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간호법이 오는 13일 국회 표결에 거쳐 통과될 것이 유력한 가운데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판도가 속속히 변하고 있다. 여당의 반대에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강력히 추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되었지만 결국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에 의해 국회로 되돌아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단호한 결정에 민주당이 여당의 반대에도 강력 추진하고 있는 간호법 등 의료현안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거부권 행사에 정치권과 의료계 모두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는 여당인 국민의힘 의사와 상관없이 민주당 단독으로도 과반 이상의 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압도적인 갑의 위치에 있지만, 법안이 통과되어 다시 국회에서 재의결될 때는 갑을 관계가 완전히 뒤집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재의 요구권이 행사된 법안은 다시 국회로 돌아와 재표결을 거치게 되고, 이 때도 통과된다면 그대로 법안이 확정된다. 다만, 재의결 시에는 재적 의원의 과반이 출석하고,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국민의힘이 3분의 1이상의 의석(115석)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국민의힘이 갑에 위치에 오르게 된다.

이런 갑을관계의 역전에 양곡관리법도 원안 그대로 재의결될 가능성이 사실상 적다는 전망이 높다. 이에 국민의힘을 설득하기 위해 원안을 수정하여 협의를 통해 대안 마련에 나설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간호법이나 방송법 등 민주당 추진의 다른 법안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높은 만큼 통과를 위해선 협의를 통한 대안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현재까지의 대한간호협회 등 간호법 추진 단체들은 대안 마련에 대한 논의를 극도로 거부하고 있다. 지난 3일에도 복지부의 협의 요청을 갑작스럽게 거절한 바 있다. 이에 간협은 “충분한 합의를 거쳐 법안이 상정되었기 때문에 추가 협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국회 상황에 정통한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간협이 대안 논의에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법안의 향방이 결정될 것 같다"며 "양곡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까지 실제로 행사됐고 이후 간호법과 방송법 등에 대해서도 거부권이 언급되는 만큼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당 단독으로 법을 통과시키긴 야당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간협의 ‘대안 마련을 위한 추가 협의 거부’라는 굳건한 입장에 변화가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간호법이 대안 논의 합의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법안은 13일 통과가 유력한 상태이다. 민주당 측이 더는 시간을 끌지 않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 간호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본회의에 직회부 시킨 간호법, 의사면허취소법, 방송법 등을 차례로 본회의를 통과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대안 논의가 불발되더라도 법안 통과는 13일에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간호법 통과가 더 미뤄지면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된 다른 법안들과 일정이 겹치게 된다"고 말했다.

만일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해당 법안들이 13일 한꺼번에 통과된다면, 대통령 역시 해당 법안들에 대해 한번에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할 가능성이 높아 이에 따른 부담이 큰 상황이다. 이에 지금까지 추가 협의를 거부해오던 간호단체와 민주당 측도 입장이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면서 관련 단체들의 신경전도 격렬해지는 추세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전회원 총파업 찬반 투표를 앞당겨 실시할 것이라며 투쟁 수위를 높이는가 하면, 간호협회는 3일부터 매일 국민의힘 중앙 당사와 국회 앞에서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5일엔 간호사 등 2만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궐기대회도 개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