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한의사 초음파 판결, 의료일원화 촉진할까... “현 의료체계의 한계”

- 의료법학회·의학회 공동 토론회서 의료계와 법조계 시각 엇갈려
- 의료계 “이원화된 면허 체계 무시한 셈”... 법조계 “그 틀 안에서 충실한 판결”
- 의료일원화 등 현행 의료체계 개선 필요성도 제기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의료일원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의료계와 법조계 양 쪽에서 나왔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의료계와 법조계의 시각은 엇갈렸지만 의료일원화의 필요성에 대해선 같은 목소리를 냈다.


▲ 출처 : 공동토론회 ZOOM 중계 캡쳐

지난 17일 대한의료법학회·한국의료법학회·대한의학회가 '환자 보호를 위한 과학적 의료의 정립과 사법부의 역할'을 주제로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의와 앞으로 논의 방향을 다뤘다.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박형욱 교수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의학에 무지한 "사법체계 후진성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의사 출신 변호사다. 박 교수는 "대법원은 끊임 없이 검증하고 개선해 나가는 현대의학을 모르고 의과학적 사고 방식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상상력에 의존해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단정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의료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 가능성 수준을 여는 것과 거리가 먼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대규모 오진 발생 가능성이 높다"면서 "한의학적 의료행위 원리와 무관하다고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는 한 이용을 허용하겠다는 대법원 논리는 의료영역에서는 처음 보는 과도한 주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기존 법을 넘어 독자적 법리를 내세우는 '사법 적극주의'의 무모한 시도로 봐야 한다고 했다. 이로 인한 파장은 사법부가 감당해야 한다고도 했다.

박 교수는 "현대 의학은 스스로를 꾸준히 검증해왔다. 한의사도 한의학적 진단 방법으로 임신, 당뇨병, 자궁내막증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는지 검증해야 한다. 대법원은 판결에 책임을 지고 이에 대한 검증을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장욱 교수도 이번 대법원 판결이 "입법부 역할을 침범했다"면서 사법 적극주의에 우려를 드러냈다. 최근 의사 면허 범위 관련 판결에서 이원화된 면허체계라는 현행 법제도를 벗어나려는 사법부 의도가 보인다고 분석했다.

장 교수는 "최근 판례를 보면 이원적 의료체계에 바탕을 둔 현행 의료법상 의료인 종별 면허제도 취지와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판결도 이원적 의료체계를 벗어나 일원적 의료체계에 타당한 법률 해석을 했다"고 했다.

반면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기존 법리를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봤다. 이원화된 면허체계라는 틀 안에서 이뤄진 판결이라는 관점이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이동진 교수는 "이번 판결의 기본적인 판시가 새로운 입장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법 해석 범위 안에서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바꾸고자 하는 내용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교수는 "의료 면허는 고도의 재량을 인정한다. 배운 적 없고 과학적 근거 없는 의료행위를 한다고 해서 무면허 의료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한의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면서 "한의사가 한의학에 기초한 의료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하긴 어렵다"고 했다.

이 교수는 "대법원은 한의사가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무면허 의료행위가 되려면 그 의료기기 사용이 오직 서양의학적 방식으로만 가능한 경우여야 한다고 봤다"면서 "우리가 의학과 한의학이라는 이원적 의료체계를 대등하게 규정하고 있다면 법원 입장에서도 한의학에 똑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현행 법체계상 직역 구분을 둘러싼 갈등은 이어질 거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앞으로 엄밀한 직역 구분을 두고 문제가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의료행위도 늘어난다. (이원 의료체계를 전제로 한)현행법상에서 대책을 마련하긴 힘들다. 별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대표변호사 역시 "대법원이 제시한 새로운 기준은 의학적 비난 대상이 되더라도 법리적 설득력을 갖추고 있고 최근 판례 경향에도 부합한다"면서 "다만 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 구별 기준을 불명확하게 만들었다"고 동의했다.

현 변호사는 "지금까지 학문적 기초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이제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서 그 기준이 모호해졌다. 앞으로 의사와 한의사 간 한방의료행위 개념과 범위를 둘러싸고 갈등이 더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판결로 이원적 의료체계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이를 계기로 의료일원화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더 이상 사법부 판단에 의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 변호사는 "구체적인 분쟁 사례는 증가하는데 법원 해석으로 갈등을 해결하기엔 한계점에 이르렀다. 이원화된 의료체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면서 "이번 판결은 그 단초를 제공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사법부의 입법부 영역 침범을 지적한 장욱 교수도 현 의료체계 한계가 노출됐다면 사법부 판결이 아니라 법률 제·개정을 통한 의료일원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장 교수는 "현재 이원적 의료체계가 현대적 의료 시행과 국민 법 감정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사법부 법률 해석이 아니라 입법부의 법률 제정이나 개정 절차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이런 경우 법률 개정을 통해 일원적 의료체계로 전환하고 의료인 종별 면허와 업무 범위를 새로 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의료계가 한의사 오진·오독 문제에 초점을 맞추거나 의료법 개정을 통해 면허 범위 구체화를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무영법률사무소 임무영 변호사는 한의사 뇌파계 사용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도 초음파 진단기기 판결과 비슷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면서 의료계가 의학적 근거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사법부를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 변호사는 "교육을 기준으로 면허된 의료행위 범위를 확정하자는 것은 의사 역시 자기 전문 분야 외 의료행위와 일반의 의료행위까지 무면허 의료행위로 해석될 여지를 준다"면서 "한의사도 교육으로 오독 가능성을 줄일 수 있고 의사라고 해서 오독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반론이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임 변호사는 "따라서 초음파 진단기기를 이용한 검사 자체가 서양의학이라는 학문적 원리에 기초했다는 부분을 강조해야 한다"면서 "대한의사협회 명의로 파기환송심 담당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이런 사안을 설명하고 공소장 변경을 비롯해 심리가 충실히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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