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구] 장애인 단체 지하철 시위의 이유는?

- 이준석 대표, 장애인의 지하철 시위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출입문을 막아 수십분간 운행을 지연시킨 방식을 지적
- 박지현 위원장, 헌법이 정한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정부와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오히려 차별받는 장애인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라 비판

지난해 말부터 26차례에 걸쳐 계속됐던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둘러싸고 정치권 내에서도 격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장애인 단체의 과격한 시위 방식을 지적하며 "선량한 시민 최대 다수의 불편을 야기해 뜻을 관철하겠다는 시위 방식은 문명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비판에 나서자, 더불어민주당은 이 대표가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긴다고 주장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의 근본 원인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핵심 정책에 대한 정치권과 정부의 무관심이라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여야 합의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정작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 운영비 지원 등을 뒷받침할 보조금법 시행령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장애인단체들은 정치권과 정부가 해당 시행령 개정에 머리를 맞대면 어렵지 않게 풀릴 수 있는 문제라고 호소하고 있다.


◆ 장애인 단체의 요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난 2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제출한 요구안을 보면, 주요 내용은 장애인이 휠체어를 탄 채로 승차할 수 있는 셔틀·콜 차량 등 전용 교통수단 운행을 보장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해달라는 것이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90%를 넘은 것과 달리, 장애인 콜택시는 법상 의무 운행 비율(장애인 150명당 1대 이상)에도 크게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말 기준 전국의 장애인 콜택시 보급 대수는 3917대로 법정 기준(4694대)보다 15% 이상 못 미치는데, 이는 장애인 이동지원센터 운영비 지원을 담당하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재정 사정 등을 이유로 법적 기준 미달을 눈감고 있는 탓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통과된 교통약자법 개정안의 뼈대는 시·군·구 등 각 지자체에서 장애인 콜택시 운행을 담당하는 이동지원센터의 운영비를 정부가 지원하도록 근거 규정을 마련한 것이었다. 휠체어에 탄 채 탑승할 수 있는 장애인 콜택시나 셔틀버스는 지하철이 없거나 저상버스 도입률이 낮은 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이동수단이지만, 현재는 이 운영비를 지자체가 대고 있어 지역별 편차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한 법안 논의 과정에서 국비 지원 의무조항이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지원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변경됐다. 더구나 기재부가 보조금법 시행령에 ‘장애인 특별운송수단 지원비’를 보조금 지급 제외 사업으로 정하고 있어, 국비 지원을 위해선 이를 삭제하는 시행령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정부가 지금껏 이런 상황을 방치해왔고, 이에 대한 항의로 전장연은 최근까지 기재부의 보조금법 시행령 개정을 요구하며 출근길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장애인 콜택시 확대 어려워...예산 지원이 의무 사항이 아니라 문제

실제로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 개정안을 보면, 장애인 콜택시와 같은 특별교통수단과 관련 예산 지원 조항은 의무가 아닌 임의조항으로 돼 있다. 지원이 의무가 아니다 보니 장애인 관련 예산은 지자체가 집행해야 하는데, 많은 지자체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또한 장애인 콜택시의 경우 법정대수가 정해져 있지만 그조차도 채우지 못한 지자체가 많고 법정대수 역시 실제 수요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법정대수 기준은 장애인 150명당 1대로, 장애인을 수송하기에도 모자라는데, 이용객 중에는 장애인이 아닌 노인이나 임산부 등 다른 교통약자들도 있다. 지자체 중에는 예산 부족으로 차를 확보해두고도 이를 운행할 기사를 고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저상버스 등 장애인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도입 ‘거북이걸음’
이 대표 역시 최근 통과된 교통약자법에 포함된 저상버스 도입 확대에는 찬성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도입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점이다. 노후화된 버스를 대·폐차할 때 의무적으로 저상버스를 도입하게끔 되어 있는데, 국토교통부의 추산으로는 앞으로 버스가 폐차할 때마다 저상버스로 바꾸는 데는 10년 가까이 걸린다. 현재 전국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30%를 밑돌고 있다. 이마저도 대부분 서울이고, 지방에서 장애인이 저상버스를 타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변 전 국장은 “장애인들은 애초에 저상버스에 대한 기대를 접고 외출한다”며 “일례로 충남 지역의 경우 저상버스 도입률이 10%대인데 어떻게 저상버스를 타겠나. 콜택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콜택시는 불러도 오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지하철 역사 내 엘레베이터 설치도 지지부진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도, 이를 요구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리프트를 타다가 추락해 사망한 이후 본격화됐다. 그 사이 몇 차례의 추락 사고가 있었지만 아직도 서울 시내 21개의 지하철역에는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 이준석 대표의 작심비판

이 대표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어떤 분은 '전장연이 피켓을 들고 시위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말하는데, 저는 이분들이 피켓 들고 시위하거나 지하철에 탑승해 이동한 것에 대해 뭐라 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의 지하철 시위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출입문을 막아 수십분간 운행을 지연시킨 방식을 말한 것"이라며 "이분들의 시위 방식이 서울 지하철 출입문에 휠체어를 정지시켜 출입문을 닫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들이 지하철을) 타라고 해도 안 타고 출입문 가운데 있어 문을 닫지 못하게 막아 30분씩 지연시킨다"고 시위 방식이 문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 들끓는 정치권 논쟁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오늘(29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만난 자리에서 이 대표 발언을 두고 "헌법이 정한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 정부와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오히려 차별받는 장애인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이 대표 발언으로 상처받은 장애인에게 같은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대신 사과한다"며 "이동권은 당연히 누려야 할 헌법상 권리"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인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 역시 "(자신을 향한) 혐오의 감정과 짜증 섞인 표정을 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시위를 해야 했음을 누군가는 인정하고 들어주는 노력을 하는 게 정치 지도자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권에서 계속 사회통합·국민통합을 외치지 않느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수적으로 판단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나경원 전 의원은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전장연이 민주당, 정의당 소속이라 할 정도의 성향을 가진 단체라는 것을 나는 익히 알고 있다. 시민 불편을 초래하는 위법한 시위 활동도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러나 지하철에 100%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위하는 것을 조롱하거나 '떼법'이라고 무조건 비난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전장연의 시위 태도도 문제지만, 폄훼·조롱도 정치의 성숙한 모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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