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환자 회복에도 의학적 판단 ‘과정’에 문제, 금고형 집행유예”

- 곧바로 수술하지 않고 보존치료 우선 문제삼아 금고형 집행유예 선고
- 환자 동의 얻은 보존치료, 수술 후 회복했음에도 ‘치료 지연’ 지적
- 의료계 “사법부가 의학적 판단까지 부정, 필수의료 다 무너질 것” 탄식

이제는 영구적인 악결과가 아닌 치료 행위에도 유죄판결을 받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 필수의료계의 붕괴가 우려되고 있다. 법원은 의료진이 수술 시기를 늦추고 보존치료를 우선시 했다며 환자에게 상해를 입한 과실이 있다고 판결했다. 환자는 수술을 받고 회복했으나 의사는 법정에 서야 했으며, 결국 유죄판결까지 받았다.



이에 의료계는 매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서고 있다. 전문의가 내린 의학적 판단을 사법부가 부정하고 징벌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신 진료를 하더라도 결과가 나쁘면 ‘단죄’될 수 있으니 필수의료 분야의 붕괴가 점점 더 가속화 될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은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외과 전문의 A씨에게 금고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A씨가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해 수술시기를 늦춘 탓에 환자가 상당한 중해를 입었다고 봤다.

A씨는 환자 B씨가 내원 6개월 전 난소 종양으로 이미 개복수술을 한 차례 시행한 적이 있는 이력을 고려해 환자 B씨의 동의를 얻어 보존치료를 결정했다. 그러나 치료를 받던 중 혈변 증상과 장 괴사가 발생해 응급수술로 소장 80cm를 절제했다. 이후 패혈증과 복막염까지 발생해 2차 수술을 받기도 했다.

수술 후 환자는 회복했지만 A씨는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결국 법정에 섰고, 지난 2021년 서울중앙지법은 A씨에게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적어도 피해자(환자)가 혈변 증상을 보였을 때 수술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수술이 아닌 보존적 치료를 원했다고 하더라도 A씨는 의료인으로서 환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도록 가장 적절한 치료법인 수술을 결정하고 이를 설명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법정공방이 이어졌으나 대법원 재판부가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에 잘못된 법리가 없다며 이를 그대로 확정했다.

해당 판결에 의료계는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수술과 관련한 의료행위가 많은 필수의료계에서 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대한외과의사회는 지난 3일 입장문을 통해 “이번 판결로 인해 외과 의사는 평생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게 됐다”며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더 이상 마음을 놓고 수술할 외과 의사는 이제 없다”고 탄식했다.

이어 “선배 의사가 수술 결과 때문에 실형을 선고받고 범죄자가 돼 생명과 같은 의사 면허를 박탈당한 채 병원에서 처참히 내쫓기는 모습을 보고도 다른 외과 의사들이 같은 수술을 주저 없이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꼬임 증상도, 혈변 증상도 모두 무조건 개복수술을 하고 장을 잘라내야 한다면 대체 죄가 안 되는 증상이 어느정도이고 장을 얼마나 잘라내야 죄가 안 되는 것이냐”며 “의사의 전문적 판단이 옳았는지 아닌지를 재판부가 판단할 것이라면 범죄가 되지 않는 치료의 범위도 재판부가 정하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몇 명 남지도 않은 수술하는 외과 의사들마저 범죄자로 만들고 수술방 밖으로 끄집어내 형사처벌이라는 감옥에 넣었다. 대한민국 의료 파행은 불가피하다”며 “희생되는 것은 국민의 목숨이고 앞으로 발생할 모든 파탄은 법원이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고 전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4일 입장문을 통해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의협은 “전문의가 내린 의학적 판결을 사법부가 부정했다”고 말했다.

의협은 “앞으로 한국 의료 현장에서 최선의 치료법을 택해 소신진료하는 의사를 만나기는 어려워 질 것이다. 의료행위마다 범죄 단죄를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이런 판결이 반복될수록 방어진료는 일반화되고 필수의료 기피현상은 가속된다.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와 국회에도 필수의료 분야를 꼭 보호하라고 요구했다. 의협은 “의료분쟁에서 국민은 피해를 신속히 보장받고 필수의료는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의료분쟁특별법 제정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고 시급하게 추진하라”고 강조했다.

김이연 의협 대변인도 최근 사법부가 의료계에 대해 징벌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는 추세에 우려를 나타냈다.

김 대변인은 “의사는 오나벽한 신이 아니다. 의료 행위로 인한 나쁜 결과를 피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이를 사법적으로 단죄하고 또 단죄한다. 의사 개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진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안좋은 결과를 100%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사정은 배제하고 오로지 사법부의 결정으로 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결정된다”며 “필수의료를 보호하는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사법부도 의료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이를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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