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공급의 흐름에 따라 병상을 빌려오고 싶은 의료기관은 많은 반면 빌려줄 병상은 제한적이다보니 뒷돈을 지급해서라도 병상을 확보하려는 행태가 자리를 잡기 시작해 논란
- 의원급 의료기관이 CT·MRI 설치를 위해 100병상 이상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개원가를 중심으로 형평성 논란 일어나
정부가 지난해부터 보건의료발전협의체를 통해 ‘특수의료장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논의하면서 특수의료장비(CT, MR) 설치기준에서 공동활용병상 제도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의료계 내부에서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 공동활용병상제란?
공동활용병상 제도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08년 1월. 일정 규모 이하의 의료기관이 CT, MRI 등 고가의 특수 의료장비 검사를 하려면 일정 기준을 갖추라는 것이 제도의 핵심이다.
공동활용병상 제도에 따르면 시 단위 지역에서는 CT·MRI장비 허용 기준을 200병상 이상 의료기관으로 제한했다. CT장비의 경우 군 단위에서는 100병상까지 허용했지만 MRI장비는 군 단위 지역에서도 200병상 이상으로 제한했다.
다만, 제도의 유연성을 위해 해당 기준 병상 이하의 의료기관이 CT·MRI 검사를 원하는 경우 인근 의료기관에서 병상을 빌려 운영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것이 바로 공동활용병상인 셈이다.
◆ 공동활용병상제의 폐해
문제는 병상을 사고파는 등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부작용이 매년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200병상 미만의 A의료기관이 공동활용병상 제도를 적용, 부족한 병상 수 만큼을 인근 의료기관에서 빌려온다.
제도 시행 초반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해 병상을 적절히 공유하며 필요한 CT·MRI검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수요·공급의 흐름에 따라 병상을 빌려오고 싶은 의료기관은 많은 반면 빌려줄 병상은 제한적이다보니 뒷돈(별도 비용)이 지급해서라도 병상을 확보하려는 행태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병상 당 10만~20만원으로 시작한 은밀한 거래(?)는 3년 전(2019년) 병상 당 100만~200만원까지 급등하면서 의료계 내부에서도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2년도 현재는 병상 당 500만원까지 거래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더 이상은 지속할 수 없는 제도로 전락했다.
가령, 공동활용병상으로 20병상을 확보하는데 1억원의 뒷돈(?)이 필요한 셈이다.
이에 대해 정형외과의사회 이태연 회장은 "여기서 1억원은 말그대로 검은 돈이기 때문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수도 없어 실질적으로는 1억원 이상이 지출된다"면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대한지역병원협의회 박진규 회장 또한 "현재 공동병상활용제도의 부작용이 심각해 지속하긴 어렵다"면서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는 국회 또한 국정감사를 통해 수차례 공동활용병상의 폐해에 대해 거듭 문제를 제기해온 사안으로 제도개선 필요성이 거듭 제기돼왔다.
하지만 보발협에서 제시된 병상 기준을 두고 개원가를 중심으로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의원급 의료기관이 CT·MRI 설치를 위해 100병상 이상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정부, 의료계와 공동활용병상제 폐지 대안 마련 위한 논의 진행
정부는 MRI 및 CT 등 특수의료장비 병상 및 설치 인정기준 개선 방향을 지난 25차 보건의료발전협의체에서 설명했다.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관계자는 "특수의료장비 설치 인정기준 중 공동활용병상 운영 과정에서 병상 매매 문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폐지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폐지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지, 확실하게 결정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관계자는 "의협과 병협 등 의료계와 고시 개정에 앞서 고시 개정과 관련해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며 "지난 보발협에서는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계와 고시 개정 방향과 공동활용병상 폐지에 따른 대안을 함께 논의할 예정"이라며 "의료계와 논의를 거쳐 보발협에서 다시 상정해 고시 개정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복지부의 특수의료장비 인정 기준 변경에 대해 의료계 내부에서는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어 의협의 중재 역할이 커지고 있다.
◆ 대한비뇨의학과, 영상의학과의사회의 반대 이유는?
대한비뇨의학과의사회는 개정에 따라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정부의 공동활용병상 폐지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응기 보험부회장은 "정부는 공동활용병상에 대한 금전적 매매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특수의료장비 인정 기준을 개선한다지만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라며 "의협이 고시 개정안이 나온 이후 입장을 정리하는 것은 늦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시 개정안이 공고되면 차후 재개정하기는 어렵다"며 "사전에 명확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민 부회장은 "특수의료장비 중 CT와 MRI는 급여화 수준에 따라 차이가 난다"며 "MRI 경우는 신경외과, 신경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에서 많이 활용하지만, 비뇨의학과에서는 CT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시 개정 과정에서 CT와 MRI에 대한 기준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비뇨의학과의사회의 주장이다. CT는 현재 대부분 급여화가 이뤄져 있어 보험급여 기준으로 검사 오남용을 통제할 수 있는 반면, MRI는 여전히 비급여 부분이 많아 오남용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이다.
민 부회장은 "비뇨의학과에서 CT는 필수적인 진단 검사기기"라며 "결석환자는 결석이 있는지 CT로 검사할 경우 10분이면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CT가 없다면 요로조영술과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한다. 검사 시간이 매우 길어지고, 비용 역시 CT보다 더 비싸다"고 전했다.
이어 "부작용이 우려되는 조영제까지 투여해야 한다. 결국 고시 개정으로 인해 환자들의 피해만 커진다"며 "정부가 특수의료장비 검사 오남용을 막기 위해 기준을 개선하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률적인 적용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비뇨의학과의사회는 공동활용병상이 폐지돼 개원가에서 혈뇨 및 요로결석을 진단할 수 없게 되면,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어 의료전달체계 개선 방향과도맞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정호 보험부회장 역시 ”비뇨의학과에서 개원가와 상급종합병원이 다루는 질환은 큰 차이가 없다.. 전립선비대증, 요로결석, 배뇨장애는 상급병원이 아니어도 적은 비용으로 의원급에서 쉽게 치료받을 수 있다. 의원급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의원급이 담당할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수의료장비 기준에서 공동활용병상 제도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에 반발하는 것은 비뇨의학과의사회 뿐 아니다. 대한영상의학과의사회는 지난해 12월 이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고, 대한개원의협의회 또한 TF를 구성해 대응에 나섰다.
영상의학과의사회는 지난해 말 성명을 통해 복지부의 공동활용병상 폐지에 대해 자체 병상이 없는 1차 의료기관은 원칙적으로 CT, MRI 신규 설치가 불가능해진다며, 환자가 진료받을 수 있는 권리가 제한되며, 1차 의료기관의 경쟁력 약화 및 의료전달체계 혼란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영상의학과 전문의 진료의 전문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며, (가칭)특수의료장비 관리위원회의 전문성과 투명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대개협은 공동활용 병상 기준이 폐지되면 의원급 의료기관은 CT, MRI 등 특수의료장비의 설치, 운용이 사실상 불가능해 경쟁력이 현격히 떨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대개협 역시 "공동활용 병상 제도가 폐지되면 150병상 미만의 소규모 의료기관이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결국 소규모 의료기관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의료전달체계를 더욱 왜곡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개협은 이와 함께 소규모 의료기관의 전문 진료 영역도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겉으로는 특수의료장비 검사 오남용을 우려하지만, 속내는 CT 및 MRI 진단 검사를 병원급 이상에서만 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 의협의 입장은? 신중한 태도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고시 개정과 관련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박수현 대변인은 "의협은 이번 특수의료장비 인정 기준 고시 개정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라며 "현재 영상의학과 비뇨의학과의사회 등 몇몇 산하단체가 반대 의견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입장을 가진 진료과도 있다"고 전했다.
또 "이해관계가 있는 진료과들의 입장을 종합해 의협의 최종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며 "추후 정부가 구체적인 고시안이 나오는 것을 보고 산하단체들의 의견을 종합해 의견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
즉 현재로서는 구체적 고시안이 도출되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봐야 고시안의 파급력과 부작용 등을 판단할 수 있어 종합적으로 검토 후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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