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연’ 임지연 “캐릭터 연구, 톤 만드는 것부터 많은 준비”
- “용서받는 악역 아닌 끝까지 미움받는 악역을 하고 싶었다”
2023년 지금까지의 최대 화제작은 의심의 여지없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글로리>일 것이다. 복수극이라는 흔한 장르임에도 ‘학교폭력’의 적나라한 악랄함과 여타 복수극과는 전혀 다른 길의 응징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은 드라마가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악역 ‘연진’역을 맡은 배우 임지연이 있었다.
더글로리에서 연진의 마지막은 모든 것을 잃은 채 감옥에 갇힌 연진을 동은(송혜교)이 찾아와 면회하는 장면이다. 연진은 이 때도 ‘내가 여기 오래 있을 것 같냐’며 객기를 부리지만 동은의 ‘아무 것도 몰라서 억울할 것’이라는 말에 완전히 무너져 절규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단순히 감옥에서 법적 처벌을 받거나 보복의 죽임보다도 가혹한 형벌인 정신적인 의심과 답답함, 분노, 억울함, 헛된 희망이 반복되는, 동은의 말처럼 ‘연진의 머릿 속에 동은으로 가득한’ 복수의 끝맺음은 많은 시청자로부터 찬사를 받은 대목이기도 하다.
지난 17일 배우 임지연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장면을 연기할 때를 회상했다. 임지연은 “이전의 악행을 연기할 때와 달리 실제로 무너지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며 “연진이를 연기하면서 나도 모르게 연진이를 좋아하고, 또 사랑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임지연은 첫 촬영 때부터 시나리오를 집필한 김은숙 작가로부터 “난 연진이를 미화할 수 있는 어떠한 서사도 넣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에 그녀도 “용서받고 달라지는 그런 악역이 아니라 끝까지 세상 사람들이 미워하는 악역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실제로 더글로리의 서사가 힘과 박진감있게 거침없이 굴러가는 동력 중 가장 주요한 요인이 바로 연진에게서 나온다. 임지연은 “연진을 제대로 악역으로 해야 동은의 복수에 설득력이 생겨나고 시청자들의 공감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에 캐릭터 연구나 연기 톤을 만드는 것에 많은 준비를 해야했다”고 말했다.
극 중에서 연진과 동은은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할의 대비만큼 말 톤과 매너에서 정반대를 이루는 캐릭터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건조하고 차가운 억양으로 어둡고 무늬없는 옷만 입는 동은과 달리 연진은 노골적이고 뜨거운 성격이며 명품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등장한다.
임지연은 “욕도 극 중 친구들에게 쓸 때와 동은이한테 할 때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고, 담배도 혼자 열받아서 피울 때와 남편 앞에서 피울 때의 디테일에 대해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연진의 욕 장면과 흡연 장면은 소셜미디어와 언론 등의 많은 화제를 남기며 더글로리의 인기몰이에 한 몫을 더했다.
다른 복수극과는 달리 극 중 연진은 막판에 억지스러운 후회나 반성을 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끝까지 일관성 있게 이기적인 선택을 고집하는 모습은 오히려 우리가 사는 현실과는 더욱 가까운 느낌을 주기도 하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극 중 연진의 마음을 흔드는 사람은 단 한 명, 남편 하도영(정성일)이다.
연진에게 남편은 동은에게 자신의 꿈을 말할 때처럼 ‘그림 좋은 남편’을 골라 원하는 삶을 누리기 위한 도구의 역할이었으나 연진은 어느 순간 남편을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고, 그런 남편이 동은을 만나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걸 알게되며 끝없이 무너져내린다.
임지연도 이런 감정선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임지연은 “연진이가 유일하게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 도영과의 관계에서다. 이 변화는 도영에 대한 일종의 리액션인 셈인데 미묘하게 연진이가 무너져가는 것을 연기하는 것이 어려워 작가님이게 가장 많이 질문을 던진 것이 도영과 함께 했던 씬”이라고 말했다.
악랄했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이 엄마가 된 이후에 이르기까지 연진은 꾸준하게 못된 행동들을 계속하는 캐릭터이다. 임지연에게 연기하면서 자신이 가장 못되게 느껴진 장면이 무엇인지 질문하자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가 천천히 답변했다. 임지연은 “못되지 않은 장면이 없어서 고르기가 어려운데 현남(염혜란)의 집을 찾아가 ‘오늘은 남편이 일찍오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다시 보니 정말 나빠보이더라. 이 전과는 다른 느낌의 악마처럼 긴 머리를 쫙 펴고 립스틱도 옷차림도 진한 느낌으로 무섭게 연출해 연진이가 정말 나쁘게 보여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훌륭한 연기로 많은 평론가와 시청자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 배우 임지연의 연기 인생이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2014년 영화 <인간중독>에 캐스팅되며 주목을 받은 그녀는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며 이후에도 뗄 수 없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더글로리>에서의 열연은 시청자들이 열광하며 배우로서의 가장 큰 영광인 연기력 찬사를 보낼 수 밖에 만들었다. 연기력 논란이 따라다니던 시절, 같은 한예종 출신의 많은 선후배 배우들이 연기력에 대한 호평과 함께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을 보며 초조하고 불안함을 견뎌낸 결실이었다.
임지연은 “학창시절에도 스스로를 타고난 배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가진게 많이 없으니 노력을 더 많이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며 “(인간중독의 경우) 나이도 어렸고 연기도 잘하지 못하는데 작품에 맞는 마스크를 가졌다는 이유로 캐스팅되고, 또 파격 씬으로 과도한 주목을 받으면서 힘든 부분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무기력하고 불안하며 무너지는 순간들이 있었다”며 “기회를 얻지 못해 혼자 영화와 공연을 수백편 보고, 책을 읽으며 보냈던 시간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도움이 됐다. 앞으로도 힘겨운 순간들이 또 찾아올 것이고, 연기력 논란이 다시 생길 순 있겠지만 그걸 노력으로 이겨내는 성취감이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하는 이유”라고 했다.
임지연은 올 상반기 방영 예정인 TvN의 스릴러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을 통해 자신의 연기력을 다시 한 번 뽐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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