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외상센터, 전담의사 이탈은 점점 더 가속화 “비전 없다”

- 원광대·목포한국·원주세브란스, 전문의 절반 이상 사직 표명 “잡을 여건도, 명분도 없다”
- 급여·고용성 일반병원 이직 요인... “상급병원·의료질 평가 항목 추가 시급”

정부가 예측 가능 사망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겠다며 야심차게 시행했던 권역외상센터 사업이 외상 전문의들의 대거 이탈로 인해 최대 위기에 몰리고 있다. 권역외상센터 간의 의사인력 이동을 넘어 대학병원과 중소병원으로 봉직 행렬이 이어지면서 외상체계 자체의 붕괴가 머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원광대병원과 안동병원, 목포한국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등이 권역외상센터 전담전문의들의 연이은 사직행렬로 인해 외상치료에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2년 외상환자의 예방가능 사망률을 35.2%(2010년 기준)에서 선진국 수준인 20% 미만(2025년 목표)까지 낮추겠다며 외상환자 24시간, 365일 집중치료를 제공하는 권역외상센터 사업을 시작했다. 첫 해, 가천대 길병원과 경북대병원, 단국대병원, 목포한국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등 5개소 지정을 시작으로 현재는 총 17개의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되면 복지부로부터 외상전용 중환자실과 수술실, 입원병상 등의 시설장비 설치비 목적으로 최대 80억 원 지원받을 수 있고, 외상전담전문의 인건비도 매년 7억 원~27억 원(최대 23명)을 지원받게 된다. 복지부가 의사 인건비까지 지원하는 유일한 사업이기도 하다.

시행 12년차가 지난 현재는 ‘선진국 수준의 예측가능 사망률’까지 낮췄을까. 복지부는 지난해 3월, 보도자료를 통해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이 2010년 35.2%에서 2017년 19.9%를 거쳐 2019년 15,7%까지 낮아졌다고 밝혔다.



◆ 원광대·안동병원·목포한국·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외상 전담의 겨우 2~4명

그렇다면 2023년 지금도 낮아지고 있을까. 외상외과 전문의들은 이에 코웃음을 치고 있다. 외상환자 생명을 담당하는 외상 전담전문의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상황속에서 예방가능한 사망률 지속 개선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권역외상센터는 외과와 흉부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응급의학과, 영상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등의 외상외과 세부전문의를 최소 1명 이상 배치해야 한다. 즉 24시간과 365일 외상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준비와 당직을 감안해 최소 8명 이상의 외상전담 전문의가 필요한 셈이다.

사업 시행 초기에는 권역외상센터별 외상 전담전문의를 최소 8~10명을 유지했었다. 일부에서는 20명이 넘기도 했었다. 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원광대병원과 안동병원, 목포한국,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의 경우 외상 전담전문의가 2~4명 수준에 불과하다. 그 많던 외상외과 전문의들은 외상센터가 아닌 일반 병원으로 향했다.

◆ 외상센터 급여·고용 안정성↓ “한 달에 당직 15~20일, 그저 버틸 뿐”

지방에 위치한 한 권역외상센터 외상전문의는 “지정 초기에 비하면 외상외과 전문의 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40대를 넘어선 후배 의사들이 처우와 근무환경이 좋은 일반 병원으로 향하기 위해 사직서를 제출하지만 잡을 수 있는 명분이 없다”며 “남아있는 의사들로 버티고 있다. 한명 당 한달 당직은 15~20일에 달한다. 이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왜 권역외상센터의 의사들은 일반 병원으로 향하게 될까?

외상외과 전문의들은 처우와 고용 안정성, 그리고 사라져버린 비전을 지적했다. 복지부는 외상센터 전담전문의 1명 당 연간 1억 4,400만 원의 인건비를 지원한다. 당직비는 해당 별도로 지원한다.

권역외상센터를 운영 중인 병원에서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다 합쳐도 평균 2억 원(세전) 미만의 연봉을 받는다. 의사 인력난을 겪고 있는 지방 병원의 경우 외과 전문의 연봉 3억 원(세후)에도 채용이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다.

외상환자를 24시간, 365일 대기·치료하면서 받는 급여와 일반 병원엣 진료와 수술을 마치고 귀가하는 의사의 급여가 2배 가까이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 권역외상센터 병원장은 “복지부의 인건비 지원 외의 별도의 인센티브도 지급하고 있지만 일반 병원 급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다른 외상센터에서 외상외과 의사를 잡기 위해 급여를 올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 정책 없이는 외상센터를 지탱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고용 안정성도 이탈 요인이다. 대학병원 중심으로 지정된 권역외상센터 외상 전담전문의 대부분이 진료교수인 계약직이다. 매년 계약을 갱신하면서 밤새 대기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는 지적이다. 40대에서 50대로 나이가 들면서 불안정한 고용 속에 수시 당직에 따른 체력적 한계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권역외상센터는 병원 내 '미운오리'로 취급받고 있다. 다른 진료과 입장에서 병원 경영개선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외상환자가 많은 것도 아닌데 자리만 지키면서 복지부 인건비 지원을 받는 것이 탐탁치 않게 보일 수 있다.

외상외과 전문의들은 버텨온 것은 권역외상센터 성장 가능성이다. 그러나 10년 넘도록 외상 환자 치료 수가와 제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에도, 의료질평가 항목에도 외상치료 관련 내용은 빠져 있다. 여기에 복지부가 나서 외상외과 전문의 이직을 부추기는 시그널을 보냈다. 지난 1월말 발표된 필수의료 지원 대책에 포함된 응급의료 개편 방안이 바로 그것.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중증응급의료센터로 명칭을 바꾸고 심혈관 질환과 함께 '중증외상'을 최적치료로 명시했다. 자칫, 중증응급의료센터에서 외상을 전담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다. 이미 수도권 대학병원은 하반기 중증응급의료센터 시범사업 지정을 위해 외상외과 전문의 확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중증응급의료센터에 중증외상 명시... 외과의사들 “교수직 제안 온다면 거절 어려워”

이에 지방 권역외상센터를 지키고 있는 외상 전담전문의들에게 이직 제안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한 지방 권역외상센터의 전담전문의는 “처우와 고용안정성, 비전까지 모두 불만족스러운 것이 사실이기에 서울권 대학병원에서 교수직 제안이 오면 마다하기는 어렵다”며 “아이는 크고 있고, 아내는 더 좋은 조건과 환경을 원한다. 나 스스로도 지쳐가는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담전문의 인건비를 수시 점검하는 복지부는 권역외상센터 의사 이탈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뾰족한 대책은 없다. 응급의료과 담당 공무원은 "많은 권역외상센터 전담전문의 수가 대폭 줄어든 것을 알고 있다. 센터별 간담회를 마련해 현장 목소리를 들어봐야 할 것 겉다"며 "아직까지 특별한 대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외상외과 전문의들의 수도권 대학병원 쏠림 우려와 관련 "외상센터 전담 전문의들이 중증응급의료센터로 이직할 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현 권역응급의료센터 역할과 기능에 중증외상 항목도 들어있다. 권역외상센터가 서울권 등 전국을 모두 커버하기 어려운 만큼 외상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 외상의사의 이탈 방관하는 복지부... 전문의들 “일부 아닌 전체 외상센터 구조의 문제”

무너져가는 권역외상센터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외상 전문가들은 복지부 관심과 지원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병원 외상외과 교수는 "외상센터는 전담전문의 등 의료진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한 명이 이탈하면 팀워크는 깨지고, 남아 있는 의사들의 업무 강도는 세질 수밖에 없다"며 "건물과 시설, 인건비 지원으로 복지부 할 일이 끝난 게 아니다. 많은 전문의들이 왜 이직하는지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일부가 아닌 전체 외상센터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외상학회 박찬용 이사장(서울대병원 교수)은 "권역외상센터는 이미 무너지고 있다. 외상치료 핵심인 외상외과 전문의들이 외상센터를 떠나고 있다. 필수의료 실무 논의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외상 분야는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과 의료질평가 항목에 외상을 추가해야 외상센터와 대학병원에서 외상외과 전담전문의 확보에 주력할 것"이라면서 "진료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면서 언제 올지 모르는 외상환자를 수술하는 낭만닥터 김사부는 드라마일 뿐 현실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2022년말 기준, 전국 외상외과 세부전문의는 2010년 86명으로 시작해 2013년 11명, 2015년 40명, 2019년 18명, 2021년 15명, 2022년 24명 등 총 335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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