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서 조력사망에 동행한 유가족들, 자살방조죄로 처벌 받을까?

- “법 적용이 가능은 하지만 윤리적으로 처벌이 쉽지는 않다”
- “고의성·사회 정의 해친다 보기는 어려워”... “사법부의 명확한 판단 나와야”

임종을 앞두고 편한 죽음을 맞기 위해 조력자살을 결심하고, 이를 위해 스위스로 출국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자신의 의지로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결졍이지만, 이들에게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바로 동행한 가족들이 자살방조죄(형법 제252조)로 처벌받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다. 이 때문에 본인의 마지막 길임에도 ‘가족 모르게’ 떠나는 이들도 있다.



15일까지 스위스에서 조력자살로 생을 마무리한 한국인은 1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동행인이 한국으로 돌아온 뒤 조력자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경찰 조사를 받은 사례는 있지만 검찰 단계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스위스 조력자살에 가족이나 지인이 동행했을 경우 이들을 자살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전문가 대부분은 현행법상 자살방조죄의 적용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동행한 가족이나 지인을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고 봤다. 자살방조의 고의성이 있거나 사회 정의를 해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전문가 대부분은 조력자살이 합법화된 나라에 가서 이를 시행했더라도 동행한 한국인은 자살방조죄가 적용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형법은 속지주의뿐만 아니라 속인주의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대마초나 마리화나 등 마약이 허용된 국가에서 마약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이를 처벌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자살방조죄의 관점에서 관건은 어디까지 ‘방조’로 볼 것이냐는 질문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방조에는 ‘총·칼 등 자살 도구를 빌려주거나 이를 조언·격려 하는 등 적극적·물질적·정신적 방법’을 모두 포함한다.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가족이 조력자살 임종에 동행하는 것 조차 자살방조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존엄사를 위해 본인이 스스로 택한 임종 행위를 단순 자살과 동등하게 간주해 형법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올바르냐는 지적이 있다. 한 변호사는 “현행법상 동행도 자살방조죄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올 수 있지만, 이를 존엄사에 동행한 가족에게 적용하려는 것은 생명권의 주체인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므로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어느정도의 적극성을 띠느냐에 따라 달라질 여지는 있지만 단순히 동행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소와 처벌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연명의료결정제도가 마련되는 것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2008년 ‘김 할머니 사건’에서 김 할머니 측의 법률대리인을 맡기도 했던 신현호 변호사는 “죄가 되려면 고의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입증하기가 어렵고, 설령 자살방조가 인정된다고 해도 사회 상규에서 어긋나지 않는 행위는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해 처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위스 조력자살과 관련해 기소된 사례가 없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족이나 친구가 따라간 것만으로는 이들이 의사의 조력자살 ‘방조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검찰 역시 이를 자살방조죄로 기소했을 때 국가가 얻을 공공의 선이 과연 무엇인가를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존엄사의 한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는 조력자살에 대해 법이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우려를 아예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남준희 변호사는 “현 상태에서 기소가 되면 오히려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위헌법률 심판을 통해 자살방조죄 자체가 폐지될 가능성도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조력사망을 허용하도록 현행 존엄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와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조력자살을 금지하고 있던 법령이 차례로 위헌판결을 받으면서 법이 개정되고 있는 추세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한 외국인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독일은 이를 막기 위해 2015년 자살관여죄를 신설했으나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2020년 이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승준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유럽 각국의 헌법재판소에서 자기결정권으로 인정되고 있으므로 우리도 헌법재판소에서 먼저 나서면 좋을 것 같다”면서 “법원이나 헌재의 판단을 통해 사회적 논의가 시작될 필요는 분명히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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