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위대가 학교와 도서관을 불태우는 이유는?

- 경찰에 살해된 알제리계 이민자 17세 소년 나엘에 프랑스 전역에서 폭동 발생
- 이민자, 흑인 등에 억압·불신·차별, 프랑스 사회의 ‘민낯’ 고스란히 드러내

경찰이 쏜 총에 알제리계 소년 나엘 메르주크가 숨을 거둔 이후 프랑스 전역에서 폭동에 가까운 거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건물과 차량은 곳곳에서 불타고 있고, 상점들은 약탈당하기 일쑤이며 이달 2일까지 총 3000여 명의 가담자가 체포됐다.


▲ 출처 : AP 통신

전문가들은 이런 사태가 일어난 배경에는 “프랑스 사회가 알면서도 방치해온 구조적 차별에 대한 유색인종, 이민자, 빈민 등 약자들의 쌓여온 울분이 대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프랑스인들이 항상 자랑하던 자유·평등·박애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백인들’만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현실을 이번 시위를 통해 폭로하는 것이다.

메르주크는 교통법규를 위반하다 경찰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는 과정에서 총격을 당했다. 경찰은 승용차 운전석에 앉은 그에게 총구 겨눈 뒤 “머리에 총알을 박겠다”며 위협했고, 그가 검문에 불응하고 차를 출발 시키자 곧바로 발포를 시작했다. 이 같은 장면이 담긴 11초짜리 영상이 SNS를 중심으로 확산되자 ‘피부색 차별’이 실존한다는 사실이 재확인되며 사회적 논란이 확산된 것이다.

프랑스 인권 시민단체인 ‘권리의 수호자’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흑인이나 아랍계 청년 남성의 경우 다른 인구 집단보다 경찰에 검문을 당할 확률이 최소 20배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이후 교통 검문 과정에서 사망한 21명 중에서도 대부분이 이민자 출신의 청년이었다. 북아프리카 출신의 카더르 마조비(47)는 “프랑스 시민권이 있어도 우리는 항상 스스로를 정당화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메르주크의 사망은 소외 계층의 트라우마를 자극한 셈이 됐다. 사건은 파리 외각의 작은 도시 낭테르로 대중교통과 문화시설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이다. 이에 사회에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이민자 출신과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곳이다. 메르주크가 경찰에 살해된 것은 가뜩이나 정부가 취약 계층을 제재와 감독이 필요한 이방인 혹은 예비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오래된 불만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 됐다. 외각 지역의 시위가 더욱 폭력성이 강했던 이유다.

특히, 시위대의 공격은 비단 경찰만 향하진 않았다. 소방서, 시청사 등 각 지역의 공공기관들이 모두 공격을 받고 있다. 시위대가 분노한 것은 경찰 뿐만 아니라 차별을 방조해온 국가 시스템 자체이기 때문이다.

학교와 도서관도 집중 공격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동부 메츠의 보흐니에서도 최근 건립된 도서관이 불에 타 11만 권 이상의 책과 문서가 훼손됐다. 교육 기관은 계층의 사다리를 오를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며, 지역 문화시설의 기능은 문화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위대는 이런 교육과 문화의 혜택이 소외계층이 아닌 주류에게만 평중되는 ‘그들만의 세상’의 산물이라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2005년 이민자 청소년들과 경찰이 충돌한 폭력사태 때도 프랑스 전역의 20개 이상의 도서관이 불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석을 인용하며 “프랑스의 빈곤한 동네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타고난 사회경제적 배경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언급했다. 이번 시위 참가자 중 어린 청년들이 많은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런 시위대의 행보를 ‘폭도’와 ‘깡패’로 규정하며 강력하게 진압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구조적 차별을 해결하지 않으면 이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프랑스 교외 지역에서 이민자 청소년을 상대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노라 하미디는 인터뷰에서 “이들은 자유·평등·박애가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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