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SVB 은행 이틀만에 파산 ‘직원 8,500명 해고 위기’

- 연준 금리 인상 장부 손실 급증에 채권 매각 결정하자 고객들 ‘집단 뱅크런’
- 고금리 예측 실패해 채권 과잉투자... 수익률 저조하자 유동성 문제도 발생
- CEO 주식 매도 등 ‘도덕적 해이’ 문제도 제기

단 이틀만에 급격하게 흘러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의 위기가 결국 파산으로 끝맺음을 맞을 형국이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멀쩡해보였던 은행이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경고음은 이전부터 울리고 있었다.



SVB의 파산 배경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지속적인 기준금리 인상과 테크업계의 불황이 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예민하다는 평가를 받는 실리콘밸리의 밴처투자자들의 예금 인출까지 더해져 미국 16번째 규모의 중견은행의 파산사태가 빚어졌다.

SBV는 그동안 시스코, 비욘드미트, 쇼피파이 등 굵직한 스타트업 기업들의 초기 자금을 조달해왔다. 미국 IT·바이오테크 회사의 절반 이상이 SVB를 이용했을 정도로 벤처·스타트업 지원에 특화되어 있는 은행이었다. 식품관리 스타트업 셰프 엔진의 스테판 칼브는 “일반 카드 회사에서 신용카드 발급을 해주지 않고, 대형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고성장 스타트업들도 SVB에서는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코로나19와 함께 테크 기업으로 돈이 몰리게 되면서 작년 3월 말에는 SVB의 보유 예금이 2000억 달러(약 260조 원)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SVB의 성공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 연준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준 금리를 빠르게 인상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금리가 높아지자 신생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졌고, 기업 성장은 둔화되어 예금은 빠르게 소진되어 왔다. 고객들이 요구하는 금리도 높아지면서 신규 예금을 유치하는 비용도 올라갔다.

고금리 기조가 몇 분기에 걸쳐 이어지면서 미실현 손실도 생겼다. 미실현 손실은 자산을 획득하는 비용과 시장 가치간의 격차의 문제를 말한다. SVB의 모회사인 SVB파이낸셜은 장기 미국 국채와 정부지원 모기지 증권을 주로 매입해왔는데 고금리가 되자 SVB파이낸셜이 보유했던 증권들이 장부가격보다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말 SVB가 보유한 증권 포트폴리오에서 미실현손실은 170억 달러(약 22조 5,000억 원)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에 지난 8일 SVB는 대출자금 조성과 투자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증권매각을 발표했다. 210억 달러 상당의 증권을 약 18억 원의 손실을 감수하면서라도 매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결정이 발표되자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문제를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고 생각한 투자자들의 혼란에 주가폭락으로 자본 조달이 어려워졌고, 수익률과 투자 위험도에 민감한 밴처캐피털들이 SVB에 예치했던 예금을 앞다퉈 인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규제 당국에 따르면 발표 다음 날인 9일 은행 예금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420억 달러의 예금이 인출됐다. 이에 은행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기까지 단 이틀이 걸렸다. 뉴욕타임스는 “대부분의 정상적인 중견은행에서는 SVB에서의 일이 패닉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SVB의 고객들은 신생창업자와 투자자들이고, 위험과 변동성에 예민해 몇몇 사람들의 경고만으로도 많은 고객들이 당황했다”고 지적했다.

또, SVB가 연준의 긴축을 예상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저수익 상품에 투자한 점도 패착이었다. FT는 SVB가 901억 달러를 저수익 채권에 투자하면서 이후 150억 달러의 미실현 손실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오펜하이머 애널리스트인 크리스토퍼 코토우스키는 “이 결정이 SVB수익성에 ‘돌과 같은 닻(stone anchor)’을 만들었고, 은행은 금리 변화에 취약해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SVB가 투자금을 변동금리 증권부터 다른 은행 예금까지 다양한 수단으로 분산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SVB는 기업 고객을 주로 상대해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사태)에 더 취약했다. 대부분의 SVB고객이 기업의 재무담당자였고, 둘 이상의 은행과 거래하는 경우가 많아 개인고객보다는 예금 인출 및 자금 이동이 수월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SVB최고경영자(CEO)의 도덕적 문제도 제기됐다. 블룸버그는 10일(현지시간) SVB공시자료를 인용해 그레그 베커 회장 겸 CEO가 지난달 27일 모회사인 SVB파이낸셜 주식 1만2451주(47억 6,000만 원)를 매각했다고 보도했다. 파산 공식 발표 11일 전이다. 블룸버그는 이번 주식 매각은 ‘내부자 거래’방지 규정을 거쳐 진행해 법적 문제는 없으나, 지분 매각 보고 시점과 실제 거래까지의 시점이 너무 짧아 제도에 허점이 있다고 전했다.

이번 파산으로 8,500여 명에 달하는 SVB직원들도 일자리를 잃게 됐다. SVB 파산 관재인인 미 연방예금보험공사는 지난 10일 SVB 직원에게 45일간 고용을 제안하는 이메일을 발송했다. 이 기간 안에 SVB인수 기업이 나오면 직원 고용이 유지되나, 아닐 경우 파산절차가 끝나면 직원들은 해고된다.

한편, 미국 연방정부는 12일(현지시간) 공식 발표를 통해 금융시장 충격을 방지하기 위해 SVB 예금을 보험 한도와 상관없이 전액 보증하기로 했다. 12일(현지시간)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이 같은 내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이 연준과 FDIC의 권고를 조 바이든 대통령과 협의한 결과 모든 예금주를 완전히 보호하는 방식의 사태 해법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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