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병원 인건비 규제, 수술할 의사가 병원에 없다

- 지역의료난 부추기고 있는 정부 규제... 국립대 인건비-정원 규제
- “낮은 연봉에도 사실상 365일 내내 근무·비상대기”... 국립대병원 ‘의사 구인난’

지난달 28일 한 지방 국립대병원의 흉부외과 진료실 중 한 곳은 텅 비어있다. 올 초까지 흉부외과 전문의 A씨가 진료를 보던 진료실인데, A씨는 이 국립대병원에서 유일하게 대동맥 박리와 같은 초응급 흉부외과 수술을 할 수 있는 개흉술 의사였다.

유일한만큼 업무 강도도 고됐다. 365일 24시간 반복되는 ‘온콜(On call, 비상대기)’ 근무를 견디다 못한 A씨는 결국 사직했다. 이 때문에 해당 병원은 권역 내 유일한 상급종합병원이고, 심뇌혈관 환자를 최종 책임지는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초응급 심장병 환자를 수술할 줄 아는 의사는 한 명도 남지 않았다.



병원은 A씨가 사직한 직후부터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채용 공고를 올려뒀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지원은커녕 문의 전화 한통도 오지 않고 있다. 이유는 민간병원보다 약 2억 원이 적게 책정된 연봉 때문인데, 이는 국립대병원이 현행법상으로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되어 소속 직원에게 줄 수 있는 급여가 총인건비로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밤새서 응급수술을 마친 의료진에게 성과급을 줄 수도 없고, 연봉 인상도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워라밸(일과 삶의 밸런스)’이라도 보장되어야 하는데 당직근무를 며칠 씩 연속되게 할만큼 이들에게 삶은 굉장히 좁은 영역이다. 당직의사만을 추가로 구하는 것도 의료진 수를 제한하는 ‘교원 정원’으로 제한돼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A씨가 그만둔 뒤로 반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인근에서 발생한 초응급 심장병 환자들은 수십에서 수백km를 이동해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있다.


▲ 출처 : 메디칼 업저버

◆ 국립대병원이 지역 의료를 이끌어야 한다

한국의 의료체계상 분원을 포함한 전국 17곳의 국립대병원들은 지역 의료의 구심점을 맡아줘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로 보건당국은 권역별로 리더 역할을 하는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해 관리하는데 16개 권역 중 14곳에서 국립대병원이 책임의료기관을 맡고 있다. 국립대병원들은 어린이병원, 외상센터 등 ‘돈은 안 되지만 꼭 필요한 필수의료’를 도맡아서 하는 의료기관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립대병원 1곳은 평균 5.4개의 공공전문진료센터를 운영 중이다.

정부차원에서 공공기관의 정원과 인건비를 규제하는 이유는 방만한 경영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재정 안정보다도 우선시 되는 것이 당연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국립대병원에도 이 같은 규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시선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또 다른 B국립대병원에는 ‘인터벤션(중재)’을 할 수 있는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1명에 불과하다. 인터벤션이란 피부를 절개하는 대신 가느다란 기구를 넣어 실시간으로 영상을 살펴보면서 치료하는 기술이다. 대개 심혈관질환이나 비뇨기질화 등의 치료에 활용된다. 전신마취 대신 부분마취를 하기 때문에 흉터와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다. 치료 후 회복 속도도 빠른 편이다.

하지만 이 시술이 가능한 의사가 1명밖에 없다 보니 해당 의사가 쉬는 날에는 환자를 받기가 어렵다. B국립대병원은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충원하기 위해 1년 넘게 채용공고를 냈다. 하지만 지원자가 원하는 만큼의 급여 수준을 맞춰주지 못해 채용에 실패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대부분의 영상의학과 의사들이 서울에 몰려 있다”며 “현재 국립대병원에 대한 각종 규제로 인해 민간 병원만큼 급여를 주기가 어려워 의료진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 2018년 기준 의료수익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 대부분의 병원이 50%에 육박한다.

◆ 과도한 규제에 ‘스타 의료진’은커녕 숫자도 못 채워

국립대병원이 의료진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으로 나뉜다.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에서는 기타공공기관도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의 경영과 예산 지침 등을 준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립대병원 역시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수준의 규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기타공공기관은 ‘총액 인건비 한도’를 준수해야 한다. 국립대병원 역시 이 한도 내에서 의료진 인건비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제한 없는 민간 병원과의 인력확보 경쟁에서 당연히 적은 급여를 제시할 수 밖에 없다. 윤경철 전남대병원 교수는 “실력있는 의사를 데려와서 병원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급여”라며 “이른바 ‘스타급 의료진’을 데려오려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쉽지 않은 것이 사살”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총인건비 인상률(올해 1.7%)도 제한되어 있다보니 인턴과 레지던트를 비롯해 전공의들의 당직비를 올려주는 것 조차 여의치 않다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수도권 대형병원이나 사립대 병원으로의 의료진 유출이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국립대병원 관계자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소위 ‘전공의 에이스’들이 점점 더 빠르게 병원을 이탈하고 있다”며 “정형외과에서 제일 수술을 잘하던 전공의가 개업을 하겠다고 하는데 거기다 대고 (돈도 적고 업무강도는 높은) 교수로 남으라고 제안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심지어는 교수직을 포기하고 ‘촉탁의 전환’을 요구하는 국립대병원 교수들도 높아지고 있다. 이는 촉탁의는 총액 인건비에서 제한 받지 않고, 1년 단위로 병원 측과 계약하는 ‘계약직’의 형태이기에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수술이나 외래진료는 보지 않고 병동에 상주하며 입원 환자들을 돌보는 일만 전담하는 입원전담 전문의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립대병원 교수라는 자리의 명예나 고용안정성으로는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않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라며 “개원하면 연봉의 2배 이상을 벌 수 있다보니 의료진들이 ‘가독들이 교수를 하는 것을 더 이상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 의사 외 다른 직종 의료진도 못늘려

국립대병원에 가해지는 규제는 인건비 제한 뿐만이 아니다. 특정 직종 의료진을 더 채용하고 싶어도 ‘정원 제한’이라는 걸림돌에 가로막힌다. 국립대병원은 직원 증원이 필요할 경우 기획재정부 심의 절차를 거쳐 확정된 인원만큼만 더 늘릴 수 있다. 이 역시 국립대병원이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 수준의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C국립대병원은 수술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방사선사가 현재 2명뿐이었다. 병원 측은 ‘정원을 2명 더 늘려달라’고 기재부에 요청하고 있지만 이를 최종적으론 거절당했다. 이 때문에 수술실에서 뼈와 관절을 실시간으로 투시하는 특수영상장치(C-Arm)를 다룰 방사선사가 부족해 방사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다른 직종의 의료진이 이를 대신 수행하고 있다.

C병원 관계자는 “부족한 인력으로 고생하는 방사선사들도 걱정되고, 결국 그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 다른 직종의 의료진이 업무를 너무 과하게 많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전북대병원 감염관리센터도 이 같은 정원 제한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북대병원은 지난해 5월 총 51개의 음압병상을 갖춘 감염관리센터를 열어 약 50여명의 간호사들이 투입돼 코로나19 중환자들을 돌봤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 기간동안 한시 배치된 탓에 올해 말에는 이 정원을 반납해야 한다.

전북대병원 관계자는 “입원치료가 필요한 코로나19 중환자는 전체 확잔자 수의 감소세에 비해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며 “다른 부서 간호사를 데려오려고 해도 그 곳도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 국립대병원이 취약계층을 위한 마지막 보루

인건비 제한과 정원 제한이라는 규제로 인해 생기는 여러 제약 때문에 국립대병원 의료진 사이에서는 ‘우리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민간 병원과 달리기 경쟁을 하는 셈’이라는 하소연마저 나온다.

물론 국립대병원이 공공기관 성격을 갖고 있다 보니 정부의 관리와 감독을 받을 필요는 있다. 의료 현장에서도 “국립대병원에 가해지는 모든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한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방만 경영 등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총인건비 인상률 등 획일화된 기준을 국립대병원에 적용하면 임금 격차에 따른 의료진 유출을 막기 어렵다. 정원 제한도 의료 현장의 수요를 탄력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좀 더 자율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대병원에 박힌 규제 때문에 병원 역량이 약화되면 결국 ‘서울의 큰 병원’으로 의료진과 환자가 쏠리는 현상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지역 주민들에게 남는다. 황종윤 강원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지역 국립대병원이 제 역할을 못 하면 결국 가장 크게 피해를 입는 건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이라며 “의료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있는 이들과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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