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할 의사가 없는데 응급환자 무조건 받아라? 책임은 누가 져”

- 응급의학의사회, 응급환자 수용 관련 시행규칙 강화에 반발
- “심장조영술 안되는 병원에 위급하다며 흉통 환자 이송하면 진료봐도 치료 불가”
- “필수의료 붕괴로 배후 진료 안 되는데 응급실만 압박”

정부가 응급환자의 이송지연을 줄이겠다며 수용 곤란 통보 절차를 까다롭게 시행규칙을 개정하자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하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응급환자 이송지연이 응급의료기관의 ‘이기적인 수용거부’라는 단편적인 진단부터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 출처 : 동국대병원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기관이 응급환자 수용이 곤란을 통보할 때 그 사유와 근무 의사 현황, 병상 현황 등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도록 하는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18일 의료계 의견 수렴까지 마쳤다.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는 이날 가톨릭대 성의교정 의생명산업연구원 대강당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응급환자 이송지연은 병원의 이기적인 수용거부 때문이 아니라 응급의료의 인프라와 배후 진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형민 회장은 “응급환자 수용거부 관련 시행규칙이 마련되면서 우려하던 상황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며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나 큰 부담이 될지 우려가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회장은 “심장조영술이 불가능한 병원에 흉통 환자를 내려놓으면 이송시간은 짧아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며 “병원 전 단계 환자분류 결과에 대한 정책당국의 책임은 나몰라라하고 응급실만 압박하는 것은 서로의 신뢰만 해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문제들의 기본 맥락에는 응급실이 (응급상황의 환자를) 진료할 수 있음에도 환자를 거부할 것이라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다”며 “현장에서 고생하고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격려가 아닌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은 무척이나 기분 나쁘다”고 불쾌감을 표출했다.

그러면서 “응급의료기관에만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 아니라 응급환자가 응급의료체계에 수용된 경우 최종치료까지 한 번에 연결될 수 있는 범국가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환경개선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법을 개정하기에 앞서 응급환자 이송지연과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제대로된 실태조사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응급환자 이송체계에 대한 실태조사부터 먼저 해야 한다. 현장은 정말 힘들다. 이송지연이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지 원인을 파악하지 않고 이런 법부터 만들어 내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개정안에는 시도 응급의료위원에서 응급의료기관에 대한 구체적인 선정 기준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현장 의견이 반영될 수 없는 구조”라며 “결국 정해준 대로 (응급의료기관이 응급환자를) 받으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책임은 병원이 지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응급실에서 환자를 거부하는 것이 이송지연의 원인이라는 책임전가를 중단하고 중증응급환자 전원시스템 개선을 위한 논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며 “추후에도 시행에 따른 전문가 평가와 논의를 거쳐 문제점이 있는 경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자체를 재논의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병원 전 단계에서 병원단계까지 응급의료체계 구성원들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응급실 과밀화 해결을 위해선 경증환자 분산대책을 마련하고 병원간 전원시스템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전원환자 수용에 따른 지원방안 마련 등이 절실하다. 또 응급의료 계획 수립에 추가적인 현장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태훈 정책이사는 “환자를 받아 응급처치를 하고 최종 치료를 하기 위해 필수 진료과 배후 진료가 중요하지만 그 과들에서 문제가 발생하다보니 응급실 진료가 어려워지는 상황”이라며 “결국 응급의료체계 문제는 타과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데 응급실을 바꾸면 된다는 몰지각한 생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정책이사는 “응급의료체계 붕괴는 배후에 있는 신경외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내과 등 필수의료 붕괴 영향이 응급실에 전달돼 가중되는 것”이라며 “그걸 응급실 문제로 치부하고 해결하겠다고 하면 응급실이 붕괴되면 환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냐. 결국 이송지연이 아니라 사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모순된 상황이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현장을 떠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락세를 그리고 있는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율도 위기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했다.

이 회장은 “코로나19의 긴 터널 속에서 많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탈진과 실망으로 응급의료 현장을 떠났고 전공의 지원율 하락에서 보듯 장래 또한 불투명해지고 있다”며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게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과와 산부인과, 외과, 소아과에 다음이 응급의학과가 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며 “단기적인 대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려울수록 근본을 생각하고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기동훈 위원은 “응급의학 전문의 중 전공의 지원율이 떨어지고 있고 전문의들도 응급실을 많이 떠나 개원이나 피부 미용 쪽으로 가고 있다”며 “응급의학과 의사라는 자부심에 상처가 생기니 조용한 사직이 늘고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더 늘지 않겠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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