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응급실서 대동맥박리 진단 못한 응급의학과 전공의, 실형 확정”

- 흉부 CT 추가검사 안해 인지기능 소실, 뇌병변 장애 입어... 의료진 형사고발 당해
- 원심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선고... 대법원서 판결 확정
- 의료계 “잠재적 살인자된 응급의학의사, 이탈 초래하게 될 것” 우려

1심과 2심에서 응급실로 실려온 환자의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해 실형을 선고받았던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결국 대법원이 형을 확정했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이번 판결이 과거 ‘이대목동사건’처럼 향후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붕괴와 응급의료 종사자들의 이탈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인 14일 대법원은 업무상과실치사상,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당시 응급의학과 전공의였던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내려진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A씨는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을 하던 시절인 지난 2014년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중 안면부 감각 이상과 식은땀 구토와 함게 흉부 통증을 호소하며 내원한 60대 환자 B씨를 급히 진료했다.

A씨는 문진을 통해 B씨가 대동맥박리 호발연령에 속하고, 뇌경색 진단 경험과 고혈압 병력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A씨는 흉부 통증을 호소하던 B씨에게 심전도 및 심근효소 검사 등을 실시했으나 별다른 이상 소견이 확인되지 않아 급성 위염에 의한 통증으로 진단했다.

하지만 검사 1시간이 지난 무렵인 새벽 3시 30분경 B씨의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이 병원 간호사였던 보호자 C씨가 심장내과 의사 진찰을 요청했으나 A씨는 이를 거절하고 진통제를 투여했다. 대동맥박리 등 확인을 위한 흉부 CT 검사는 시행되지 않았다.

진통제를 투여 받은 B씨의 증상이 다소 나아지자 A씨는 별다른 조치 없이 B씨를 퇴원 조치했다, B씨의 응급실 퇴원 계획에는 ‘경증의 의학적 문제만 있는 환자(응급의료센터 진료 후 퇴원에 어려움이 예상되지 않는 환자), 치료 후 상태 호전 시 귀가’로 기록했다.

하지만 같은 날 오전 10시경 B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다시 실려왔고 대동리박리 진행으로 인한 양측성 다발성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결국 B씨는 인지기능 소실과 사지마비의 뇌병변 장애를 입었다.

1심 재판부는 이에 A씨에게 업무과실치상과 의료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 유예를 선고 받았으며 A씨는 이에 항소했으나 2심과 대법원에서 결국 형이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B씨가 응급실 내원 당시 흉부 CT 검사 등 추가 진단검사를 통해 수술적 치료가 이뤄졌다면 뇌병변 장애를 입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A씨가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또, A씨가 흉부 CT 촬영을 권유했으나 B씨의 보호자가 이를 거절했다는 내용으로 의무기록을 허위로 작성한 것도 의료법 위반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B씨는 가슴 통증을 호소하면서 오심이나 식은땀을 흘리는 증상을 보이면서 대동맥박리의 위험인자인 고혈압 병력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으며 심비대 증상이 있었으므로 A씨는 반드시 흉부 CT 검사 등 추가적인 진단 검사를 할 필요가 있었음에도 이를 시행하지 않아 대동맥박리의 조기 진단 기회를 상실케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초기 빠른 수술 시행은 환자 예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B씨가 이 병원에서 대동맥박리를 진단받고 바로 적절한 수술 등의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현재와 같은 뇌병변 장애 상태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당시 B씨의 대동맥박리 수술을 담당한 타 병원 의사는 수술 전 심한 저혈압(쇼크)과 심장마비가 저산소성 뇌손상의 주요 원인으로, 처음 내원한 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했다면 이후 의식저하 저혈압, 심장마비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또, 재판부는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한 것도 의료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A씨가 B씨의 경과 기록을 작성한 시점은 B씨가 응급실을 퇴원한지 13일이 지난 9월 24일 작성됐다. A씨는 ‘미비기록 작성’이라고 적으며 간헐적 통증으로 흉부 CT 검사에 대해 보호자에게 설명했다는 내용을 기록했다. 하지만 진료기록부에 기재된 흉부 CT 검사 시행여부에 대한 A씨의 진술과 보호자 C씨의 진술은 엇갈렸다.

재판부는 C씨가 해당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로 상당한 의학적 지식이 있었고, B씨와 함께 응급실에 내웠했을 당시 고혈압 병력 등으로 A씨에게 먼저 심장내과 협진을 요청한 점 등을 흉부 CT 검사를 권유받았다면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더욱 재판부가 A씨의 주장대로 흉부 CT 검사를 보호자에게 2차례에 걸쳐 권유한 것이 사실이라면 B씨를 급성 위염이 아닌 다른 중한 질환으로 의심했다는 의미로 봐야하지만 퇴원 계획서에는 ‘경증의 의학적 문제만 있는 환자, 치료 후 상태 호전 시 귀가’라고만 기재했다는 부분을 토대로 A씨가 경과 기록을 허위로 작성했을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재판부는 “A씨가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으로 피해자에게 뇌병변 장애라는 중한 상해가 발생했다. 또 자신의 업무상 과실을 숨기기 위해 B씨에 대한 진료기록부에 허위 사실을 기재한 것으로 보이므로 그 죄질이 심히 불량하다”며 양형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직후 즉각 성명서를 통해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라며 “매일 환자들의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현장에서 노력하는 전국의 모든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모두 잠재적 살인자이니 지금 당장 우리 모두를 처벌하라”고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

이어 “응급실은 응급처치를 시행하는 곳이지 대동맥박리와 같이 진단하기 어려운 병을 100% 완벽하게 찾아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미리 검사했으면 진단할 수 있었다는 논리는 응급실 현장을 전혀 모르는 사법부가 결과가 나쁘면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잘못 투사한 예단일 뿐이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응급실은 진단하지 못해도 치료부터 하는 곳이고 외래나 후속진료로 환자들을 연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다. 이 판결대로라면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료진은 아무리 열심히 환자를 돌봐도 결과가 나빠지면 무조건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며 “향후 연간 100만 명이 넘는 흉부관련 증상을 보이는 응급환자들은 무조건 CT 촬영을 해야할 것이며 그 결과 진료비가 폭증하거나 대동맥박리 수술이 불가능한 병원들은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환자를 거부해야 할 것이다. 상급 병원의 과밀화 및 방어진료가 더욱 극심해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의사회는 법으로 의학적 진단기준을 정하는 사례는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다며 향후 모든 책임은 사법부에 있다고도 강조했다.

의사회는 "단지 진단검사를 시행하지 않았다고 민사소송에서 배상을 받았음에도 다시 형사소송으로 전공의 1년차를 10년간 소송의 굴레를 씌우고 결국 면허를 취소하게 만드는 것이 지금 이 나라의 사법정의라고 주장한다. 생명을 살리는 보람이 아닌 진료 중 사망하면 감옥에 가는 전공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료계는 그간 필수의료 의사 부족 사태가 의료 사고에 대한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이 크다고 설명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완벽하게 환자를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사에게 형사처벌을 한다면 우리나라 필수의료는 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의사회는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는 직업으로, 절대 완벽할 수 없고 특히 응급의학과는 응급상황에서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매일 다루고 있다. 의도를 가지고 타인을 해치는 형사범죄와 의료행위 중 발생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동일하게 취급되는 현재의 상황이 너무나도 개탄스럽다"며 "과도한 법적 책임과 무리한 판결이 우리나라의 필수의료를 죽이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둔 채 과연 어떻게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것인지 그 진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의사회는 사법부와 정부당국이 진정으로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싶다면 응급의료행위의 적절성은 법원의 판단이 아닌 전문가적 견해를 바탕으로 판단돼야 하며, 응급의료 제공 시 형사책임 면책을 위한 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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