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인구감소·의료쏠림’ 삼중고에 줄지어 문닫는 지방병원들

- 무너져가는 지방 의료체계, 지방병원들 줄지어 파산... 올해만 벌써 6건
- 전국 의료법인의 30% 이상은 이미 한계치 도달... “파산 위험 높아”
- 민간 법인임에도 재산 매각시 시·도지사의 허가 받아야하는 제도도 개정해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인구와 수도권 의료쏠림 현상으로 고통받던 지방병원들에겐 마치 KO펀치나 다름이 없었다. 이에 지방 의료의 한 축을 전담하면서도 만성적인 경영난에 시달리던 지방법인들이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되며 줄지어 파산하고 있는 모양새다. 부실 의료법인의 자산 처분 등도 자구책에 막혀있는 상태라 파산하는 병원은 더욱 많아질 전망이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법인이 파산해 법원으로부터 파산을 선고받은 건수는 모두 8건으로 전년도(2021년, 2건)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2019년(2건), 2020년(1건)과 비교해도 확연히 많아진 수치다. 올해에도 6월까지 이미 파산건수가 6건이 접수되며 지난해를 훌쩍 넘을 가능성이 높다.

지방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며 지역 내 환자들을 돌보던 병원들이 파산한다는 것은 지역 의료에 큰 위기를 가져온다. 경남 하동군 내에서 유일하게 응급실을 운영하던 애민의료재단(새하동병원)은 2018년 개원했으나 환자 감소 등의 영향으로 4년 만인 지난해 1월 파산 선고를 받았다. 이에 하동군에서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은 없어졌다. 40병상 규모의 김천직지요양병원을 운영한 금웅의료재단도 경영난을 이유로 올 4월 파산이 확정됐다.

도산 위기에 처해진 병원들에 자구책 마련도 현행 법률상으로 어려움이 있다. 의료법은 의료법인이 재산을 처분하기 위해선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의료 공백을 우려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부실 의료법인들의 자산 매각을 쉽게 허가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병원 측에서 “파산까지 내몰리는 일을 막기 위해선 의료법인 인수합병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 전국 병원의 3곳 중 1곳은 ‘파산 위기’... 수도권 의료 쏠림에 극심해지는 경영난

한 때 수많은 환자들을 받았던 인천 부평동의 소망병원에는 이제 적막만이 남았다. 쇠사슬로 묶인 정문에는 법원의 강제 집행 안내문이 붙어있고, 그 아래 바닥에는 각종 고지서가 정돈되지 않은 채 놓여있다. 유리문 안으로 보이는 내부에는 의료기기들이 여전히 보이지만 이 병원은 지난달 인천지방법원에서 파산 선고를 받았다.

2019년 법인 설립자인 병원이 의료법 위반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것에 이어 코로나19 사태로 요양원 입소자까지 확 줄어들며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 재단을 대리하고 있는 변호사는 “법인의 자각을 매각해 채무를 변제하려 했으나 지방자치단체가 허락하지 않아 최후 수단인 파산절차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전국의 의료법인 파산 선고가 전년 대비 4배 급증하는 등 의료법인의 줄도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의료서비스 수요가 몰리는 기조가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는 가운데 포화상태에 이른 지역 중소 의료법인의 적자가 누적된 영향이 크다. 여기에 코로나19 대유행로 환자가 거의 끊긴 것은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중소 의료법인 가운데 파산 신청을 고려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 단순히 낙후지역만 문제 아니다... 부산시 의료법인 32%가 ‘적자 운영’ 중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의료법인 1322개이며 이중 42.4%가 병상 수 30~100개 미만의 요양병원, 병원이 19.8%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시와 6대 광역시를 제외한 지방 시·군에 64%가 분포되어 있다.

지방 의료법인이 체감하는 경영난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첨단 의료시설과 유명 의료진을 앞세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환자들이 쏠리는 기조는 하루가 다르게 극심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중소병원과 요양원을 찾는 환자들이 크게 줄었다. 의료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은 2018년 312개에서 지난해 262개로, 요양병원은 639개에서 561개로 줄었다.

지난해 파산 선고를 받은 8곳 중에서 3곳이 위치한 부산의 경우 의료법인 부실화가 극심한 지역으로 꼽힌다.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 소재 의료법인 104개 중 적자상태로 운영되고 있는 법인이 2021년 25개에서 지난해 34개로 늘었고, 이들중 자본 잠식에 빠져있는 법인은 22개에 이르렀다. 의료계 관계자는 “1300여개 가운데 30%는 이미 ‘한계’에 도달한 의료법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의료법인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전국에서 4건의 의료법인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지난 지난달에는 경남 거창에서 서경병원을 운영해온 아림의료재단이 창원지방법원에서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다. 경남 함양·합천 등의 거점병원 역할을 하던 이 병원은 농촌 인구 감소로 수년째 적자가 누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 민간임에도 자산매각 시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의료법인

부실 의료법인의 발목을 잡는 낡은 의료법 제도도 파산이 늘어나게 되는 요인을 꼽힌다. 의료법 제48조 제3항을 보면 “의료법인이 재산을 처분하거나 정관을 변경하려면 시·도지사의 허가를 반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민간 자본으로 운영되는 법인임에도 자산을 매각해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선 주무관청이나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아야지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의료계 관계자들은 허가가 나는 사례는 드물다고 토로하고 있다. 공공성을 고려해야 하는 지자체 입장에서 의료법인의 자산을 매각하는 것을 허가하거나 법인 설립을 취소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부분의 부실 의료법인은 겹겹이 쌓이는 적자에도 볍원에서 파산 선고 또는 회생 개시 결정을 받을 때까지 한계 상황인 병원을 그저 운영하는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이에 병원계에서는 과거부터 “인수합병 제도 마련 등 부실 의료법인의 퇴로를 확보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의료 영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의해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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