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사제’ 만지작거리는 정부, 반발하는 의료계... 이유는?

- 당정 지역의사 유입 대책으로 일본처럼 지역의사제 10년 의무 근무안 검토하는 정부
- 의료계 “일본에서 이미 실패한 정책, 24%만 의료취약지에서 근무해”
- “환자를 위해 마련된 정책 아닌 표심만을 고려한 정치적 행동에 불과”

정부와 정치권이 의과대학 정원확대에 속도를 내자 의료계가 단순히 숫자만 늘려서는 의료 쏠림 현상을 가속화시킬 뿐 정말 의사가 필요한 필수·지역의료로 향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역의사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과거 정부가 2020년 의대 정원을 추진하며 지역 의사 유입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됐었다.



이 제도는 지역에서 근무할 의사를 기존의 의대 인원과 별개로 뽑아 일정 기간을 지정된 곳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다. 관련 입법이나 법적근거가 추가로 계속 마련되면서 의대 증원분의 70~80%를 지역 의사로 양성하거나 공공의대 및 의전원을 설립해 고교·대학 졸업생을 60% 이상 선발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구체화 됐다.

이렇게 선발된 의대생들은 의사 면허를 취득할 때부터 10년 간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복우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시 면허가 취소된다. 또 이런 사유로 취소된 면허는 남은 의무복무기간이 끝나기 전까진 재교부되지 않는다.

얼핏보면 지역으로의 자연스러운 의사 유입을 기대할 법도 하지만 처음 제시된 2020년이나 지금이나 의료계는 여전히 이들이 필수·지역의료로 유입되지 않을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이미 일본에서 실패한 정책이고, 이를 훌륭히 보완했거나 문제점을 수정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앞서 우리보다 지역의사제를 먼저 도입했던 일본의 ‘지역정원제도’가 어떤 상황을 겪었길래 의료계가 이렇게 우려하는 것일까.

지역정원제도가 도입된 배경에는 우리와 유사한 배경이 먼저 일본에 펼쳐지며 필요성이 높아졌다. 일본은 현재 우리나라처럼 수십년간 이어온 저출산 기조와 평균수명의 상승으로 2006년 초고령사회에 집입했다. 여기에 더해 수련의가 도시 지역으로 집중되며 생긴 의료의 격차가 나날이 커졌고, 지역별 수련병원 정원 재검토 및 수련활성화 대책이 시급해졌다.

이를 위해 각 대학들이 입학부 입학정원 범위를 설정하고, 특정 지역에서 일정기간을 근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학자금을 대여해주는 지역정원제도가 탄생하게 됐다. 만약 졸업 이후 의무이행 기간을 준수한다면 학자금 반환을 면제해주는 방식이었다. 이같은 방식으로 일본 77개 의대 중 68개 대학이 지역정원제도를 도입했고, 이중 65개 대학은 학자금 지원까지 이뤄졌다.

해당 제도는 큰 틀로는 학자금을 지원하는 유형과 그렇지 않은 유형으로 나뉘었고, 별도의 정원으로 입학해 지역정원으로 선발할지, 입학 후 지역정원으로 선별할지 등 방식의 차이도 있었다. 졸업 후 의무이행 기간이 있는 유형과 그렇지 않은 유형 등 다양하게 존재했다.

유형별 정원을 보면 별도의 정원으로 지역정원으로 선발되고, 졸업 이후 의무 이행하도록 하는 유형의 지역정원은 59~60%순이다. 학자금이 지원되든 그렇지 않든 정원 자체에는 큰 차이가 없다.

별도의 정원 없이 지역정원으로 선발되어 졸업 이후 의무 이행이 부여되는 정원의 비율은 17% 정도이다. 이 경우 학자금 지원이 이뤄진다.

반면 학자금 지원과 의무이행 기간 등 모두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별도 정원으로 입학한 모든 학생이 지역정원으로 선발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졸업 후 현내 근무’, ‘현내 의료 공헌’ 등 포괄적인 문장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렇게 지원된 학자금은 6년동안 약 1000만~1500만 엔으로 2006년 당시 한화로 1억 1000만~1억 7000만 원에 달했다. 학자금 반환면제가 되는 유형의 의무기간들은 대학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 9년이었으며, 그렇지 않은 경은 유형은 임상 연수를 포함해 2~3년이었다.

또 선발하는 과정에서 추천이나 면접 외에도 자치단체의 사전면접, 지역의료기관의 체험실습 등 대학마다 특색있는 방법으로 선발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역정원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 10년 만에 의학부 학부생이 1554명이 늘어났다. 이 후에도 매년 1500명에 이르는 지역정원 학생이 계속 졸업하면서 의무이행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의사의 지역편중이 어느정도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만큼 쉽게 풀리지 않았다. 늘어난 의사 대부분이 의료취약지가 아닌 지역으로 몰려 근무를 했기 때문이다.

의무이행 비율은 낮지 않았다. 일본 전국의학부장병원장협회가 발표한 ‘2017년도 지역정원 입학제도 현황조사’를 살펴보면 지난 2017년 기준으로 전체 지역정원의 합격자 2222명의 82.4%인 1841명이 의무이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의 근무지를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내 대학병원 및 중심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이 90.5%로 대부분이었으며,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해 필수적인 현내 중소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4.2%에 불과했다. 이를 고려하면 결국 의무 복무를 이행하고 있는 지역의사의 75.9%가 취지인 의료취약지에서 근무하지 않고 있다는 수치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해당 정책이 지역정원 설정 및 지역편중 대책, 각 도도부현에 대한 의사들의 정착에는 일정부분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원 의사들의 근무 형태를 보면 결국에는 이행 기간이 종료되면 취약지역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 늘어난 의대생 수와 지역정원 이탈자 문제에 더해 일본의 저출산·고령화 문제까지 겹쳐져서 의사 과잉 문제는 갈수록 더 극심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 역시도 2018년부터 의학부 정원 감원을 검토하고 있어 사실상 지역정원제도 자체가 정책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정치권·정부 등도 이같은 일본의 지역정원제도의 허점을 이미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실패 원인을 비교적 유연했던 규제라고 평가하고 지역의사제 의무복무 미이행 시 학자금 지원 등 혜택 중단이 아닌 불이익, 면허 박탈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하지만 오히려 이는 지나친 규제라는 비판과도 맞서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우봉식 원장은 “굉장히 순진한 생각이다. 지역의사제는 이미 다른 나라에 실패한 제도다. 왜냐면 사람은 건축물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일본 역시 지역정원제도를 도입하며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했지만 결국 완벽한 제도란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호주같이 큰 나라가 아니다. KTX를 타면 1~2시간이면 서울특별시로 가는데 지역의사를 뽑아도 환자부터가 지역에서 진료를 보지 않는다”며 “이런저런 상황을 볼 때 지역의사제는 너무 고민이 없는 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결국 환자를 위한 정책이 아닌, 표심을 고려한 정치적 행동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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