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심부자극술 후 발생한 뇌출혈로 환자 사망…법원, 의료진 과실 인정
종교적 수혈 거부에도 의료진의 책임 강조…4억5000만원 배상 판결
환자 설명 의무 부족과 시술 중 주의 의무 위반에 대한 법적 책임 부각
안검하수 등 얼굴 근육의 이상을 치료하기 위해 뇌심부자극술을 받은 환자가 수술 부작용으로 뇌출혈이 발생해 사망에 이른 사건에서 병원 측에 상당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의료진의 과실이 환자의 사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하면서, 4억5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는 최근 뇌심부자극술 후 사망한 환자의 유가족이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며, 의료진의 과실과 설명 부족을 인정했다.
치료 과정과 환자 A씨의 상태 변화
환자 A씨는 2019년 6월 눈꺼풀이 처지는 안검하수와 얼굴 근육의 경련 등 이상 증상이 석 달 동안 지속되자 인근 병원에 내원했다. 신경과 진료를 받은 A씨는 안검하수 진단을 받고 약물 치료를 받기 시작했으나,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같은 해 8월, A씨는 증상의 지속과 악화로 인해 다른 병원을 찾았고, 과거 수년간 졸피뎀 복용 경험을 의료진에게 알리며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다.
진료를 담당한 의사는 A씨를 뇌 MRI 검사를 통해 '메이그 증후군'으로 진단하고, 보톡스 30유닛을 주입하는 치료를 진행했다. 메이그 증후군은 뇌 신경의 지배를 받는 눈 주변과 얼굴 근육의 경련이나 근긴장 이상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으로, 보톡스 주사가 주요 치료법 중 하나다. 이후 A씨는 약 1년간 보톡스 주사를 비롯한 지속적인 치료를 받았으나 증상 호전은 미미했다.
2020년 8월, A씨를 치료하던 병원에서는 보톡스 40유닛 시술에도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고 판단해, 인근의 B병원으로 진료를 의뢰했다. B병원에서는 기능 검사와 뇌관류 단일광자 단층촬영(SPECT) 등 여러 검사를 통해 A씨에게 '특발성 구강안면근긴장이상'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B병원 의료진은 뇌심부자극술(DBS)을 권유했으나, 당시 환자 측의 반대로 수술은 진행되지 않았다.
A씨는 보톡스 시술을 계속 받았지만 치료 효과는 점차 줄어들었고, 2021년 3월 결국 뇌심부자극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수술 전 A씨는 우울감과 기억력 악화를 호소했으며, 다양한 검사 결과 집중력, 언어 능력, 시공간 기능 등은 정상 수준이나 기억력이 저하된 상태로 나타났다.
뇌심부자극술과 이후의 합병증
2021년 3월 14일, A씨는 B병원에 입원해 수술 전 뇌 3D CT 등 여러 검사를 받았고,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술 동의서 작성 당시 A씨는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거부한다고 명시했다. 이후 3월 18일, 의료진은 A씨에게 전신 마취 후 두개골을 천공하여 신경자극기 전극을 뇌에 삽입하고, 쇄골 아래에 삽입된 자극 발생기와 연결하는 뇌심부자극술을 시행했다.
수술 직후 A씨의 상태는 안정적이었다. 의식이 명료하고 활력징후도 안정적이어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그러나 수술 다음 날인 3월 19일, A씨는 구역질과 속쓰림을 호소했으며, 반응이 느려지고 동공 확장이 나타나는 등 이상 증세를 보였다. 이후 뇌 CT 검사 결과, A씨에게 급성 뇌내출혈과 급성 뇌실내출혈이 발생한 것이 확인됐다.
의료진은 출혈을 조절하기 위해 3월 19일 오전 9시 35분부터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카테터를 삽입하고 혈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후 상태가 악화되어 3월 22일에는 두개절제술을 통해 다량의 혈종을 제거하는 추가 수술이 필요했다.
A씨는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의료진은 빈혈 치료에 효과가 있는 에포카인주를 투여했으나, 이는 헤모글로빈 수치 상승이 더디고 혈전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A씨는 상태가 점차 악화되어 폐혈전색전증까지 발생했으며, 수혈 필요성에 대한 의료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환자 측은 이를 거부했다. A씨는 결국 2021년 4월 21일 연수마비 및 뇌경색, 파종성 혈관내응고(DIC) 등으로 인해 사망했다.
법원, 의료진의 과실 인정
A씨의 유가족은 병원을 상대로 약 25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유가족 측은 뇌심부자극술 과정에서의 과실로 인해 뇌출혈이 발생했고, 의료진이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환자의 상태와 수술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의료진은 환자가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했기 때문에 뇌출혈로 인한 상태 악화와 사망이 불가피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환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수술 후 4시간 내에 발생한 뇌출혈 증상이 전극 삽입 부위와 일치하고, A씨에게 뇌출혈을 일으킬 만한 기저 질환이 없었던 점을 고려할 때, 의료진의 과실로 뇌출혈이 발생했고 환자가 사망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뇌심부자극술은 그 자체로 뇌출혈 등 합병증의 위험이 있지만, 이는 수술의 고유한 위험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의료진에게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즉, 의료진은 수술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예방과 관리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환자의 수혈 거부와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수혈 거부가 치료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뇌출혈의 경우 수혈이 이루어졌더라도 반드시 생존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수혈 거부로 인해 발생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치료에 임한 의료진의 책임을 인정했다.
결국 법원은 병원 측에 4억50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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