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비의료인이 세웠다고 무조권 사무장병원? 경계해야” 구체적 기준 제시

- ‘방사선사 출신’ 비의료인, 의료법인 설립해 이사장 취임... 137억 원 환수 위기 면할까
- “개인적 영리 추구 위한 형식적 의료법인 개설 아닌 실질적 의료기관 운영” 집유 판결 파기
- 실체가 없는 의료법인을 설립해 개설 운영 수단으로 악용했는지, 공공성 비영리성 일탈 사정 인정돼야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을 만들어 운영하는 행태를 무조건적으로 ‘사무장병원’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사무장병원’은 의료법인을 외형상의 형태만 갖춘 채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점이 인정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구체적인 기준도 제시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7일 비의료인임에도 의료법인을 설립해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는 등의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원심의 판결을 파기하고 파기 환송했다.

A씨는 비의료인 신분이며, 지인과 1억 5000만 원씩 총 3억 원을 기부한 것으로 가장해 의료법인을 설립해 B의료법인을 운영해왔다. 의료법인의 이사와 감사는 A씨의 가족이나 지인으로 구성했고 이사회 의사록은 안건 내용과 출석 이사 전원의 찬성으로 가결했다는 내용으로만 기재했다.

이사장 신분으로 의료법인에서 근무한 A씨는 2014년 기준으로 월 1300만 원씩의 월급을 수령했고, 그의 아내도 이사로 선임되어 월 700~800만 원의 월급을 수령받았다. A씨는 이전에 방사선사로 병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경력이 있고, 병원 사무장으로 일하며 의사에게 의원을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있다. 그는 의료법인을 설립해 이사장을 하기 전까지는 연봉이 3000만 원에 불과했다.

A씨가 설립한 B의료법인은 2009년 4월 29일부터 2015년 3월 24일까지 270회에 걸쳐 137억 원에 달하는 요양급여비를 수령했다. 검찰은 의료법인 이사장인 A씨에 대해 사기죄, 의료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기소했다.

이에 하급심 법원은 A씨가 형식적으로 의료법인을 설립하고 영리적인 목적으로 요양 병원을 운영했다는 판단 하에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이라는 실형을 선고했다.

이에 A씨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의료법인을 개설했고, 의료법인 운영과 관련한 주요사항은 이사회에서 결정했다”라며 “법인의 운영으로 개인적인 이득은 취하지 않았고, 개인적인 재산으로 채무 변제 등 의료법인을 사유화하지 않았다”고 항소했다.

이어 “개인적 영리 추구를 위해 형식적으로 의료법인을 개설한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의료법인을 개설해 운영했다”라며 “의료법을 위반하지 않았고 요양급여비도 편취하지 않음. 형식적으로 가장해 의료법인을 개설했다고 하더라도 의료법 위반의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의료법인을 운영하면서 급여 청구해서 받았다. 의료법인으로써 실질을 갖추고 있고 의료법 등 관련 법령을 준수해 운영했다”라고 호소했다.

가족이나 지인을 이사로 선임한 부분에 대해서도 의료법인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이사들에게 과다한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은 원심과 달랐다. 14명의 대법관 중 8명이 파기환송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대법원은 그동안 사무장병원의 정의에 대해 ‘비의료인이 그 의료기관의 시설 및 인력의 충원 관리, 개설신고,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그 운영성과의 귀속 등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에 자금을 출연하거나 의료법인 이사 등 임원의 지위에서 의료기관 개설 운영에 관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어 기존 ‘주도성 법리’를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이 실질적으로 비의료인에 의해 개설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에 그대로 적용하면 우려할 점이 있다고 봤다. 비의료인에게 허용된 행위와 허용되지 않은 행위의 경계가 불투명해 죄형법정주의 원칙 중에서도 특히 명확성의 원칙을 해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의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 운영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는 점을 기본으로 비의료인이 외형상 형태만 갖추고 있는 의료법인을 탈법적 수단으로 악용해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 운영으로 가정했다는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법원은 비의료인이 설립한 의료법인을 통해 병원을 개설했을 때 사무장병원인지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2가지 제시했다.

먼저 비의료인이 실질적으로 재산출연이 이뤄지지 않아 실체가 인정되지 않는 의료법인을 의료기관 개설 운영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 또,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해 의료법인의 공공성, 비영리성을 일탈했다는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이 개설자격 위반 판단에 기존 주도성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려면 비의료인에게 허용되는 행위와 허용되지 않는 행위의 구별이 불명확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할 수 있다”며 “의료법은 의료법인에 대해 재산을 출연할 수 있는 사람을 의료인으로 한정하거나 비의료인이 출연할 수 있는 재산규모나 범위를 제한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임원의 지위에서 의료기관 개설 운영에 주도적으로 관려하는 것은 의료법인의 본질적인 특성에 기초한 것”이라며 “의료법에 근거해 비의료인에 허용된 행위이다. 비의료인의 주도적 재산출연이나 주도적 관여 사정만을근거로 비의료인이 실질적으로 의료기관을 개설 운영했다고 판단하려면 허용되는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 구별이 불명확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의 운영 수익을 부당하게 유출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재산이 출연되지 않아 의료기관을 개설 운영할 수 없는 의료법인을 의료기관 개설을 위해 악용하거나 의료법인의 공공성, 비영리성을 일탈하는 행위는 철저히 금지외고 처벌대상이 된다”라고 강조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법인은 있는데 기본 재산이 없어 아예 실체가 없다면 개인 사무장병원이겠지만 이번 사건처럼 비의료인이 개인 재산을 출연해 의료법인을 설립하고 그 명의로 의료기관을 운영한다면 사무장병원으로 볼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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