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한 번 둘러본다고 해결될 문제 아냐"... 의료진, 근본적 대책 요구
의료계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근본 문제"... 건보료 동결 결정에도 비판
의대생 학부모 "학교, 수업 계속 들으라 압박"... 의료계 "특정 학년 피해 없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저녁 의정부성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불시 방문해 의료 현장을 점검하고 의료진을 만났지만, 의료계의 반응은 냉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 전문가들은 이번 방문이 현재 의료계가 직면한 문제들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방문 당시 의료진과의 간담회에서 "응급의료가 필수의료 중에 가장 핵심인데 국가에서 제대로 관심을 갖고 도와드리지 못한 것 같아 참 안타깝다"며 "필요하면 예비비를 편성해서라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의료 현장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대한외과의사회가 8일 개최한 추계학술대회에서는 정부의 '필수의료 살리기 정책'이 오히려 필수의료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특히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의정부성모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자 대한외상학회 이사장인 조항주 교수는 현재 의료 현장의 어려움을 생생하게 전했다. 그는 "환자 받기가 무섭다"며 "외상외과를 하면서 지금처럼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전공의 부족으로 인한 야간 진료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이 상태로는 오래 못 갈 것 같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조 교수는 또한 현재의 응급의료 체계가 오히려 과거로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119구급대가 무작위로 여러 곳에 전화해서 환자를 받겠다는 곳으로 무조건 가는 상황이다. 그 환자가 최종 치료를 어떻게 받는지는 상관없다"며 "권역응급의료센터나 권역외상센터가 없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의 병원 방문과 관련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조 교수는 "사직 전공의들이 와서 면담을 요청했지만 병원 측이 저지했다고 한다. VIP가 와서 응급실 한번 둘러본다고 해서 뭐가 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박형욱 교수는 정부의 대응에 대해 더욱 강한 비판을 제기했다. 그는 윤 대통령 방문 다음 날 대통령실이 권역응급의료센터에 비서관 배치를 검토한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엉뚱하고 관료주의적인, 이해할 수 없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또한 건강보험료율 동결 결정을 언급하며 "필수의료에 어마어마한 재원을 투여할 것처럼 국민들에게 잘못된 얘기를 해 왔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의대 정원 증원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과학적이라는 말을 하려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과정에 대한 속기록 등 회의기록부터 제출해야 한다"며 "과학적인 근거 제시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의료계 내부에서 의대증원 장기화의 문제 근본 원인을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서 찾는 의견이 나오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이세라 대한외과의사회장은 이 제도가 의료기관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적정 수가 보장에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정부에서 건강보험료를 2년간 올리지 않았다고 자랑하는데, 이는 기피과, 특히 외과나 흉부외과, 산부인과 같은 의사들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공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복지부는 최근 2024년 건강보험료율을 올해와 동일한 7.09%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의료계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회장은 "정부가 먼저 의대증원의 과학적 대안을 제출하는 게 맞다"며 "증원 후 발생할 국고 지원금 재정 규모 문제와 건보료 인상률을 분명히 계산해 발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는 사직 전공의들과 의대생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특별 세션도 마련됐다. 한 의대생 학부모는 학교 측이 예과생들에게 계속 수업을 들을 것을 설득 중이라고 전했다.
대한외과의사회 관계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예과 1학년을 포함해 특정 학년만 손해 보는 일이 없게끔 당연히 의료계가 나서야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곧 여·야·의·정 4자 협의체가 생기면 연말 혹은 내년 초까지는 무슨 답이 나오지 않겠나? 좀 더 관망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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