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전공의들…수도권-비수도권 정원 조정 '파장'

- 학회별 비수도권 전공의 40→45%로 조정
- 수평위에 맡긴 이비인후과, 7곳 전공의 감원
- 탄력정원 있는 필수과들 “어차피 미달”

수련병원들이 전공의 모집을 앞둔채 비상이 걸렸다. 수도권 및 비수도권에 배정되고 있는 전공의들의 정원이 조정되기 시작하면서 수련병원별로는 정원을 한명도 배정받지 못하고 있는 과도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조정되는 기준들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 불공정 시비까지 일고 있다. 정부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방안이라며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수련교육 현장은 실질적인 효과 하나 없이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대책 중 하나로 전공의 정원의 50%를 비수도권에 배정하겠다며 학회를 통해 의견 수렴을 진행했다. 기존 40%이던 비수도권 전공의 정원 비율을 50%로 늘리는 방안이다. 학회들은 반발했고 결국 그 비율을 45%로 5%p만 늘리기로 했다.

이후 26개 전문과목 학회별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전공의 정원을 55대 45로 조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전문과 학회 대부분이 자체적으로 전공의 정원을 조정해 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수평위)에 제출했다. 하지만 대한응급의학회, 대한이비인후과학회 등은 조정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전달해 수평위가 조정안을 마련했다. 복지부는 오는 10일 수평위를 열고 전공의 정원 조정을 최종 확정한 뒤 다음 주 중 수련병원별로 안내할 계획이다.

문제는 수평위가 전공의 정원을 조정한 과에서 발생했다. 전공의 정원이 1명밖에 없던 수련병원들이 대거 감축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비인후과학회는 감원 대상이 된 병원 7곳이 모두 전공의 정원 1명인 곳이다. 의사나라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자면 수도권 소재 의정부성모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상계백병원, 보훈병원, 원자력의학원, 강동성심병원과 비수도권인 부산성모병원이 2024년도 전공의 모집부터 이비인후과 전공의를 뽑지 못한다.

반면 비수도권 수련병원 7곳은 이비인후과 전공의 정원이 증원된다. 대전성모병원 1명, 강원대병원 1명, 경상대병원 2명, 부산대병원 3명, 양산부산대병원 2명, 영남대병원 2명, 제주대병원 2명이 추가 배정됐다.

수평위는 지난 6일 열린 26개 전문과목학회 수련이사 회의에서 이같은 조정안을 제시하고 지도전문의 수와 전공의 확보율, 수련환경평가 성적을 기반으로 감원 대상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증원 기준은 국립대병원이 1순위로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순으로 배정했다. 남은 정원은 사립대병원에 배정했다. 조건이 동일한 수련병원이 생기면 수련환경평가 성적과 지도전문의 수를 반영했다.

이같은 조정안이 알려지자 하루아침에 이비인후과 전공의를 뽑지 못하게 된 수련병원들은 반발했다. 감원 대상으로 선정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공의 정원이 많은 곳이 아닌 1명인 곳을 감원해 수련교육 여건을 더 열악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감원 대상이 된 A대학병원 이비인후과 모 교수는 “전공의 정원이 1명인 수련병원에서 정원을 줄이는 건 정원 조정이 아닌 수련병원으로서 역할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우리 병원은 수련환경평가에서도 평균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전공의 확보율도 매년 100%였고 지도전문의도 부족하지 않다. 왜 감원 대상으로 선정됐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원이 늘어나는 지방 수련병원 중에는 지도전문의 수가 충분한지 의문이 드는 곳도 있다”며 “수련교육 환경을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전공의 정원 조정을 포기한 학회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B대학병원 이비인후과 모 교수는 “자체적으로 정원을 조정하길 포기하고 복지부가 결정하도록 넘겼다. 학회 임원들의 안위를 위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회원들에게 의견도 구하지 않고 상임이사회 의결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고 했다.

전공의 정원이 사라지는 수련병원이 생기는 문제는 이비인후과만의 문제도 아니다. 재활의학과나 정신건강의학과, 안과 등 전공의 1년차 정원이 100명 안팎인 과들은 ‘정원 1명’인 수련병원들이 많다. 결국 이번 조정으로 더 이상 전공의를 뽑지 못하는 곳들이 생겼다.

대한내과학회는 이같은 상황을 우려해 자체적으로 조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전공의 정원이 1~2명인 곳은 되도록 감원하지 않았다. 물론 수련교육환경이 뒷받침된다는 전제에서다. 내과학회 김대중 수련이사(아주대병원)는 "정부안대로 가면 정원 2명이 1명이 되고 3명이 2명이 되는 수련병원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식이면 수련교육 여건이 더 나빠지기 때문에 되도록 그렇게 되지 않게 조정하려고 했다"며 "전공의 정원이 1명인데 감원한 곳은 없다"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관계자는 “정부가 제시한 전공의 정원 조정안에 끝까지 반대했다. 그래도 복지부는 자신들이 만든 기준으로 전공의 정원을 줄이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학회들이 전공의 정원을 조정하지 않겠다고 하니 촉박해진 복지부가 강제로 시행하겠다며 명단을 갖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3~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하겠다는 계획도 세우지 않고 무조건 55대 45 기준에 맞추라고 한다. 이해할 수 없다”며 “어떤 학회는 수도권 전공의 정원 비율을 55% 근사치로 조정해 제출했는데 복지부가 55%가 아니라며 인정하지 않더라. 복지부에 중요한 것은 55대 45라는 수치만 중요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필수의료 분야로 꼽히는 전문과들도 이번 전공의 정원 조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번 조치에도 미달을 피하기는 힘들며 ‘탄력정원’을 이용하면 수도권 수련병원도 기존처럼 전공의를 모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이경원 교수는 “디테일이 부족한, 우격다짐식 정책”이라며 “학회마다 지도전문의 수 등 수련교육 환경을 고려한 기준을 마련해 전공의 정원을 책정하고 배정해 왔다. 그걸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정해진 수치에 맞춰 조정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비수도권 수련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정원을 늘려도 소용없다. 이미 지원자를 찾기 힘들다는 얘기들이 나온다”며 “수도권 정원을 줄여도 탄력 정원을 이용해 뽑을 수 있다. 더욱이 이번 모집부터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전공의 정원 조정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기피과로 불리는 전문과목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전공의 정원 탄력운영제는 전공의 모집 과정에서 지원자에 비해 정원이 부족하면 다른 수련병원의 남은 정원을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심장혈관흉부외과도 비슷한 상황이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정의석 기획홍보위원장(강북삼성병원)은 “수도권 수련병원의 경우 정원이 줄어도 탄력 정원이 많아서 지원자가 있으면 뽑을 수 있다”며 “이번 전공의 정원 조정이 흉부외과에서는 이슈도 되지 못한다. 실효성 자체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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