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전문의 80% “진단서 수정 요구받아”…의사회, 발부 기준 마련 착수

환자·보호자 압력에 스트레스·법적 부담 호소
일본·미국은 발부 기준·평가 절차 제도화 사례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TF 가동, 지침·법률 정비 추진

10명 중 8명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진단서나 소견서를 작성할 때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내용을 고쳐 달라”는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결과가 밝혀졌다. 진단서 작성 과정이 치료 외 목적으로 활용되면서 의사들이 과도한 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근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대정의)는 전문의 28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27일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2월 대전 초등생 피살 사건 당시 ‘부실 소견서’ 논란이 불거진 이후 진단서 작성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안을 모색하기 위해 실시됐다.

응답자의 81.5%는 “환자나 보호자가 진단서 내용에 불만을 표시하며 수정을 요구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진단서 발부 과정이 스트레스로 인해 업무에 지장을 준다고 응답한 비율도 78%에 달했다.

또한 74.1%는 “발급한 진단서 때문에 법적 책임을 질까 우려된다”고 밝혔고, 66.7%는 “환자나 보호자가 진단서를 악용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답했다. 의사회는 “환자 요청이 치료 목적이 아닌 경우가 많고, 애매한 인과관계나 과장된 기재를 요구하는 일이 흔하다”며 진단서 발부 기준 필요성을 강조했다.

해외 사례도 주목된다. 일본은 후생노동성이 직장 복귀와 업무수행 능력 평가 기준을 명확히 하고 이를 가이드북으로 발간했다. 미국은 개별 의사 판단을 존중하되, 다면적인 평가 절차를 통해 포괄적으로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발병 원인이나 법적·사회적 의미까지 의사가 단독으로 기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부담이 과중하다는 지적이다. 의사회는 “치료기간·재활기간 명시는 가능하지만 사회적 책임 여부까지 판단하는 것은 행정기관의 별도 위원회가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의사회는 지난 3월 ‘진단서 발행 절차 개선 TF’를 꾸려 지침 마련 작업을 진행 중이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협업해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서 작성·교부 지침’을 발간할 계획이다.

TF는 복직·휴직, 직무수행능력, 운전면허 취득·갱신, 총포·맹견 관리, 보상·배상 등 사회적·법적 영역에서 진단서가 활용되는 절차에 대한 개선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단순한 의학적 진단을 넘어 사회적 판단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합의체나 심의기구의 다면평가를 통해 결론을 내리는 제도를 명문화한다는 구상이다.

의사회는 “법률적 정비가 필요한 부분은 국회와 협력해 공청회를 여는 등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겠다”며 “진단서 남용을 막고 의사의 법적 부담을 줄이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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