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시간 근무제, 실현 불가의 현실…"중증 환자 진료, 포기할 수 없어"

- 대학병원 교수진, 번 아웃 호소에도 진료 시간 단축에 한계 직면
- 비상경영 선언한 병원들, 중증환자 관리로 근무시간 축소 어려움 겪어
- 의료 현장의 현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구조적 장벽 마주해

번 아웃을 호소하며 환자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주 52시간 근무를 선언한 대학병원 교수진이 실제로 근무시간 단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진료 시간을 줄일 경우 병원 운영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되어, 많은 병원들이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전공의 부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병원들이 늘어나면서, 병동 통합, 무급 휴가, 급여 반납 등으로 비상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에 이어 서울대병원도 비상경영체계로의 전환을 발표했다.


병원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지난달 500억원 규모의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기존보다 2배 많은 1,000억원 규모로 늘렸다. 전체 60개 병동 중 응급실 단기 병동, 암병원 별관 등 10개 병동을 폐쇄했다. 대부분 대학병원들의 병상가동률은 30~50%로 떨어졌고 응급실도 중증환자 위주로 받고 있어 50%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번 아웃을 우려한 교수진이 지난달 25일부터 시작하겠다던 주 52시간 단축근무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충북대병원·의대 교수회 비상대책위원회 배장환 위원장은 “52시간 근무시간 단축을 이행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시간 측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고 시간을 따지다 보면 결국 쉬지도 못하고 진료도 제대로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어 52시간 준법 근무를 하겠다고는 했지만 실제 할 수 있는 병원이 없다”고 말했다.

배 위원장은 “진료과 교수가 4명인 곳은 주당 이틀이 당직이니 기본적으로 48시간에 외래 3~4시간을 보면 52시간이 된다”며 “현실적으로 52시간 근무만 할 순 없는 상황이다. 교수 수가 적은 진료과는 최소 근무시간이 60~70시간이 모두 넘는다. 교수 수가 많은 과는 당직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외래나 시술이 있어 어렵다”고 했다.

배 위원장은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들은 밤 당직이 많아 80시간으로 계측 되는 경우도 있다”며 “(전공의 사직 이후 진료 감소로) 매출이 60~70% 하락했다. 문제는 직원들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장기화된다면 4~5개월 지나면 병원들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병상가동률을 줄였지만 노동 강도가 큰 중증환자 치료도 진료시간을 쉽게 단축할 수 없는 이유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임영석 교수는 “병실 입원환자를 50~60% 줄여 30~40%만 가동하고 있는데 혈액내과는 여전히 병상가동률이 80%가 넘는다. 중증환자들이 많고 이 환자들을 내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다. 또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혈액내과는 원래도 인원이 부족했는데 전임의도 없고 전공의도 없이 소수 교수들이 24시간 연속 근무에 너무 지쳐있다, 당직만 서는 게 아니라 기존 외래진료에 검사 업무도 다 하고 있어 굉장히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혈액내과가 무너지는 게 가장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라며 “버틸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고 했다.

배 위원장도 “과거 심근경색증이라도 의식이 있고 혈압이 유지되는 환자가 70~80%였다면 요즘은 그런 환자가 없다”며 “2차병원에서 보지 못하는 중증환자들이 온다. 그런 환자들을 끌어안고 교수들이 잠을 못자고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환자안전과 교수진 번 아웃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외래진료 축소에 나섰지만 진료시간은 크게 줄지 않았다. 충북대병원은 외래환자가 가장 적은 금요일 외래진료를 보지 않기로 했다. 대신 금요일 외래환자 진료 일정을 월~목요일로 옮겨 외래진료 시간은 그대로다.

배 위원장은 “지금 봐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교수들은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환자들에게 피로감으로 인한 실수를 안 하게 된다. 그래서 금요일 외래를 쉬기로 했다”며 “그렇다고 금요일 환자를 안 보는 게 아니다. 다른 날로 외래시간을 옮겨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 위원장은 “금요일은 외래진료를 보지 않지만 조금 쉬면서 국소마취 수술이나 마취를 하지 않는 심장혈관시술 등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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