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구]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 진료보조인력(PA) 합법화 논쟁

- 병원들은 전공의 인력 부족으로 인한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진료보조인력을 다수 활용하고 있는 상황
- PA 문제를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리며 의료계 내부에서도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최근 의료계에 가장 뜨거운 이슈를 하나 꼽자면 진료보조인력(PA) 합법화 논의가 단연 우선적으로 나올 것이다. 그동안 의료계는 PA를 무면허 인력, UA로 규정하며 정부에 불법의료행위 원천 근절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의료계 내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병원·전문과 간 격차가 벌어지고 수도권·지방의 의료 인력 차이, 전공의 업무 부담 문제 등이 고질화되면서 PA 문제를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리며 의료계 내부에서도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원칙적으로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좀 더 전향적인 입장 변화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 진료보조인력(PA)란?
의사 면허 없이 의사로서 가능한 업무 중 일부를 위임받아 진료보조를 수행하는 인력으로, 의사의 수술 보조, 처방 대행, 진단서 작성, 시술 등의 업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PA(Physician Assistant)로 불리지만, 의사 면허가 없는 무면허 인력이라는 점에서 UA(Unlicensed Assistant), 일부 병원에서는 의사의 지시를 받고 일한다는 뜻에서 '오더리(Orderly)' 또는 '테크니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진료보조인력은 현행 의료법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이들의 불법 의료 행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었다.


◆ 우리나라의 PA 상황은?
대다수의 PA는 간호사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는 일반 간호사 중 일정 경력 이상의 간호사들이 PA로 투입된다고 알려졌는데,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전공의가 부족한 외과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PA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놓여있다. 의료법 제2조는 간호사의 업무를 '치과의사, 한의사,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명시한다. 따라서 PA가 단순히 전문의의 지시 아래 업무를 보조한다면 불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PA가 수술 및 시술, 처방 등 의사면허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을 하거나 전문의의 지도·감독 없이 의료 행위를 할 경우에는 무면허의료행위에 해당한다.

문제는 상당수 PA가 의사의 고유 업무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수술 및 상처 봉합, 대리 처방, 진료기록지·시술동의서 등 작성, 주치의 부재 시 업무대행 등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법 제2조에서 의료인 종별에 따른 업무범위를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벗어나는 경우 불법 의료 행위로 판단한다"(보건복지부)


◆ PA 합법화 논의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정부는 PA를 합법화하려는 가장 큰 이유로 현재 우리나라의 의사 수 부족 문제를 꼽았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OECD 보건통계 2021'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상 의사 수는 한의사를 포함하더라도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회원국 중 폴란드, 멕시코에 이어 세 번째로 적었다.

결국 병원들은 전공의 인력 부족으로 인한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진료보조인력을 다수 활용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특히 서울대병원의 경우 지난 7월 처음으로 PA를 임상전담간호사(CPN)로 명칭을 변경하고, 임상전담간호사를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의사 인력 부족은 의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공백을 만들어내는 만큼, 의사의 업무를 다른 직종이 대신하는 이른바 무면허 불법의료행위를 조장하게 된다. 대체로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조차 PA의 '불법의료' 없이는 의료기관이 돌아가지 않는다.

◆ 의료계 내부에서도 찬·반이 엇갈리는

-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전공의협의회 여한솔 회장은 PA 대응 방향성에 대해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면서 원칙적인 반대 입장을 분명히 내세웠다.


"대전협은 의료계에서 가장 순수하게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의료 단체다. 비용이나 다른 것들은 고려하지 않고 환자만 생각했을 때 대전협은 PA 업무범위를 각 행위별로 따져봤을 때 보수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둘러싼 판례나 법률적 해석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우선 원칙이 지켜져야 다음 문제로 나아갈 수 있다"


- 내부에서 나오는 찬성의 목소리
반면 대의원들 사이에서는 전공의 인력이 부족한 병원에선 이미 PA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PA에 반대하려면 우선 어디서 어디까지를 불법으로 규정할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현재 의사 혹은 간호사만 이 업무범위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조항은 없고 의사의 지시 아래 행해야 한다는 조항만 있다. 정의와 함께 구체적인 업무범위 규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PA 업무범위가 너무 보수적으로 규정됐을 때 발생하게 되는 과도한 업무 로딩 등 부분도 고려해야 하며, 의사 권익을 위해 너무 타이트한 업무범위 설정도 위험한 발상이 될 수 있다. PA가 병원 현장에서 업무를 분담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 외국의 PA 인정 사례
- 영국
영국의 경우 ACP(Advanced Clinical Practitioner)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간호사 등 현장 인력이 수술실 등에서 의사 지도 아래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정 자격 취득 시에는 수술일지를 쓰거나 일부 지정된 약 처방도 가능하다.

- 미국
미국의 경우 CSA(Certified Surgical Assistant)들을 양성해 운용한다. 이들은 해당 수술실 내 특정 시술에 있어서는 전문가적 역량을 갖추고 있다. 다만 이들은 독립적인 행동은 불가능하다. 현장 교수들 지도 아래 일부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제한돼 있다.


ACP 제도는 병원 수술실 내에서 손발이 잘 맞는 간호사가 실질적인 수술실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규정화한 것이다. 원팀으로 수술실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최소 5년 이상 임상경험이 필요하고, 병원에서 꾸준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등 철저한 관리하에 ACP를 양성하고 있다.



<쟁점 별 의견 대립>
◆ 의료계의 현실

- 찬성 : 현실에선 이미 PA가 필수적

"이미 의료 현장에서는 의사가 해야 하는 일도 간호사가 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없다'라고 해도 '있다'라고 봐야 한다. 특히 노령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다 의사보고 하라 하면 의사 입에서 의사가 부족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블러드컬쳐(혈액배양검사), 석고붕대(CAST), 수술보조(1,2 Assist), 응급약물투여, 특수장치 모니터링(심전도) 등은 이미 현장에서 간호사가 주로 하고 있다"


- 반대 : 의료 서비스 질 하락

"의사업무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PA가 일을 대신할 경우 의료사고 발생 확률이 높다. 또한 경력 간호사들을 PA로 투입하다 보니 간호현장은 연차가 낮은 간호사로 채워진다. 결국 간호 서비스의 질은 낮아지고 의료현장의 인력부족도 심화된다. 또한 PA가 더 늘어나면 교육 기회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고 전임의 수련기간도 더 길어질 것이다. 불법 PA를 허용하게 되면 올바른 의사 수련은 이뤄질 수 없고 결국 의료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 시대의 흐름

- 찬성 : 시대의 변화와 의료기술 발전 상황을 반영해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심초음파 검사는 심장내과 의사가 직접 해야지 간호사 등이 촬영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 안전성, 관리 가능성 등이 검증되면서 현재 간호사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 좀 더 고도의 의료를 해야 할 사람, 검증된 의료를 행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업무 조정이 필요하다. 조금 더 탄력적으로 운영되도록 법적 해석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


- 반대 :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PA가 시행되고 있는 병원을 보건복지부에 고발 조치하고, 시정 공문이 내려온다면 그 이후 비용이 좀 더 들더라도 불법적인 진료보조인력이 아닌 전문의 인력으로 충원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로 가는 것이 옳다. 현재 UA 문제에 있어 여러 가지 이유가 나오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병원 입장에서도 수익구조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전공의 수련 문제보다는 당장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PA를 이용하는 것이다. 대형병원은 저수가 체제하에서 보조인력 도움 없이는 정상적인 진료를 계속 이어갈 수 없다고 하는데 이는 현재의 어려움을 범법 행위로 해결하려고 하는 편법적이고 잘못된 해결 방식일 뿐이다. 저수가가 문제라면 원칙적이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달라 요구해야 한다"


◆ 의사 인력 부족 문제 해결

- 찬성 : 의사 인력의 부족

"의사의 권익을 위해 전부 의사가 해야 한다고 업무 범위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이미 PA가 3,000명에서 1만 명으로 늘었는데 이 숫자는 의사가 다 대체할 수 없는 규모이다. 또한 지방 의료의 경우 의사가 하는 일을 간호사가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을 의사가 다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반대 : 의사를 구하기 어렵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

"양성화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현재 PA가 하는 업무를 대신할 의사를 구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과연 적정한 대우(단지 보수뿐만 아니라 신분 보장이나 인격적인 대우 등)를 보장하면서 채용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많은 의사들이 강제지정제와 저수가에 신음하면서도 겨우 적자만 면하는 상황으로 개원을 지속하고 있고, 고령에도 불구하고 당직을 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 중에서 적임자를 찾기보다는 구하기 쉽고 저렴한 PA를 이용했을 거라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 기타 의견

- 찬성 :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지방 의원은 레지던트가 과에 1명밖에 없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PA가 없으면 아예 안 돌아간다. 환자 안전 측면에서 원칙적으로 나가는 것도 맞지만 전공의가 부족한 지방 병원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전공의 업무 부담도 늘 수 있는 만큼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했으면 좋겠다"


- 반대 : 상급종합병원 탐욕의 부산물

"환자의 진료 못지않게 교육과 연구에도 힘써야 할 상급종합병원들이 너나없이 몸집을 불리고 매출을 올리는데 경쟁을 한 나머지 크게 부족해진 의료진을 인건비를 줄이면서도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무면허자로 대체한 것이 PA 문제의 실체다. 요즘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유령 수술, 대리 수술과 다를 바 없다. 지금처럼 상급종합병원이 중소병원이나 의원에서 봐야 할 환자들까지 싹쓸이해서 검사나 처치, 수술이 적체되는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원가 이하의 의료수가를 현실화시키고, 필수 의료 인력을 적정하게 수급 배치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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