속해서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묻는 행태와 향후 응급실 수용곤란 시행규칙의 적용을 앞두고 있는 현실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류현호 공보이사는 해당 전공의의 기소 유력 소식이 전해진 이후 현장이 암울해졌다고 설명했다. 류 이사는 “전공의들은 물론 교수들도 해당 사건으로 함께 술렁이고 있다. 현장을 떠나겠다는 말을 하는 분들도 있다”며 “당장 인턴들에게는 더욱 파급이 커서 응급의학과 지원을 재고하겠다는 인원이 많아지고 있어 심각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환자 분류다. 전화로 환자 상태를 파악하거나 눈으로 보는 것, 환자가 말하는 증상이 전부인 상태에서 경증인지 중증인지를 단박에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며 “해당 사건의 의사에게 죄가 있다면 누가봐도 명백한 과실이 있어야 하는데 해당 전공의는 환자의 정신적인 문제까지 감안해 추후 진료를 고려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고의성도, 명백한 과실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사건이 과거 큰 파장이 있었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건과도 닮은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의료진의 고의성도, 직접 과실도 밝히지 못했지만 경찰과 사회는 당시 의료진들을 마녀사냥하듯 매장시켰고, 형사고발까지 이뤄졌으나 재판 끝에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류 이사는 이에 대해 “이번에도 정부는 의료기관과 의료진 때리기를 통해 사건의 책임이 일부 못된 병원과 의사에게 있는 것처럼 대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건이 향후 복지부가 시행할 ‘응급실 수용 곤란 고지’와도 큰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올해 1월부터 정부가 입법예고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은 수용곤란 고지의 기준과 정차 등을 마련하기 위한 법안이다. 해당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응급의료기관의 장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할 수 없으며 그 ‘정당한 사유’를 관련자에 통보해야만 하고,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면 그 책임자에게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정당한 사유'라는 애매한 기준으로 환자 수용 곤란 고지에 대한 책임을 우려해 방어 진료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우려하고 있다.

류 이사 “이렇게 응급실 수용 거절을 이유로 처벌하는 상황에서 모든 중증환자를 받으라고 하면 누가 받겠는가”라며 “응급의학과 의사의 환자의 중증도 분류가 어려운 점을 인정하고 응급의학과 의사의 판단에 대해 면책을 주지 않으면 방어 진료가 될 수 있다. 응급의학과 의사의 의학적 권한을 인정하지 않고 일일이 처벌하고 문제 삼으면 결국 환자들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응급의학회는 단순히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의학적 권한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붕괴 위기에 처한 응급의료체계를 되살리기 위해 응급의학과에 대한 직접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류 이사는 "응급실은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전공의가 있어 유지될 수 있었다. 응급실은 누구나 지킬 수 있으나 야간과 공휴일까지 응급실을 지키려는 의사는 없다"며 "응급의학과 전문의에 대한 권한 인정은 물론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과거에는 야간 응급실에 '인턴'밖에 없다는 말이 돌 정도로, 응급실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응급의학과'가 신설되고 응급실에 전문의들이 들어서면서 많은 환자들이 제때 응급의료를 받게 됐다. 그런 만큼 응급의학과에 대한 지원과 지지가 있어야 진짜 위급한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류 이사는 "모든 국민이 양질의 진료를 받으려면 응급실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야간과 주말에 당연하게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며 "응급의학과에 대한 질타와 채찍은 현실을 더욱 가혹하게 할뿐이다. 응급실 환경 개선을 통해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에게 양질의 치료가 제공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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