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안 놓친다’ 응급의료체계 전면 개편

- 보건복지부, 제 4차 응급의료기본계획 발표... 신속한 응급처치 받도록 개선
- 현장·이송부터 응급실 진료, 수술까지 지역완결 응급의료체계 구축
- 전국 어디든 1시간내 진료 목표

정부가 최근 응급의료체계를 전면 개편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발표한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을 살펴보면 응급의료기관의 과밀화를 막고 중증응급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응급실에 심뇌혈관 등 중증응급 환자부터 단순 타박 등 경증 환자까지 다양한 환자가 뒤섞이면서 신속한 진단과 치료가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했다. 따라서 분초를 다투는 중증응급환자가 신속한 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중증, 중등증, 경증 응급의료기관을 명확히 구분해 환자가 중증도에 맞는 응급의료기관을 이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재 각각의 역할이 모호한 권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기관 체계를 중증, 중등증, 경증 응급의료기관으로 기능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개편하기로 했다. 현 응급의료체계의 실태와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의 주요 내용에 대해 살펴본다.



◆ 응급의료체계의 현 실태

지난달 9일 자정 무렵 식도암을 앓고 있는 고(76)씨를 태운 사설 구급차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달려왔다. 고씨의 자택은 전남 완도군 노화도로 서울 강남의 삼성병원과는 수백km가 떨어져 있는 곳이다. 응급상황에서 왜 이런 먼길을 거쳐 강남으로 온 것일까.

전날 숨이 차고 가래가 멈추지 않자 고씨는 딸과 사위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후 2시간에 걸려 광주광역시의 딸 집으로 이동해 하루를 보낸 후 이틑날 날이 밝자마자 광주의 한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의료진은 고씨의 항암과 수술 치료를 한 적이 없어 난색을 표했다. 때문에 사설 구급타를 타 4시간을 달려 처음 수술받은 삼성병원으로 온 것이다. 서울 의료진은 폐에 염증이 생겨 주변 조직에 감염이 퍼진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6월과 8월 각각 항암치료와 수술로 인해 입원했다가, 같은해 11월 병원 근처 원룸인 ‘환자방’을 뺄 때만 하더라도 완도의 집으로 돌아가 일상 복귀를 꿈꿨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가서도 서울 병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현 실태는 ‘큰 병에 걸리면 서울로 가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매년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암 환자의 30%, 소아암으로 한정하면 70%는 서울 등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는다. 장시간 이동거리를 감수하고 수도권으로 향하거나 아예 병원 근처에 작은 방을 얻어 서울살이를 시작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수도권 대형병원 근처에는 하나둘 환자 숙소 시설이 들어서더니 이제는 고시원과 고시텔, 세어하우스, 요양병원 등이 밀집한 ‘환자촌’이 되어버렸다.

◆ 응급실 중증도 기준으로 체계 개편


정부는 현재 응급의료체계가 응급 현장·이송 단계, 응급실 진료, 수술·입원 등 최종진료 사이에 전달체계가 매끄럽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4차 기본계획에서 응급의료체계 전반을 재구조화함으로써 단계별 대응 효율을 높이고 협업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우선 권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구분돼 있지만 역할이 모호한 응급의료기관 체계를 각각 중증, 중등증, 경증 진료 기능으로 명확히 구분하기로 했다. 특히 구급대와 병원 간 중증도 분류기준을 통일해 구급대가 적절한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도록 하고, 구급차를 이용하지 않고 응급실을 찾는 경우에도 119 구급상황관리센터 상담을 통해 중증도에 맞는 응급의료기관을 이용하도록 안내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무작정 큰 병원을 찾는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비응급환자가 중증응급환자를 담당하는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는 경우 다른 적정한 병원·응급실을 안내하거나 높은 본인부담금을 사전 안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예컨대 단순 찰과상으로 대형병원 응급실을 찾게 되면 다른 병원으로 돌려보내지거나 더 많은 비용을 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논의를 거쳐 올해 안에 응급의료기관 전달체계 개편 시범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또한 24시간, 365일 대응이 어려운 중증응급질환의 경우 지역별로 병원 간 협력 네트워크를 활용하도록 해 응급의료 공백을 막는다. 요일별 당번병원제 형태의 순환당직을 통해 중증응급질환에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하고 이후 적정한 치료 제공이 어려운 경우에는 타 의료기관으로 쉽게 전원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정부는 전국 어디서든 중증응급환자가 발생하면 1시간 안에 진료받을 수 있도록 권역별 수요, 의료자원 분포 등을 고려해 중증응급 인프라가 더 필요한 지역에는 추가로 중증을 담당하는 응급 의료기관을 육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이미 중앙응급의료위원회 의결을 통해 서울 서북, 부산, 경기 서북, 경기 서남, 충남 천안 등 5개 권역에 권역응급의료센터 추가 지정을 추진하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 응급구조사도 심전도 측정한다

정부는 구급대원이 환자를 이송할 때 업무가 제한돼 있어 환자의 중증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데다 각 응급의료기관의 진료 가능 여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없어 응급환자의 빠른 이송, 진료를 어렵게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국가시험을 거친 1종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에 ▼심전도 측정 및 전송 ▼심정지 시 에피네프린 투여 ▼아나필락시스 쇼크 시 에피네프린 투여 ▼ 정맥로 확보 시 정맥혈 채혈 ▼응급 분만 시 탯줄 결찰 및 절단 등 5종을 추가하기로 했다. 자격을 갖춘 응급구조사는 이송 전 및 이송 중, 의료기관 내에서 이들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심전도 측정·전송 업무의 경우 의료기관 중에서도 응급실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했다.

또 지역별로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명, 위치 등을 반영한 '지역 맞춤형 이송 지침', 의료기관 대상의 '응급환자 수용 곤란 고지 프로토콜'을 마련해 응급환자가 적시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종합상황판 형태의 응급의료자원정보시스템을 환자, 구급대, 의료기관 등에 맞춤형 응급의료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대폭 개편하고 모바일 앱 개발도 추진한다. 이외에도 중증외상, 심뇌혈관, 소아응급, 정신응급, 재난대응 등 5개 전문 분야에 대해서도 방안을 수립했다.

이중 재난대응 분야에 대해서는 이태원 사고를 계기로 나온 개선점을 반영해 재난 사전 예방을 위한 지역별 재난의료협의체 구성, 의사소통 체계 개선, 재난의료진원팀(DMAT)과 소방, 보건소간 합동훈련 내실화, DMAT 활동 여건 개선 등이 계획안에 담겼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대형병원 응급실이 과밀화되는 것은 국민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응급실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살고 있는 지역에서 안심하고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응급의료체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 핵심은 소아·중증 진료 개선

정부가 내놓은 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은 현행 응급의료 체계를 정비해 궁극적으로 중증 환자나 소아 환자가 응급실에 갔을 때 진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응급실에 가도 중증 환자나 소아를 진료할 의료진이 없다는 등 이유로 주변 병원을 전전하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사례가 종종 있었지만, 이제부턴 응급의료 체계를 확 바꿔 환자 생명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은 중증 환자와 소아 환자에 대한 응급의료 시스템을 새롭게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흉터 환자가 응급실에 왔을 경우 지금까지는 성형외과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환자를 돌려보내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앞으론 이런 환자도 응급의학과 의료진이 우선 진료하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중증센터로 보내는 구조로 개편된다.

또 필수의료 논란에 불을 지핀 소아 응급환자 진료도 대폭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기본계획에는 소아 응급실이 시설과 장비 등의 부족을 이유로 '수용곤란'을 고지해야 할 상황이더라도 심정지 등의 초응급환자에 대해서는 기준과 무관하게 환자를 수용하도록 규정했다.

이런 진료가 가능해지는 건 지난 30년 동안 시행돼 온 '권역응급센터-지역응급센터-지역응급실' 시스템이 '지역응급실-응급센터-중증응급센터' 개념으로 정비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행 응급의료 체계에서는 지역응급센터를 거쳐 권역응급의료센터에 가야 하지만, 병원의 전체적인 진료 역량으로는 반대인 경우가 있어 중증 환자 진료에 걸림돌이 되는 측면이 있었다. 또 중증센터에 경증 환자들이 많이 모여 정작 중증 환자들이 제때 진료받지 못하는 점도 문제였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복지부는 응급실의 규모뿐만 아니라 병원의 규모까지 고려해 응급의료센터를 지정하고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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