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국내 첫 영리병원의 내국인 진료제한은 위법...의협 즉각 반발

-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 허가조건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은 기존의 의료법을 뒤집고 영리병원을 합법화하는 초석이 될 수 있어 우려 多
- 정부와 지자체는 영리병원 도입 검토를 중단하고 의료계 등 관련 전문가와 함께 건강한 의료체계 모델을 만들어나가야

국내 첫 영리병원에 대해 제주도가 내린 ‘내국인 진료 제한’ 조치가 위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이에 의료계가 즉각 반발에 나서면서 수 년간 잠잠했던 영리병원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제주지법 행정1부(김정숙 수석부장판사)는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가 제주도를 상대로 낸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해 5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달아 개원을 허가한 것은 법령상 근거가 없어 위법하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은 '외국의료기관에 대해 제주특별법에서 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의료법을 준용한다'고 규정됐다”며 “이에 따라 외국의료기관이 제주특별법과 의료법이 정하는 요건에 맞을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허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또 제주특별법과 제주도 보건의료 특례 등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에 이 사건 허가 조건과 같이 진료 대상에 제한하는 내용의 부가적인 약관을 부일 수 있다는 명시적인 근거가 없다”며 “제주도가 아무런 법령상 근거 없이 붙인 이러한 약관은 위법하다”고 했다.

녹지그룹은 1992년에 설립된 중국 국유 부동산 기업이다. 자회사인 녹지제주는 2015년 국내에 처음으로 설립 승인을 받았다. 제주도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에 위치해 있다. 이번 소송은 제주도가 2018년 12월5일 녹지제주에 대해 내국인을 제외하고 외국인 의료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병원을 운영하도록 하는 조건부 허가를 내면서 촉발됐다.

녹지제주는 현행 의료법에 따라 병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면서 해당 조건이 부당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면서 제주특별법에도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은 도지사의 허가를 받아 제주도에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고 명시됐을 뿐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주도 측은 녹지제주가 사업계획서를 제출할 때 '외국인을 위해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제주도지사는 제주특별법에 의거해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맞섰다. 그러면서 녹지국제병원은 건물과 토지 소유권이 지난 1월19일을 기해 국내 법인 주식회사 디아나서울에 모두 넘어가 녹지제주가 실제 병원을 운영할 능력이 없는 상황이라며 재판부에 각하를 요청했다.

이날 재판 결과에 대해 제주도 측은 “녹지제주 측이 병원 지분을 넘긴 상태라 각하 결정이 나올 줄 알았는데 당혹스럽다”며 “판결문을 검토한 뒤 전담 법률팀과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영리병원 도입을 부추기는 법원 판결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즉 영리병원 도입은 의료 제도와 시스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게 의협 입장이다.

의협은 입장문을 통해 "영리병원은 소위 돈 안 되는 필수의료과목을 퇴출하고 필수진료를 담당하는 의료기관은 거대자본을 앞세운 영리병원의 횡포에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며 "이는 곧 지방 중소 의료기관의 폐업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져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붕괴시키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료기관이 운영되는 궁극적 목적은 단 한 가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함"이라며 "우리나라 의료법 33조에서도 의료기관 설립이 가능한 기관은 비영리 법인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고, 영리행위로 개방될 경우 환자들에게 많은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 허가조건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은 기존의 의료법을 뒤집고 영리병원을 합법화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며 “영리병원은 의료기관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보다는 말 그대로 오로지 영리추구만을 위해 운영될 것이다. 영리병원의 도입은 대형 자본 투자로 이어지고, 결국 의료는 이윤창출의 도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제주지방법원의 판결과 더불어 영리병원 도입을 추진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방향이 우려스럽다”고 지적하며 "정부와 지자체는 영리병원 도입 검토를 중단하고 의료계 등 관련 전문가와 함께 건강한 의료체계 모델을 만들어나가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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