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환자 폐색전증 위험 간과"... 법원 "의료진 예방조치 소홀" 지적
3일간 항응고제 처방만 하고 퇴원... "합리적 재량 범위 벗어나"
환자 특성 고려한 맞춤 의료 중요성 부각... 설명의무 이행 강조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최규연)는 최근 고관절 골절 수술 후 폐색전증으로 사망한 미국인 환자 A씨의 유가족이 B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의료진에게 4억2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2019년 8월 17일 오전 10시경, 대한민국에서 미국 육군 군무원으로 근무하던 A씨는 자전거를 타다 빗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같은 날 오후 4시 35분, A씨는 인근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 '좌측 대퇴부 경부의 골절'을 진단받았다.
보험 관련 문제로 A씨는 B병원에서 수술 및 치료를 받기를 원했고, 사설 구급차를 통해 B병원으로 전원되었다. B병원에서의 검사 결과, 왼쪽 대퇴골 경부에 골절이 확인되었고, 의료진은 수술을 결정했다.
8월 17일 오후 9시 50분경부터 정형외과 의사는 A씨에게 전신마취 후 왼쪽 고관절 대퇴골 경부골절 부위에 핀 3개를 삽입해 고정하는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후 A씨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판단한 의료진은 8월 23일 퇴원 조치했다.
그러나 퇴원 후 4일째인 8월 27일 오후 6시, A씨는 숨이 차오르는 증상 등으로 119구급차를 통해 인근 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오후 6시 32분, A씨는 심정지가 나타났고,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오후 7시 30분경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A씨의 사인은 '폐동맥혈전색전증'으로 판단되었다. 양쪽 폐동맥 시작 부위에서 혈전 색전이 관찰되었고, 치명적일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A씨의 유가족은 B병원 의료진에게 진료상 과실 및 설명의무위반 등이 있다고 주장하며 15억원가량의 손해배상책임을 요구했다. 유가족 측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1. A씨는 백인 남성으로 폐색전증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높았음에도 의료진이 추가 검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2. 투약기준에 못 미치는 3일간의 항응고제만 투약하고 물리적 요법은 전혀 실시하지 않았다.
3. 예정보다 일찍 퇴원하게 하여 적절한 진료를 하지 않았다.
4. 퇴원 시 폐색전증의 위험도와 대처방법 등을 지도하지 않아 설명의무를 위반했다.
재판부는 유가족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법원은 의료진이 폐색전증의 발생을 억제하기 위한 적절한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관련 지도설명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1. 고관절 수술 후 발생하는 심부정맥혈전증은 폐색전증으로 이어져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 심각한 합병증이다.
2. A씨는 59세의 백인으로 고관절 대퇴부 골절로 수술을 받아 폐색전증 위험인자가 높은 환자였다.
3. 수술 후 6일까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위험성이 줄었다고 판단할 수 없다.
4. 폐색전증 진단을 위한 추가 검사(폐환기관류스캔, 도플러 초음파, 폐혈관조영술 등)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5. 3일간의 항응고제 처방만 하고 다른 물리적 방법을 시행하지 않은 것은 합리적 재량 범위를 벗어났다.
이에 따라 법원은 의료진의 폐색전증에 대한 예방조치 소홀이 환자 사망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하여 4억2000여만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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