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과, 적은 수익만큼 ‘극성맞은’ 보호자도 문제다... 감정노동에 탈출 이어져

- 악성민원에 악평 도배, 무단 녹취까지... 소청과 방문 보호자 행태 도마위
- 어린이 보살핀다는 보람에도 감정노동 피하려 ‘폐업 선언’ 다수
- 소청과의사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풍조 속 과잉보호하는 부모 늘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앞으로 소아진료를 포기하고 일반진료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폐과를 선언한 가운데 소청과 의원들의 잇따른 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배경에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환자의 보호자로부터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한 것으로 알려지며 의료계에서 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소청과의 폐과 선언 직후 이들이 타 과와 비교해 터무니 없이 적은 수가로 인해 ‘박리다매’ 형태의 방식으로 운영해왔으나 저출산 문제로 소아 청소년 환자 수의 감소로 수익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왔다. 그러나 최근 소청과 환아 보호자들의 악성 민원과 맘 카페들의 갑질 등으로 감정적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병원의 문을 닫는 사례가 연달아 알려지며 소청과의 감정노동이 큰 어려움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 충청남도에 위치한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보호자 없이 혼자 진료를 받으러 온 9세 소아 환자를 부작용 등의 우려로 ‘보호자와 함께 내원하라’고 안내하고 돌려보냈다가 보호자의 ‘진료거부’민원에 잠정 휴업 및 폐업 소식을 알리는 공고문을 게재해 큰 논쟁이 일었다.

특히 해당 공고문 게재 이후 질타받던 해당 소아환자의 보호자가 ‘맘 카페’에 사실과 다른 내용의 해명 글을 올리는 등 지역 맘 카페 회원들에게 동정을 무기로한 호소를 통해 이른바 ‘언론플레이’를 하려 했던 것이 알려지며 더욱 논란이 됐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해당 소청과 의원은 해당 환자에 대해 딱 잘라서 진료를 거부한 적이 없다. 의사 표현도 안되는 아이에게 침습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의 편의를 봐줄테니 보호자와 함께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회유한 것 뿐”이라며 “그럼에도 맘카페에 거짓 글을 올려 사람들을 선동했고, 많은 카페회원이 이에 동조하는 태도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일이 소청과 의원에서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7월 초 보호자의 악성 허위 민원으로 소아청소년과를 폐업하겠다고 밝혔던 다른 소아청소년과 역시 지역 맘 카페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은 바 있다.

해당 병원도 4살 아이 진료를 본 후 간호서비스에 불만을 가진 부모가 비급여와 관련해 환불을 요구했고, 결국 환불해줬지만 보호자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까지 민원을 제기하고, 네이버 등 해당 의원에 대한 악성 댓글을 지속적으로 도배하는 등 계속해서 해당 병원을 괴롭혔다.

또 해당 사례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자 맘 카페는 해당 의원이 공문에 아이 이름의 일부를 드러낸 것을 두고 ‘의사도 갑질로 밖에 안 보인다’, ‘저런식의 안내문을 붙인다는 것이 말이 돼냐’며 해당 의원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소청과 의원의 진료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맘 카페에 악성 평가를 올리고 회원들은 이에 동조해 함께 비난하는 방식의 댓글을 달거나 포털사이트 평가에 집결해 악평을 도배하는 등 맘 카페의 역기능 사례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에 따르면 이같은 일부 맘 카페들과 보호자들의 갑질로 인해 한 지역에서만 8개의 소청과 의원이 줄폐업한 사례도 있고, 감정노동에 시달리다 못한 의사들이 정신과치료까지 받는 등 고충을 겪고 있다.

지난 2021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발표한 ‘감정노동의 시대, 의사도 감정노동을 하는가’에 따르면 의사들의 감정노동 수준의 평균은 70.03점으로, 2015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수행한 감정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평균 61.56점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22개 전문진료과 중 감정노동이 가장 심한 진료과목은 평균 75.77점으로 정신건강의학과였으며, 그 뒤를 이어 재활의학과가 평균 73.31점, 소아청소년과가 72.26점으로 높게 나타난 바 있다.

의정연은 해당 보고서에서 “의사들은 매일매일 아픈 환자들을 수도 없이 마주하면서 그들과 상호작용하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감정노동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최근 저출산 문제가 심화되면서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를 하는 보호자가 늘어났고, 이 때문에 의료진에 도를 넘은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아 이를 견디는 과정에서의 감정노동 강도가 엄청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한 소청과 개원의는 “소청과는 소아라는 환자 특성상 성인 환자 진료에 비해 진료시간을 비롯해 드는 에너지도 몇 배 이상이다. 거기에 진료할 때 소아환자뿐만 아니라 환자의 보호자도 함께 상대해야 해 더욱 어려움이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닌 조부모가 온 경우 몇 번이고 쉬운 표현을 찾아 다시 설명드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자신의 아이 혹은 손주가 아파서 방문한 만큼 예민한 보호자들이 많다. 한 의사는 소아 귀를 진찰하다 아이가 갑작스럽게 움직여 출혈이 생겼다가 보호자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해 3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 판결을 받은 경우도 있다”며 “진료실 내 분위기가 험악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도를 지나친 보호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다보면 소아 진료를 포기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싶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에는 맘 카페 등에서 소아과 진료 시 진료 내용을 녹음하거나 차트를 카메라로 찍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면서 의사의 사전 동의 없이 녹음기를 켜거나 촬영을 하는 보호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마상혁 과장은 "말도 없이 대 놓고 진료 중에 녹취하거나, 의사의 명함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진단된 질환에 대해 설명해 주면 '인터넷에는 다르게 나온다'며 아는 체하는 부모도 있다"며 "아이에게 아프게 신속항원 검사를 했다고 소리를 지르며 욕설하는 부모 등 소아과 스태프는 예의가 사라진 부모들의 행태로 스트레스가 극심하다"고 전했다.

소청과의사회 임현택 회장도 "보호자들과 맘 카페의 갑질로 폐업을 결정한 회원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아이를 하나만 낳아 잘 기르려는 풍조 속에 '금쪽이'가 된 아이들을 과잉보호하는 부모들로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감정노동은 극심해졌다. 이에 더해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저수가라는 현실 문제까지 겹치면서 노키즈존으로 옮겨가 성인만 진료하는 분야로 개원하려는 의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현재의 세태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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