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D-1개월...사각지대에 커지는 우려의 목소리

- 사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과 50인 미만 사업장이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법 적용이 3년간 유예
- 택배노동자나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가장 빈번하게 걸리는 근골격계 질환은 빠져있어 논란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시행되기도 전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재공화국'이자 '중대재해공화국'으로 불려도 무색할 만큼 일터에서 죽어나가는 노동자가 많은 상황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매일 300명이 다치고 6명이 사망했다는 통계도 나왔다. 이처럼 노동자 목숨을 깃털처럼 가볍게 취급하는 현실에서 기업의 경영 책임자에게 직접 보건의무를 부과하고 의무 위반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엄중하게 처벌하자는 취지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산업재해 사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과 50인 미만 사업장이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법 적용이 3년간 유예되는 등 사각지대가 많아 법이 시행되기도 전부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 중대재해법이란?
중대재해법은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는 법으로,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과 기준이 조금 다르다.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주요 내용>
사업 또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등에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공무원 등에 대한 처벌 등을 규정한 법이다. 산업재해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이외의 사고에 대해서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중대산업재해>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

<중대시민재해>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를 뜻한다.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
▶동일한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

◆ 속출하는 사건사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올해 1월 8일, 충북 청주의 A폐기물 처리 업체에서는 49세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틀 뒤인 1월 10일엔 판박이처럼 똑같은 사고가 또 발생하였습니다. 전남 여수의 유연탄 저장업체의 B하청업체 소속 33세 노동자가 갑자기 움직인 컨베이어 벨트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처럼 반복되는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지난 1월 국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당 법 적용을 받지 않거나 3년간 유예대상인 소규모 사업장의 산업재해 사고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 중대재해법의 사각지대
실제 중대재해법이 시행된다 하더라도 위 기업들의 사업주나 법인 모두 처벌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A기업은 상시 근로자가 6명이고 B기업은 8명으로 법 적용 유예 기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C기업은 굴지의 대기업이 100%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로 자본금이 755억 원, 지난해 매출액이 759억 원에 달하지만 상시 근로자는 45명(고용노동청 집계)이기 때문에 중대재해법으로 엄단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중대재해법 사각지대>
◆ 근로자 보호에 미흡..5인 미만 기업이 4개 중 1개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최근 1년간 산업안전보건법상 사고중대재해로 분류된 780건 중 고용노동부가 작성한 재해조사 의견서는 410건에 불과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고용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현장 조사 후 재해조사 의견서를 작성하는데, 고용부는 370건은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료를 제출하지도 않았니다. 의견서 분석 결과 558개(원청 410개, 하청 148개) 기업 가운데 법망을 피해가는 경우가 7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법의 적용을 받는 기업은 26%에 불과
재해조사 의견서에 나온 558개 기업 가운데, 업종과 관계없이 중대재해법상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기업은 137개(원청 87개, 하청 50개)로 전체의 24.7%에 달하였고, 2023년까지 법 적용이 유예되는 근로자 5~49인 기업(건설업의 경우 공사 금액 50억 원 미만)은 246개(원청 203개, 하청 43개)로 전체의 44%를 차지했다.

반대로 곧바로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 기업은 전체의 26.1%에 불과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지금도 근로기준법 등 주요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중대재해법에서도 통째로 빠진 건 큰 문제이다. 5인 미만 적용 예외와 5~49인 적용 유예는 개선이 필요하다”(변호사)

“중대재해 대부분이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재해를 줄이지 않고서는 노동자들 죽음을 막을 수 없다. 자신의 권한만큼 업무를 하지 않은 공무원에 대한 처벌도 필요하다”(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


◆ 보완이 시급한 중대재해법
노동계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과정에서 법 적용의 실효성, 경영계의 반대 등 이유로 빠진 부분에 대한 사각지대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대산업재해'로 인정되는 직업성 질병의 경우 포함된 질병은 화학물질로 인한 급성중독증과 일사병, 열사병 등이다. 하지만 택배노동자나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가장 빈번하게 걸리는 근골격계 질환은 빠져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반복되는 과로와 고된 육체노동자의 환경을 고려해 시행령 등에 근골격계 질환 등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과로, 스트레스, 골격근계 질환의 경우 오랜시간 누적된 결과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는데 명확하게 입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노동계의 경우 법 적용 범위 확대를 주장하고, 경영계는 반대로 과잉 적용을 우려하는 상황이라 법 적용 이후에도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법학과 교수)

◆ 정부의 입장은?
정부는 그러나 법에 명시된 적용 예외(상시 근로자 5인 미만) 및 유예 조항(5~49인)을 시행령을 통해선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는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법을 개정하는 방법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중대재해법 적용 범위를 시행령에서 좁히거나 늘리는 건 법령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고용부 관계자)

<5인 미만 사업장 쪼개기 꼼수>
◆ 사업장 쪼개기 유행
ㅣ사업장 분리형ㅣ
사업주의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한 '사업장 쪼개기'는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그중 서류상으로만 업체를 쪼개는 '사업장 분리형'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직원이 20명인 경우 '가짜 대표' 5명을 두고 '4인 사업장' 5개를 만드는 식이다.


“사업장은 하나인데 지인들을 동원해 16개 '유령 사업자'로 등록한 경우도 있다.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지만 사업장만 쪼갠 것이다”(하은성 공인노무사&권리찾기유니온 정책실장)

ㅣ직원 미등록형ㅣ
근로계약까지 마친 노동자를 프리랜서나 사업자로 둔갑시키는 '직원 미등록형'도 있다. 이것 역시 상근직을 4명으로 만들기 위한 수법인데, 사업주가 직원들의 4대 보험 가입을 안 시키는 대신, 개인사업자가 내는 사업소득세율 3.3%를 급여에서 원천징수하는 형태이다. 직원과 근무시간이 명시된 계약을 맺고 출근일수에 따라 보수를 주는데도 '그 직원은 사업소득세 3.3%를 내고 있으니 상시근로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방식인 것이다.

ㅣ혼합형ㅣ
'사업자 분리형'과 '직원 미등록형'을 합친 방식이다.

“유령사업장 만들기를 계속 밀어붙일 순 없으니, 쪼개진 사업장마다 '무늬만 프리랜서'를 만들기도 한다. 이럴 경우 단속 기관은 서류상 사업장뿐 아니라, 사업자로 둔갑한 노동자까지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단속에 더욱 애를 먹는다”(하은성 공인노무사&권리찾기유니온 정책실장)

◆ 수직적 쪼개기도 성행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사업장에서 '수직적 쪼개기'가 성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본사(원청)가 가짜 사업장 여러 개를 만들어 피라미드 방식으로 도급을 주고, 각각의 사업장엔 개인사업자로 위장한 노동자를 배치하는 방식이다.

“현행 시스템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구조이다. 특히 도급이 일상화된 건설업의 경우 이런 방식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권리찾기유니온)

◆ 5인 미만 거짓 주장 사업주 처벌 필요성
가장 큰 문제는 직원 수를 줄여 처벌을 피하려는 이 같은 꼼수를 막을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에 있다. 한 가지 해결방안은 예를 들어 사업장 규모가 5인 미만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는 사업주를 제재하는 방법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이 아닌데도, 사업주가 5인 미만을 주장하다가 적발되면 강력하게 처벌하는 조항을 중대재해법에 포함시켜야 한다. 사업장 규모를 속여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형태를 막아야 한다”(하은성 공인노무사&권리찾기유니온 정책실장)

“현행법으로는 '사업장 쪼개기' 자체만으로는 처벌조항이 없어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 그런데도 정부는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오히려 고용노동부가 우리 쪽 데이터를 모니터링하고 있을 정도이다”(변호사)

또한 사업자 등록의 형식적 요건보단 실질을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업무 수행 형태나 지휘감독 체계가 하나의 사업체처럼 운영되고 있다면 하나의 사업으로 봐야 한다는 규정을 중대재해법 시행령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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